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 사도신경 강해설교 그리스도교문헌총서 2
토마스 아퀴나스 지음,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사상과문화연구원 편찬, 손은실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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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의 대가답게 이해하기 쉬운 삽화를 통해 비유를 들어 풀이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경 말씀으로 다시 말씀의 의미를 해석하는 정공법을 택한다. 성경의 권위에서부터 시작되는 사도신경 강해는 그러므로 오히려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서문에서 그는 믿음이 가장 필요한 이유로 네 가지를 꼽는데,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되고, 우리 안에서 영생이 시작되며, 믿음을 통해 현재의 삶이 인도되는 동시에 믿음으로 우리가 숱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어리석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대하여도 우리 지성의 불완전함을 성찰하고,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하며, 누군가의 말은 어떻게 믿는지 반문하면서 믿음이 없으면 우리 삶 자체가 구성될 수 없다는 점을 되돌아본다면 보이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믿지 않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무엇보다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시며, 만물의 통치자이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우리가 다수의 신을 생각하는 이유로 네 가지 이유를 든다. 인간 지성의 연약함,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인간을 향한 아첨, 자녀와 친족을 향한 육적인 사랑, 악마의 악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고,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며 섭리하신다는 데 대한 인식이 흔들리면, 자칫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악마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는 마니교 같은 오류가 생길 수 있으며, 세상이 영원하다고 믿거나 또는  하나님이 선재하는 질료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는 생각에 빠질 수 있다는 데 경각심을 준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믿으면 하나님의 위대성을 인식하게 되고, 감사의식이 생기며, 역경 가운데에도 인도되고, 피조물을 바르게 사용하는 데까지 인식이 미칠 수 있게 되며, 마침내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으로 인도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

 

또한 하나님이 아버지이자 그리스도가 참된 아들이심을 믿어야 하는데, 그리스도가 선한 사람들과 차이 없는 방식으로서의 하나님의 아들이라거나 예수님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 만들어졌다거나 영원이 계시지 않다거나 또는 하나님과 한 본질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식의 오류에 대하여도 성경 말씀으로 반박한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성육신하셨다는 것에 대한 잘못된 이해도 지적한다.  예수님이 동정녀에게 태어나신 것은 동의하나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자격을 얻었다거나, 참된 육신을 가진 것이 아니라 외견상으로만 육신을 취한 것이라든지, 그리스도의 몸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잉태된 것은 별도의 천상의 육체를 가지고, 다만 마리아를 통과할 뿐이라는 주장, 예수님께 영혼은 없다는 것 등 다양한 이단적 생각을 구체적인 성경 구절을 통해 배격한다.

 

하나님의 신성이 아니라 철저히 인성이 죽는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신 십자가 사건을 바라볼 때, 사랑과 인내, 겸손과 순종, 땅에 속한 것들에 대한 경멸의 모범이 되신, 부끄러운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권고한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한 모든 벌을 감당하기 위하여 음부에 내려가셨고,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도 그의 권능을 힘입어 다시 살게 되는 그 의미에 대하여도 섬세하게 되짚어준다.

 

저자는 형식적으로 되풀이하는 신앙고백으로서의 사도신경이 얼마나 위대하고 깊은 의미를 가지는지,  한 구절 한 구절씩 집요하게 탐색함으로써 말씀의 권능과 권위를 다시 인식하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 사랑,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교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한편 아퀴나스의 강해설교를 따르다보면 연옥의 존재나 부활의 모습 등 개신교와 천주교의 교리상 차이점도 설핏 이해하게 된다. 또 교리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과 동시에 지나친 논증이 오히려 말씀을 제한할 우려에 대하여도 생각하게 된다.

 

독자에게 읽히는 의미는 제각각일지라도 사도신경에 담겨진 엄청난 의미를 되짚어보면서 믿음과 신앙을 다시 점검하고, 묵상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 사람으로 인해 죽음이 들어왔기 때문에 또한 한 사람으로 인해 죽은 자들의 부활이 옵니다...중략..영생에 있어서 첫째 요소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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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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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표면적인 줄거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방탕하고 이기적인 노인인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가 누군가에 의해 피살되면서 살인마를 추적하게 되고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과정이 그려진다.  큰 아들 드미트리는 약혼녀가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애인을 사랑하는 다혈질 청년으로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를 뒤집어쓴다.  둘째 이반은 형의 약혼녀를 흠모하는, 이지적이고 냉철한 인격의 소유자로  모든 것이 가능하며 신은 인정하더라도 신이 만든 세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념을 설파한다. 셋째, 알렉세이는 온유한 성품의, 사제를 꿈꾸는 청년으로 비참하다못해 처참한 현실을 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물로 묘사된다. 스메르자코프는 표도르 카라마조프의 사생아로 추정되는 인물. 하인이자 요리사로 뇌전증을 앓고 있으며, 이반의 신념에 동조하면서 표도르 카라마조프를 실제로 살해한 범인이지만, 법적으로는 무죄로 추정되는 가운데 스스로 유명을 달리한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소설인데도 극찬을 받은 이유는 아마도 다양한 인물들로 투영되는, 작각의 본심이 날카로운 삽화로 제시되면서 독자들을 매료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특유의 철학, 신앙, 신념 등을 소설 곳곳에 배치하면서 문학과 인생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능숙하게 드러내면서도 소설의 줄거리를 추적하는 시선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감성, 이성, 영성으로 대비되는 세 아들과 인간의 죄된 본성을 직접적으로 표출한 스메르쟈코프를 통해 인간에게 구원은 무엇이며, 진정한 혁명은 어떠해야하는가를 집요하게 묻는다. 삶과 죽음, 법과 정의, 사실과 진실이 뒤엉키는 현실을 두고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러야하겠는지 질의한다.

 

기억에 남는 삽화는 아마도 누구에게나 이반이 읊는 대심문관 편일 것이다. 15세기의 어느 날, 웅장한 화형대에 100여명이 넘는 이단자들이 처단되는 그 틈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시게 된다. 다시 예전처럼 아픈 자를 치유하고 눈먼 자를 눈뜨게 하며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베푸는 가운데, 아흔살인 대심문관 추기경이 지나가게 되고 곧장 예수님을 잡아들인다. 그는 한눈에 재림하신 예수님인 것을 알고 비좁은 감옥에 가둔 후 한 밤중에 몸소 횃불을 들고 찾아간다. 그리고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재림해서 대심문관의 일을 방해하는지 따져묻는다. 오늘은 열광하지만 내일은 또 다시 민중들이 죽이려 들 것을 뻔히 알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광야에서 사탄이 건넨 세 가지의 유혹에 대해 예수님처럼 영구적이고 절대적인 이성을 가지고 겸허하게 비켜갈 사람은 많지 않은데 그 길을 유동적인 이성을 가진 인간들에게 보여준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인간은 빵이 필요하고, 권력이 필요하며, 명예가 필요한 단순한 존재인데, 왜 진정한 자유의 길을 제시하여 번민에 빠지게 하냐는 것이다.  대심문관인 추기경을 비롯하여 우두머리들은 천상의 빵을 고대하기 어려운 수많은 인간들에게 지상의 빵을 대신 줌으로써 그들의 자유를 대신 짊어졌고, 연약하게라도 예수를 사랑하게 했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예수를 사랑하고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이들은 소수인데, 그렇다고 다수의 인간을 버려두는 것이 옳으냐는 역설로 예수님을 몰아붙인다.그리고 대심문관은 예수님처럼 기적, 신비, 권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거의 없다면서 예수님의 답변을 기다리지만, 심연을 꿰뚫는 온화한 미소만 짓고 대심문관에게 입맞춤을 한다. 대심문관은 문을 열고 다시는 오지 말라면서 소리치면서 예수님을 놓아준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과의 입맞춤을 통해 가슴이 불타오르지만,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또 다른 삽화는 알렉세이의 스승 조시마 장로가 만난 신비스러운 방문객에 관한 부분이다. 오랜 시간 동안 관직생활을 한 후 높은 지위의 부유한 사람으로써 자선가로 활동했던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경멸을 마다않고 옳은 일을 감행한 조시마 장로에게 그가 느끼는 큰 기쁨을 자신도 소유하고 싶다며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죽였고, 그 죄를 다른 이가 뒤집어쓰고 죽은 사실을 고백하게 되고 조시마 장로는 진실을 공표하도록 설득한다. 그를 위로하기 위해 우연히 펼친 말씀이 밀알 하나가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부분이었다. 이후 그는 진실을 밝히고 유죄를 입증하는 모든 증거를 내밀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정신이 나간 것이라고 단정하고, 수사도 중단된다. 그는 이후 죽어가는데, 마지막으로 만난 조시마 장로에게 영혼 속에서 난생 처음 천국을 느끼고 있고, 하나님이 어여삐 여기셔서 자신을 부른다고 고백하면서 사실은 진실을 말한 그 날, 조시마 장로까지 죽이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하셨다면서 찬양한다. 그의 죽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행했으며, 오히려 조시마 장로가 그를 어지럽혔다면서 온 도시가 장로에게 대항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삽화는 가난한 퇴역 대위 스네기료프의 어린 아들 일류사의 죽음 이야기로 카라마조프가의 불행과 병행되어 배치된다. 일류사는 아버지가 드미트리에게 모욕을 당한 이후 알료사에게 돌을 던지며 알렉세이와 엮이게 되는데  짐짓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떠난 어린 소년은 시체에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알렉세이는 바위 위에서 일류사를 위한 조사를 하면서 한 때는 일류사와 적대적이었지만, 나중에는 하나로 뭉치게 된 소년들에게 어떤 험난한 일이 있어도, 아름답고 선량한 감정으로 결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것과 인생에서 성스럽고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갖게 된다면 평생 구원받은 셈이라는 것을 설파한다. 선량하게 살며, 성실하게 살고, 서로 서로 잊지 말자는 당부를 하면서 일류사 때문에 모두가 한평생 기억하고 싶은 추억을 갖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초라한 신발을 신고도 불행하고 죄 많은 아버지를 위해 온 학급을 상대로 분연히 일어났던 일류사를 영원히 기억하자는 조사를 통해 참되고 좋은 일을 하면 삶은 좋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표도르 카라마조프를 죽인 범인으로 지목된 드미트리의 재판 장면은 범죄심리학, 법학, 철학을 넘나들며 세밀한 묘사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검사 키릴로비치는 지상의 형벌은 자연의 형벌을 경감해주면서 범죄자의 영혼을 절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드미트리의 유죄를 확신한다. 반면 변호사는 명백한 증거와 치밀한 상황 구성을 통해 드미트리의 무죄를 변론하여 일순간에 법정의 분위기를 반전하는 듯 하지만, 뜻하지 않게 드미트리의 약혼녀 카체리나가 히스테리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삽시간에 드미트리는 유죄로 확정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뛰어난 감성과 면밀한 이성이 갖는 한계를 스메르쟈코프를 통해 죄된 본성으로 구현해낸다. 이반의 사상에 감수된 스메르쟈코프는 정말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표도르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최고의 이성이 넘나드는 법정이 카체리나의 허튼 감성과 맞닿자 드미트리는 순식간에 죄를 짓지 않았으나 율법상 죄인이 된다. 반면 이반은 스메르쟈코프를 만나고 온 후 자신이 실제 살인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나 살인을 교사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고 악마와 싸우며 쇠약해간다. 물론 이반은 율법상 무죄다. 이 모든 과정의 순간마다 연결고리로 등장하는 알렉세이는 당장은 무력하고 무의미해보이더라도  진실의 이면, 선과 악, 구원과 속죄의 문제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가를 드러낸다.

 

드미트리와 이반으로 사는 생 위로 알렉세이의 시선을 드리우는 작가의 역량은 단순히 그가 천재여서만은 아닐테다. 청소년 시기 맞닥뜨린 어머니의 죽음, 농장에서 살해된 아버지, 한창 때 자신과 함께했던 형의 죽음, 두번의 결혼과 어린 자녀들의 죽음, 혁명을 꿈구다 사형 집행 직전 강제노동형으로 감형되었던 경험 등 일반인으로서는 견디기 힘들었던 그의 인생 역정이야말로 삶으로 구현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아니었나 싶다. 원래는 알렉세이가 혁명군으로 변모하는 데까지 소설은 구상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여동생과 상속 문제로 다툰 후 폐동맥 파열로 사망한 것 역시 그분의 섭리가 아니었나 싶다. 혁명의 성공과 실패, 알렉세이의 변모는 어쩌면 거대한 역사, 장엄한 인생의 진실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서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테니까.

 

인생에 대해 알아야할 것은 모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에 있다-커트 보네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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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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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건강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시선이 강력하다. 또 건강이나 보건에 대한 문제는 주로 의료인들이 제기하고 해결하는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입장 역시 두텁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볼때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대해 연구자료와 함께 짚어나가는 저자의 시선은 더욱 반갑다. 건강은 특정 전문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 모두가 고민해야할 화두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차별과 폭력, 배제와 외면, 독단과 편견이 드리워진 사회 문화적 토대 위로 설상가상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재난,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존재, 와해되는 공동체가 직결될 때, 마주하게 될 보건 문제를 추론하는 것은 결코 열뜬 환희나 지적 호기심으로 남겨둘 수 없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얼마나 참혹하고 무례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부분이다. 피해자의 존재를 간과하면서 마치 함수 풀이 하듯 쉴새 없이 무책임한 대응이 투입되었고, 2차, 3차의 피해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저열한 우리의 민낯. 더구나 누가 어떤 폐해를 어떻게 입히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고 있다. 


연구자료를 통해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무의 인식을 일깨우는 데 이 책의 첫번째 미덕이 있다면, 두번째 장점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연구 토대가 얼마나 열악한지를 직간접적으로 확인시켜줌으로써 각성하게 한다는 데 있다. 데이터 수집에서부터 연구 영역 및 전문 인력 확보까지 인프라가 미흡하다보니, 우리에게 적합한 맞춤형 연구 성과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정부 프로젝트가 뒤늦게나마 시작되었고, 일부 연구 결과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세번째 가덕은 보건학적 연구 결과를 평이한 서술로 담아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술함으로써 가독성을 높였다는 점이다. 


문득 권한 있는 정부 당국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보건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공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생생하고 입체적인 건강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꾸리게 된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무가 분명히 존재한다면, 그 해결책 역시 보건학에만 짐지울 일은 아니지 않을까. 아픔이 길이 되려면 수많은 이들이 연결되고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야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말이다. 






한국 사회가 양극화하는 가운데 사회적 관계망도 역시 양극화하고 있습니다. 관계망에서 좋은 자원들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경향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을 넘어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갈지를 보여주는 연구가 향후에 진행되리라 기대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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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아픈가 - 사랑의 사회학
에바 일루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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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아픈가>의 도발적 제목 아래 붙은 <사랑의 사회학>이란 부제에 마음을 뺏겼다.  그동안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등에서 사랑을 주제로 다루는 책은 수도 없이 접할 수 있었지만, 사회학적으로 사랑에 접근하겠다는 도전은 쉽사리 접해보지 못한 것이라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 올랐다. 특히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감정사회학의 대가가 저자라고 하니, 분석의 결과에 대한 호기심은 독서를 밀고나가는 주된 힘이 되었다. 초반의 기대감을 꺾어버리는 책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저자의 뚝심있는 집중력에 경의를 표할 수 있을 정도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하고, 선택할 자유가 넓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사랑은 왜 아픈가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사랑의 아픔이란 과거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비극이라는 식의 심리학적 해석이나, 영혼에는 영향을 주지만 자존감은 건드리지는 않은 일종의 몸의 혼란이라는 의학적 담론을 거부하고, 사랑의 감정, 의례 등이 기본적으로 사회적으로 재구성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과거에는 자율과 선택의 폭이 부족한 상태에서 단지 주변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정도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랑의 확실성이 담보되었다면, 선택과 자유의 폭이 넓어진 현대의 사랑은 좀 더 나은 사랑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가치 점수화된 상품성을 실시간으로 비교하면서 불확실성의 증가되었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철저하게 사랑의 결단을 개인의 책무로 환원하기 때문에 개인은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합리적인지 고민하면서 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과학의 등장으로 모든 영역에서 합리성이 확대되면서 사랑도 합리성의 기준으로 재단되기 시작했고, 더구나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사랑에서의 공정성, 평등의 가치가 강조되면서 사랑이 일종의 절차화를 덧입게 되었는데, 이것이 사랑에서 여성의 열등적 지위를 공고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즉, 사랑의 합리성과 절차주의가 강화되는 동안 사랑의 낭만성은 철저히 벗겨졌으며, 인간이 추구하는 인정의 요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는데, 사회적으로 남성은 남성의 인정으로 충분하게 되었고, 여성은 본래적으로 남성의 인정을 추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은 이성과 감성이 분리되는 경험이 더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인터넷의 발달로 계량화, 경쟁, 유용성의 극대화, 시각화가 촉진되면서 사랑의 낭만 걷어내기는 가속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소비사회에서 다양한 상품, 문화, 영상 등을 통해 사랑을 통해 얻어야할 감정, 상상력 등을 미리 소비하면서, 허구적 사랑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실제의 사랑을 시들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랑을 사회학적으로 점검하는 가장 큰 강점은 사회 구조가 인간의 진솔한 감정과 내면을 어떻게 장악해나가는지 통찰을 보여준다는 점일 것이다. 개인적 틀에 갇혀 사안을 진단하는 대신 제 3자의 시선을 견지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충분히 재미있는 독서의 요소가 된다. 다만, 사랑의 아픔을 예리하게 분석한 것과 달리, 그러므로,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분명한 결론 제시 없이 에둘러 용두사미격으로 마무리한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자칫 깨져버릴 수 있는 관계의 섬세함을 다루는 무수한 전략을 개발했다는 바로 그 `이유`로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의 많은 측면은 열정을 온전히 경험하고 펼쳐낼 능력을 자아로부터 앗아간다. 사랑하고 결합하는 과정과 맞물려 일어나는 의심과 불안함에 제대로 저항도 해보기 전에 포기하고 마는 일은, 그래서 일어난다. 사랑을 다루는 전략의 개발이 오히려 사랑을 지레 포기하게 만드는 정말 희한한 역설이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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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기독교 이야기
유재덕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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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만큼 이성적 접근이 필요한 종교도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이성적 접근이 성숙한 신앙 발달에 무해한 것처럼 오도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고,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으면서 중세 철학의 주요 토대가 된 기독교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서양 철학의 허리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이성으로 믿음의 세계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성적인 판단이 있어야 제대로된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역사를 관통하면서 신앙의 주요 교리형성 과정이나 이단의 치리 결과를 읽으면서 신앙을 이해하고 믿음을 성숙시켜 나가는 데, 사회와 맥락, 역사와 시대상을 고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절감하게 된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무엇이 옳은가를 끊임없이 간구하고 사색하기보다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받다보니, 신앙이 피상적으로 흐르고 믿음이 제자리 걸음을 벗어나기 어려운데, 기독교 역사를 읽고 배움으로써 시대적 조망 안에서 바른 신앙과 믿음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해야한다는 점도 각성하게 된다.

 

다만, 개정판에서는 관련 지형이나 지도, 특정 국가의 역사들을 함께 수록하면 더 깊이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읽는 동안 동로마제국, 서로마제국과 관련된 별도의 자료를 찾아봐야만 이해가 되는 대목도 있었고, 특히 이단의 경우에는 그 계통이나 특성을 개괄적으로 요약한 도표 등이 있다면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싶다.

 

현대 부분에서는 유명 목회자를 중심으로 기술하다보니 서양이 주가 되는 점도 없지 않은데, 한국 기독교 역사를 간략하게 수록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유례없이 사회적 비판을 받고 있는 까닭을 현대 들어 한국 기독교 역사의 맥락 속에서 짚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본회퍼는 히틀러에 맞서는 크라이사우 서클이라는 저항조직 핵심부와 연결되었다..중략..그 일에 관여하게 된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죄 없는 구경꾼들의 무리를 향해서 차를 모는 미친 사람을 본다면,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저 재앙을 기다리다가 상처 입은 사람을 위로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수 없다. 나는 그 운전자의 손에서 운전대를 뺏으려고 애쓰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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