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계 교수의 철학 이야기 - 탈레스에서 라깡까지, 증보판
강영계 지음 / 서광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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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절적으로 마주한 철학의 계보와 좌표를 알고 싶다는 욕망은, 교과서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중심 사상의 핵심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책을 읽고 싶다는 욕심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결과적으로, 찾고 있던 책을 정확하게 고른 셈인데, 저자의 안내대로 '서양 철학의 무수한 갈래들을 일관성 있게' 정리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하다.

 

첫 장에서 달리를 인용한 철학사의 가치는 이 책의 유용성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철학사를 통해 어떤 시대에 어떤 지역에서 철학의 체계적인 생각들이 전개되었는지 알 수 있고, 어떤 곳에서는 일관성 있는 진보가 있었다면, 어느 지역에서는 왜 단절되었는지 탐구할 수 있으며, 독자적인 철학 사상을 창출하지 못한 연유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사고 양태를 반성하고 비판함으로써 미래의 삶과 세계에 대한 개방된 자세를 계획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책은 크게 그리스 철학, 중세 철학, 르네상스 철학, 근세 철학, 독일 관념론, 현대 철학의 6부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의 근본, 신과 윤리, 이성과 경험, 비판 철학, 실존, 언어, 정신분석, 실용주의, 사회주의, 실증주의, 해체,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관통하며 대표적인 철학자와 중심 철학 사상을 간결하게 정리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장은 아무래도 평소 잘 접하지 못했던 르네상스 철학 부분이었다.  쿠사누스는 우리의 일상적 인식은 피상적이고 부분적 인식으로 결핍된 인식이며 곧 무지로써, 무지의 지혜는 우리가 가진 온갖 지식을 포기하고 파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파악하는 것이 무지에 관한 지혜라고 설파한다. 또한 반대의 일치는 모사와 원화처럼 모든 현상적인 사물은 모사지만, 그 그원은 원화에 두는 일치라고 설명하면서, 반대의 일치에 접근하는 인간은 감각적이고 오성적인 앎에서, 반성의 차원에 이르고, 결국 반성의 반성을 통해 이성적 성찰, 즉 신적 통찰까지 승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라켈수스는 현실 세계는 육체적, 영혼적, 정신적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고, 세상의 모든 영역은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실체와 관계를 맺고 있어 각 영역에 따라 달리 치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영적 건강의 개념과도 일선상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브루노는 세계의 구성요소를 단자로 규정하거나 물활론적인 사고를 통해 자연 과학 탄생의 기반을 닦았다. 뵈메는 수축과 분산으로 생기는 회전이나 진동을 통해 물질 세계가 성립하고 높은 단계에서는 사랑, 표현, 영원한 자연, 신의 왕국 등이 성립된다고 보면서 두 단계 사이의 갈등을 섬광으로 표현하고, 이 안에서 인간의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물질 세계에 만족하면서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도, 심연의 의지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보았다.

 

한 번의 독서로 철학의 갈래을 정리할 수는 없지만, 다른 철학 서적을 읽으면서, 그 좌표와 갈래를 짚어내는 사전처럼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또 특정 철학자의 핵심 사상을 요약해두었기 때문에, 다른 독서를 하기 전 샛길로 새지 않게 하는 울타리 역할도 훌륭하게 감당할 수 있는 책이다.

철학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원초적 힘은 의심과 경탄이다. 의심이 없는 곳에서는 어떤 문제도 제기되지 않는다. 문제가 제기되어 그것을 해결할 때 우리들은 경탄을 금할 수 없다....중략..과거의 철학사를 암기하는 것은 단순히 일상생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 이야기‘를 의심과 겅탄 속에서 읽으면서 반성하고 비판할 때 ‘철학 이야기‘는 비로소 ‘철학함‘으로 새롭게 싹틀 수 있을 것이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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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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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력과 적응, 추종과 안착의 세계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작가는 홀든 콜필드를 내세워 사춘기 소년의 순수함과 질주, 일탈과 도피를 대립시키고, 거친 필치로 독자들을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줄거리의 외관은 딱히 흥미로울 것도 없어 딱 철부지 소년의 방황기라고 정의내리기 쉽지만, 소설의 반향은 그 어떤 것보다 묵직하다.

 

주인공 홀든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시시각각 닥치는 현실의 모습을 오직 자신의 관찰과 직관으로 판단하면서, 남들이 하지 않는 질문, 가령 센트럴 파크의 오리들은 겨울이 되면 어디로 가는가, 등을 궁금해한다. 또한 수녀들에게 10달러 밖에 기부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면서 엄마나 숙모가 요란스러운 옷을 입고 자선 사업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비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장면은  소년의 순수함을 극대화하는 한편, 본질이 아니라 위선으로 구성된 세계, 지위나 자격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표징을 가식없이 드러낸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쫓겨난 홀든에게 동생 피비는 정말 좋아하는 것이 있느냐고 묻고, 주인공은 낡은 밀짚 바구니를 들고 성금을 모금하는 수녀, 겁박에도 자신의 말을 취소하지 않고 창에서 기어이 뛰어내린 제임스 캐슬, 죽었지만 좋아하는 동생 앨리, 그리고 피비와 마주하며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좋다고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은 어린 아이들이 넓은 호밀밭에서 놀고 있을 때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소설은 홀든이 정신과 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의 질문, 9월부터 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를 열심이 할 것인지 물어대는 삽화 등으로 마무리된다. 홀든은 실제로 해보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하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며, 바보같을 질문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분별력을 가지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라는 스펜서 선생의 충고는 결국 홀든을 파고들지 못한다. 순수한 사춘기 소년처럼 지금 느끼는 그대로, 편견 없이 드는 생각, 계산 없이 하는 행동, 그것만으로는 왜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인가. 정제하고 세련되게, 한껏 치밀하게, 영락없이 궤도를 고수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향한 홀든의 이야기는, 가슴을 순식간에 열뜨게 할 만큼 충만하다.  순수를 지향하는 사춘기 소년의 어투와 삽화들을 내세워, 관행과 관습, 성공을 위한 정교한 서사가 맞물리는 견고한 현대 사회의 모습을 끌어내고, 대담하게 포획하여 균열을 내는 작가의 역량은, 왜 이 소설이 줄곧 문제작으로 엄선되는지 짐작하게 한다.

난 정말 운이 좋았다. 스펜서 선생에게 잡소리를 하는 동시에 오리 생각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재미있었다. 선생에게 말하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생이 내 허튼소리를 가로막았다. 선생이란 사람은 언제나 그렇게 말을 자르기 마련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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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2
켄 키지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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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작동 방식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끊임없는 구별과 길들이기의 교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대사회에 적응한 정상적인 소시민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은, 해체해서 따지고 들면, 결국 딛고 사는 거대한 세계가 선사하는 구별의 경계선에서 운 좋게도 바깥이 아니라 안쪽을 점유했다는 것이며, 동시에 세계가 길들이는 방식에 놀라울 정도로 순응하며 살아낸 결과다.

 

이것이 켄 키지가 바라보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구별, 존재와 비존재로써의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그의 세계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은 어쩌면 정신병동일 수 밖에 없다. 소설가는 환자를 '미쳤다'고 진단하고 '비정상'이라고 단정하는 대신, '다르다'고 보며, 그들에 의해 '낙인찍혔다'고 간주한다.

 

실제로는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지만, 청각 장애인으로 치부된 브롬든은 인디언의 후손으로, 이 소설의 화자다. 그는 이 세상을 거대한 콤바인으로 이해하면서, 콤바인의 주된 기계적인 작동 원리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환자로 병동에 갇혀 있으며, 콤바인에 맞추어 길들여가는 것을, 그들은 치료라고 인식한다고 이해한다. 콤바인의 실질적인 권력자는 랫치드 수간호사로, 그는 의사의 치료 방향을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가는가 하면, 누가 전기치료와 뇌전두엽 절제술을 받을 것인지 결정적으로 증언하는 매개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끊임없는 통제를 생산해낸다. 병동의 가장 오래된 권력자 랫치드 수간호사 아래서 환자들은 웃음을 잃어버리고, 병동의 규칙에 순응하면서, 모두가 점차 상태가 악화되어간다.

 

그러던 어느날 작업 농장에서 싸웠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다가 정신병으로 판결 받은 맥머피가 병동에 입원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입원한 첫날부터 체온 측정을 거부하는가 하면, 병동의 집단 치료 과정을 힐난한다. 랫치드 수간호사와 교묘하게 대립하면서, TV 시청권을 연장하는가 하면, 여자들까지 끌어들이고, 의사까지 설득해 환자들을 데리고 합법적인 바다 낚시를 감행한다. 이에 맞서는 랫치드 수간호사는 다양하는 방법을 구사하는 데, 가령 맥머피가 단순하게 호의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돈을 따내며 자신의 이득을 구가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제공하해 환자들을 분열시킨다. 거기에 환자들이 동요하면서 한때 고립되기도 하지만, 맥머피는 특유의 돌파력으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바다낚시에 다녀온 환자들을 소독한다는 명분으로 병동은 소란해지고, 이 과정에서 브롬든과 맥머피는 보조원들과의 몸싸움에 연루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져 전기치료까지 받지만, 맥머피는 좀처럼 굽힐 줄 모른다. 맥머피의 끊임없는 저항은 조금씩 환자들을 변화시키고, 브롬든 역시 스스로 자신이 커지면서 힘이 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이후 맥머피는 여자들을 병동까지 끌어들여 파티를 하게 되고, 술과 감기약에 취한 채 다음 날 발각되는 바람에 랫치드 수간호사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마침내 맥머피는 뇌전두엽 절제술을 받아 식물인간 상태로 병실로 돌아오게 된다.

 

브롬든은 맥머피가, 랫치드 수간호사를 필두로 한 콤바인에게 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후의 수단을 강구하고, 맥머피가 가르쳐준 대로 최대한 힘을 모아 제어반을 뜯어낸 후 병동을 탈출한다.

 

소설가는 우리의 존재 방식은 '저항'이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자신답지 못하게 살도록 제어하고 통제하는, 기계 같은 세상의 단단하고 교묘한 외관에 겁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권력의 중심에 균열을 내는 것은 콤바인에 동조하지 않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는 그것. 그것이 최고의 힘이며 무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뚜렷한 주제의식 뿐만 아니라, 세밀하게 교차되는 다양한 감정선에 대한 묘사 또한 압권이다. 특히 브롬든이 전기치료를 받으면서 기억해낸 인디언 세계의 와해와 콤바인의 침습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영화로도 훌륭하지만, 독서를 통해 소설가의 독특한 문체를 읽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다른 환자들도 맥머피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하딩은 수습 간호사를 보기만 하면 치근덕거리고, 빌리 비빗은 ‘관찰‘이라는 명목으로 타인에 대한 중상을 일지에 적는 일을 완전히 중지했다.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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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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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매우 도발적인 시와 함께 시작된다 ' 오오, 나는 글쟁이들에게 정말 질려버렸다. 유익하고 즐겁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글은 도무지 쓰려 들지 않고 땅속에 숨겨진 온갖 더러운 비밀만 캐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아름다운 연애 소설로 부흥시키지 못하고, 가난의 섬세한 위계를 까발려 끝끝내 더러운 비밀을 고발하는 자신의 글을, 어떻게든  변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주인공 마까르 제부쉬낀과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가 주고 받은 편지를 통해 서사가 진행된다. 관청에서 서류를 정서하는 제부쉬낀은 돈이 없어 부엌 한쪽 칸막이 방으로 쫓겨갔으면서도 돈이 아니라 편안함 때문에 선택한 것이라고 둘러댄다. 게다가 자신은 강인한 기질과 확고부동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서 매우 궁색한 형편에도 한 참 어린 연인에게 사탕까지 보낼 정도로, 가난을 인정하는 대신 온갖 변명을 끌어대서라도 가난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는 부모님을 여의고, 첫사랑이었던 뽀끄로프스키까지 질병으로 잃게 된다. 그녀는 가난하지만 책의 무게로 휘어버린 뽀끄로프스키의 선반을 바라보면서 아는 것도 없고 책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다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삯바느질을 통해  뽀끄로프스키에게 푸쉬킨 전집을 사줄 정도로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다.

 

제부쉬낀과 알렉세예브나의 편지는 서로 엇갈리면서 이들이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종종 드러내는데, 고르쉬꼬프의 아이가 성홍열로 죽은 삽화가 한 예가 될 것 같다. 제부쉬낀은 아이의 죽음 을 마주한 가난한 가족의 아픔을 전달하지만, 놀랍게도 알렉세예브나의 답장은 그가 전에 보낸 삼류 문학에 대한 경멸이 담겨져 있다.

 

제부쉬낀은 문학에 대한 소양을 갈망하면서 짐짓 문학 비평 모임에도 참석하지만 꾸어 놓은 보릿자루처럼 바보같이 앉아 있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단지 그럴듯해 보이는 비평 모임의 주도자 라따자예프에 대한 맹목적 믿음에 근거해 그가 소개하고 언급하는 작품을 문학적 작품의 기준으로 투영한다. 그러면서 알렉세예브나가 권한 문학 작품들은 자신의 마음을 사람들 앞에서 그대로 뒤집어 보이는 것 같고, 자신도 모르고 지나쳤던 일을 기억나게 하고, 내막을 알게 한다고 답신하면서, 가령 <외투>는 가난을 모욕했을 뿐 아니라 매일 되풀이되는 시시하고 공허한 단면만 썼을 뿐 실제로 외투 하나 장만해줄 것도 아니냐며 혹평을 한다.

 

제부쉬낀은 문학적 소양도 부족하고, 현실감각도 부족하지만, 작가는 그를 통해 가난에 대한 특유의 통찰력을 내보인다. 작가들이 무엇이라고 적든, 가난은 커다란 부끄러움도 없이 벗겨지고 성스러운 것도 자존심도 그 무엇도 없이 드러나며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검열되지만, 작가들과 가난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것. 문학적으로 재구성되는 가난이, 가난한 현실을 뒤바꾸지 못하는 그 이중성을 포착해낸다.

 

그와 얽힌 여러 삽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중요한 서류를 망친 그가 각하에게 불려갔을 때, 때마침 떨어진 단추로 인해 불호령 대신, 다시 정서하라는 명령을 받고 1백 루블을 받는 부분이다. 작가는, 지옥의 유황불에서 건져진 인간의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자신의 가난과 죄과를 아랑곳 않고 각하를 찬양하는 데 들뜬 주인공의 문장을 통해, 가난으로부터의 구원, 죄로부터의 구원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한편 알렉세예브나는 지주 비꼬프의 청혼에 두려워하며 당장 자신에게 와달라고 부탁하지만, 제부쉬낀은 하숙집에서 가장 가난했던 고르쉬꼬프의 갑작스런 죽음을 알리는 데 지면을 할애한다. 사기로 얽힌 소송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뜻하지 않게 죽게 된 그는, 제부쉬낀이 돈을 빌려야했던 처지에 놓였을 때조차 그의 긍휼을 자극해 돈을 빌렸던 가장.

 

결국 알렉세예브나는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졌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며 지주 비꼬프와의 결혼을 택해 떠나고, 주름장식을 사주어 결혼을 택했다고 믿는 제부쉬낀은 주름장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나며 절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을 통해 정신적 풍요를 지향하던 알렉세예브나도 가난에 몰려 지주를 택하고, 물질뿐만 아니라 문학적 심미안도 빈한했던 제부쉬낀 역시 가난 때문에 연인을 떠나보낸다.

 

알렉세예브나와 제부쉬낀이 물질적으로 가난하더라도 동등한 수준의 문학적 감수성을 교류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까. 또 하나는 검증된 문학을 통해서 세상을 읽는 것이 아니라 비록 수준 낮은 것일지라도 자신의 관찰과 소신에 따라 현실을 판단하고, 신앙의 선열에 따라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며 주변 사람들을 연민으로 보듬은 주인공의 나레이션을, 통찰력이 결여된 비현실적인 인식이라며 가볍게 치부할 수 있을까. 더불어 문학적 고양이 과연 현실에서 갖는 실질적인 힘은 무엇인가. 작가는 해답이 아니라, 과제를 내준 것만 같다.

그곳엔 지금 나뭇잎도 다 떨어지고 비가 내리고 추울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곳으로 가신다고요! 비꼬프 씨한테는 일이라도 있죠. 토끼 쫓는 일이오. 하지만 당신은 무엇을 하시렵니까? 당신은 지주의 아내가 되고 싶었던 겁니까! 하지만, 나의 천사여! 자신을 한 번 바라보세요. 당신이 지주의 아내를 닮았다고 생각합니까?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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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젠더 수업 창비청소년문고 27
김고연주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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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가 개념화되고 그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되면서, 청소년이 성의식을 갖는데도 일종의 교과서격인 가이드가 필요할텐데,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그 요구에 충실하게 부응하고 있다.

 

사회문화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혼선과 혼돈의 물결이 범람하는 가운데, 젠더교육이 지향하는 철학은 물론 알아야할 내용도 쉽게 서술해 가독성이 좋다.

 

저자는 여자와 남자는 얼마나 다를까, 다이어트에서 내 몸을 지켜 줘, 사랑은 언제나 낭만적일까, 모성은 위대하다 우리 엄마만 빼고, 누가 왜 무슨 일을 해야할까, 우리 가족은 팀워크가 필요해, 혐오의 말은 그만 모두가 나답게, 로 소주제를 열거하고, 각 장마다 그동안 우리가 지녔던 편견, 고정관념을 깨는 데 집중한다. 중간에 제시되는 연구 결과나 사회적 삽화들은 이해력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남녀의 성은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며, 복잡한 미의 기준에도 불구하고 상품화되고 획일화되는 미적 욕망 속에서 씨름하는 몸의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역사와 시대에 따른 사랑의 담론과 연애 각본에 따른 사랑은 청소년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신선하다. 본능적 모성의 강조가 가져오는 폐해나, 남녀 역할 구분이 아니라 남녀 협업이 필요한 가족공동체의 삶, 젠더박스를 넘어서는 나다움 등은 각성하도록 도전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다만, 독자 입장에서 욕심을 내자면, 젠더의 관점을 넘어서는 성의식도 일부분 소개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가령 생물학적인 관점이나, 융처럼 남녀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심리학적 관점도 대조함으로써 젠더 이상의 그 너머를 종합하는 부분이 할애되었더라면 뭔가 성의식의 지평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또 젠더의 탄생이 필요했던 역사적, 사회적 맥락도 짧게나마 언급되었더라면 왜 청소년의 성의식 구성에 있어서 젠더가 강조될 필요성이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더 탐구하도록 자극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때때로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불편함, 또는 다른 옷을 입고 싶은 답답함을 느낄 거예요. 그런 불편함과 답답함을 억지로 모른 척하지는 마세요.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진짜 자기 모습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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