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분별력과 적응, 추종과 안착의 세계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작가는 홀든 콜필드를 내세워 사춘기 소년의 순수함과 질주, 일탈과 도피를 대립시키고, 거친 필치로 독자들을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줄거리의 외관은 딱히 흥미로울 것도 없어 딱 철부지 소년의 방황기라고 정의내리기 쉽지만, 소설의 반향은 그 어떤 것보다 묵직하다.

 

주인공 홀든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시시각각 닥치는 현실의 모습을 오직 자신의 관찰과 직관으로 판단하면서, 남들이 하지 않는 질문, 가령 센트럴 파크의 오리들은 겨울이 되면 어디로 가는가, 등을 궁금해한다. 또한 수녀들에게 10달러 밖에 기부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면서 엄마나 숙모가 요란스러운 옷을 입고 자선 사업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비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장면은  소년의 순수함을 극대화하는 한편, 본질이 아니라 위선으로 구성된 세계, 지위나 자격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표징을 가식없이 드러낸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쫓겨난 홀든에게 동생 피비는 정말 좋아하는 것이 있느냐고 묻고, 주인공은 낡은 밀짚 바구니를 들고 성금을 모금하는 수녀, 겁박에도 자신의 말을 취소하지 않고 창에서 기어이 뛰어내린 제임스 캐슬, 죽었지만 좋아하는 동생 앨리, 그리고 피비와 마주하며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좋다고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은 어린 아이들이 넓은 호밀밭에서 놀고 있을 때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소설은 홀든이 정신과 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의 질문, 9월부터 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를 열심이 할 것인지 물어대는 삽화 등으로 마무리된다. 홀든은 실제로 해보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하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며, 바보같을 질문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분별력을 가지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라는 스펜서 선생의 충고는 결국 홀든을 파고들지 못한다. 순수한 사춘기 소년처럼 지금 느끼는 그대로, 편견 없이 드는 생각, 계산 없이 하는 행동, 그것만으로는 왜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인가. 정제하고 세련되게, 한껏 치밀하게, 영락없이 궤도를 고수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향한 홀든의 이야기는, 가슴을 순식간에 열뜨게 할 만큼 충만하다.  순수를 지향하는 사춘기 소년의 어투와 삽화들을 내세워, 관행과 관습, 성공을 위한 정교한 서사가 맞물리는 견고한 현대 사회의 모습을 끌어내고, 대담하게 포획하여 균열을 내는 작가의 역량은, 왜 이 소설이 줄곧 문제작으로 엄선되는지 짐작하게 한다.

난 정말 운이 좋았다. 스펜서 선생에게 잡소리를 하는 동시에 오리 생각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재미있었다. 선생에게 말하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생이 내 허튼소리를 가로막았다. 선생이란 사람은 언제나 그렇게 말을 자르기 마련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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