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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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자 마자 바로 책을 찾아보았다. 불안과 불화, 불확실성과 혼돈이 침착된 세계는 여전히 출렁이는데, 문학은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호기심도 일었고, 내게는 생소한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라는 이력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놀랍게도 작가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살아감과 죽어감이 무엇인지 요한네스라는 인물을 통해 대담하게 그려냈다. 의미와 이유를 찾는 데 익숙해진 현대인이 정말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가르치기라도 하듯 작가는 소박한 어부의 일대기를 통해 의미가 아니라 존재를, 이유가 아니라 생과 사의 근원을 탐색하면서 자의식 과잉 탓에 존재 자체가 어려워진 의식의 틈새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1장에서는 요한네스의 탄생이 그려진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요한네스는 올라이의 아들로 태어나는데,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와 분리되어 추운 세상으로 혼자 나와 모든 사람들과 분리되어, 언제나 혼자로 살면서 모든 것이 지나가면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리라는, 올라이의 독백 속에서 탄생한다. 올라이는 태어나서 살고 죽어가는 그 모든 것이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무 이상의 무엇이 드리워지는데 그것이 신의 영혼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요한네스의 탄생 순간, 공간을 파고드는 소리와 고요함은 뒤섞여 서로 연결되면서도 떨어져 새로운 고요한 소음으로 나아간다. 작가는 생명의 탄생 시점에 드리워진 일상의 소리들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표현하면서 서로 어우러지면서도 독립적으로 배치되는 시공간의 역설적인 질서를 명민하게 드러낸다. 


2장에서는 어느 날 요한네스가 침대에서 일어나 겪은 기묘한 일상이 주제가 된다. 평소와 달리 몸이 가볍다고 느끼는 요한네스는 오랜 친구 페테르를 만나고 꽃게를 사러 올라오는 안나를 마주친다. 또 오래 전 죽은 아내 에르나와 조우한다. 소천한 게 확실한 페테르센을 만나는 가 하면, 젊어 세상을 떠난 누이 마그나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주변인들과의 만남 뒤로는 요한네스의 어부로서의 삶이 배경이 된다. 그는 지나온 모든 일상 속에서 그들을 다시 일상의 한 단편으로 만나게 된다. 살아 생전 서로 머리를 잘라주었던 페테르와 다시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방금 보였던 에르나가 갑자기 사라지는 데 놀라고 막내 딸 싱네가 자신을 모른 채 스쳐 지나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막내 딸 싱네가 죽은 요한네스를 발견하고 의사를 부르고 사위를 부르는 동안 요한네스는 다시 찾아온 페테르를 만난다. 


페테르는 죽음을 지각한 요한네스를 배로 이끌어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는 인물로 현신하는데, 이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새로운 몸을 잠깐 돌려받았다고 고백한다. 페테르는 다음 세상은 어떤 장소가 아니며 너와 나의 구분이 없으면서도 요한네스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거기에서는 언어가 사라지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모든 것이 하나이면서도 서로 다른, 그러므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담백한 줄거리를 더욱 진중하면서도 웅장하게 진동시키는 문학적 재미는 아무래도 문체일 것 같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마침표를 찍지 않고, 대화나 생각은 쉼표로 구획하면서 주인공의 일대기, 즉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는 문장으로 이어나간다. 독서의 재미를 더하는 장치는 제목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요한네스의 삶을 그리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종결하고 낮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럼에도 요한네스의 낮은 일곱 남매를 키우고 아내와 사별하며 친구와 마을 사람들과의 일상이 반복되는 시간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요한네스의 삶에서 낮은 그저 지나가는 시간이었을 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살고 죽는 그 과정은 요한네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생의 전환 과정에 포섭되므로 낮 시간 동안의 그의 삶은 존재 양식에 충실했던 것으로 이해되어 어떤 알 수 없는 충만감이 가슴에 차오른다. 


살고 죽는 것의 숭고함이 타자화 되고 삶에 대해 지나친 의미화를 추구하는 천착이,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요즘, 이 책이 주는 울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유별난 구석이 있었지만,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걸 저도 알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속을 게워내야 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요,싱네는 생각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하늘에 흰 구림이 떠간다, 그리고 오늘 바다는 저리도 잔잔하고 푸르게 빛나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요한네스,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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