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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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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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정치학 -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읽기와 쓰기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3
홍성민 지음 / 현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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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 현상을 이해할 때 계급적 관점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특히 취향과 문화를 접목하여 문제를 해석하고 해결하는 데 미흡한 우리의 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이 책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인용하면서, 아비투스가 어떻게 계층을 구분하고, 권력으로 작용하는지 설명한다. 부르디외는 개인은 일상의 영역, 공공의 영역에서 일정한 성향과 인지 틀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아비투스라고 명명했다. 아비투스는 개인에게 육화된 성향이고, 사회적 구성물로서 개인이 사회적 공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상이한 아비투스를 갖게 되므로, 차별을 만들어내고 계급별 구별 짓기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학문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교육이 아비투스에 의한 차별을 강화하며문화권력의 정당성을 용인하는 수단이 된다며,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교육 개혁을 이끌었다.

 

부르디외가 연구한 프랑스의 현실과 맥락이 우리와 달라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왜 진보 정치가 우리 사회에서 갈팡질팡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린 유교문화, 정치인을 향한 일반 국민의 기대감 등을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사상과 이론을 주창해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국민의 의식수준이 개도되지 않았고, 계급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으며, 시민사회가 미성숙하다는 등의 진단이 오히려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큰 틀에서 보자면, 우리가 처한 역사성,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자라난 우리 국민의 아비투스가 어떻게 투영되고 진화하는지 포착하는 것이 우선일 수 있다는 것.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가 어쩌면 진보 정치의 한계로 작동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한 아비투스가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가져오는 한편 권력으로 작동한다면, 역설적으로 건강한 아비투스를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늠하게 한다.. 선민의식, 노블레스 오블레주, 선비정신 등 한 시대와 사회를 표방하는 집결된 의식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운지 보여주는 시금석.

 

고전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과 틀을 제시하는 총서가 꾸준히 출판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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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 강의 진주, 라오스 - 들여다보기, 이해하기, 돌아보기
이요한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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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여행을 앞두고 라오스의 문화, 역사, 정치 등 사회상을 알고 싶어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현재 라오스 스파누봉 대학교 교수님으로, 일목요연하게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 동남아시아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다시 자각.

 

인상 깊은 것은 라오스가 정치적으로는 일당독재의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 관광지 소개 말고는 탈북자들의 북송 문제로나 국내 뉴스에 나오는 나라이다 보니, 자연스레 자본주의 경제는 아닐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었던 것. 메콩 강을 근간으로 수력발전을 통해 전력을 수출하고, 보펜양 문화(괜찮아)가 보편적이라는 점, 언어에 시제가 없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전후 맥락에 집중해야만 상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문화 속에서 자연히 사람에게 더 집중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저자도 지적했듯이 우리나라의 라오스에 대한 원조 정책은 안타까움이 큰 부분. 한 때 라오스를 점령했던 일본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전략에 따라 라오스에 원조를 하는 것과 달리, 라오스 내 친한 정서가 풍성한데도 경제적인 지원으로만 마무리하고 있는 우리의 대외 정책은 되짚어야 할 것 같다. 특히 정부의 제대로 된 지원이 미흡해 교수님 혼자서 한국 협력 센터를 스스로 설립하여 운영해야하는 현 상황은 우리의 대외정책이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바뀌었다는 감격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북한, 우리나라와 동시에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라오스. 단순히 관광지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라오스를 보고 싶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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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잠들지 않는다
임종욱 지음 / 북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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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독특한 소설의 구조를 지녔다. 각 장의 서두에 김만중과 아내가 서로 주고받는 1인칭 관점의 편지글이 소개된 후, 편지글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다시 3인칭 관점으로 전개되며 확장된다. 이렇게 1인칭과 3인칭이 교차되는 구조가 갖는 미덕은 동일한 이야기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1차적으로 김만중의 눈을 통해 걸러진 이야기의 큰 흐름과 맥락을 미리 파악한 후, 다시 3인칭 관점으로 묘사되는 세부적인 이야기를 읽게 되므로, 관점 바꾸기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의 미묘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 1인칭과 3인칭을 넘나드는 전개 구조는 소설 속 김만중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는 장점도 갖는다. 서두의 편지글에서는 전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으로서의 김만중이 두드러지므로, 나머지 인물들은 자연스레 김만중에 의해 해석되는 조연에 머무른다. 그러나 편지글에 바로 이어지는 3인칭 관점의 전개 속에서는 숱한 인물들이 각 장의 주인공으로 생생하게 거듭난다. 박태수, 옥진이, 양설규, 나정언, 아미, 호우, 채란, 덕보, 홍길찬, 소정 등은 각각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세밀하게 그려지고, 오히려 김만중은 단지 이들의 얽힌 삶을 엮어내는 조연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이렇게 관점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소설의 구조는, 전체적으로 김만중도 소설 속 숱한 주인공들 중 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드리우게 된다. 그 결과 주인공과 조연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사연 많은 그들의 삶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남해’라는 유배의 땅에서도 멈춤 없이 풀무질 되는 질긴 삶들이 뒤섞이는 모습을 한 눈으로 보듬게 되는 것이다.

 

독특한 소설의 짜임새가 전체적인 이야기의 윤곽을 명확히 짚어내는 데 일조한다면,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더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김만중이 왜 유배지에서 한글로 소설을 썼는지 추적하는 집요한 물음과, 작가의 상상력이 쏟아내는 치밀한 시선이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의 단초는 장 선달 댁 며느리의 이야기와 양설규의 행보 등 김만중이 절망의 유배지 현장에서 직접 겪은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내용이라는 설정이다.

 

조선의 정 중앙에 서서 끊임없이 백성을 입에 올렸지만, 정작 그들과 섞이지 못했던 김만중이, 주변부로 밀려나 유배를 온 후 백성과 삶을 섞고, 함께 어우러지고 나서야 진짜 조선의 백성이 되고, 백성을 위하게 되었다는 주제 의식은 뜻하지 않은 감동을 주었다.

 

김만중이 중앙 무대로의 복귀를 꿈꾸며 위대한 작품을 남기겠다는 거창한 의지를 다지거나 어두운 정치의 이면을 신랄하게 풍자해 백성의 여론을 주도하겠다는 원대한 소망으로부터 소설을 써나갔다는 설정이었다면 어떠했을까. 김만중 개인의 천재성과 치적은 돋보일지라도 소설이 주는 문학적 감동은 현격히 줄어들었을 게 자명하다.

 

삶은 중심에서만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멀리 주변부의 낮은 곳에서도 어김없이 피어나고, 그 좌표가 어디든 날것으로 주어지는 생을 살기 위해 제 할 일을 다 하며 함께 걸어 나가는 것, 거기서부터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긋는 작품이 탄생되었으리라는 작가의 상상력은, 그러므로 나에게는 또다시 남해에서의 힘찬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벼리가 되었다.

 

소설 속 김만중은 한글 소설 쓰기를 통해 어머니와 아내, 주변부로 밀려난 삶들을 보듬게 되었고, 그 삶들을 그들의 언어로 체현하려는 소박한 꿈을 꾸게 된다. 관념과 이상만으로는 결코 마주할 수 없는 생생한 실체들을 마주한 그에게는, 어쩌면 유배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을는지 모른다.

 

한편 사씨남정기, 구운몽의 탄생 과정과 더불어 씨줄처럼 가로지르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이야기, 박태수와 옥진이의 사랑, 호우, 아미, 나정언 간에 오가는 엇갈린 풋사랑은 소설이 갖는 이야기의 폭을 한층 풍성하게 한다.

 

신분 사회가 품은 구조적 한계에 매인 그네들의 삶이지만, 각자 자신들답게 제 몸짓의 생을 살아가려는 몸부림은 생경스러울 정도로 신선하다. 그들의 애잔한 사랑 이야기는 열린 결말이어서 더욱 여운이 남는다. 소설 속 세상이 닫힌 조선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박태수와 옥진이, 호우와 아미, 그리고 나정언이라면 어떻게든 그 막힌 구조를 비집어 파고들며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그려 나가리라는 확신이 든다고 할까. 그만큼 이들은 소설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확고히 하며 그들 특유의 생명력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다.

 

다만 김만중이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내려오면서 유배 기간 동안 느꼈을 비련, 애증, 분노 등에 대한 묘사가 좀 더 강조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만중의 성품이 원래부터 단아하고, 선비 정신이 드높아 주어진 삶을 달관의 경지에서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자칫 김만중의 한글 소설이 백성에 대한 시혜적 글쓰기로 머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만중 역시 여느 민초들처럼 똑같이 아파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인물이었지만, 유배지에서 만난 민초들의 삶을 통해 성숙해지는 과정이 조금 더 섬세하게 그려졌더라면, 그의 소설이 김만중만의 것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삶을 나눈 이들 모두의 것이라는 주제 의식이 뚜렷하게 부각되면서,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

 

활자를 읽는 내내 염두에 두었던 것이 소설의 제목이었다. 왜 작가는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을까. 단순히 김만중이 유배 중에 쓴 한글 소설들이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다다른 끝이라고 여겨졌던 주변부에서 김만중이 죽음으로써 남해에서의 유배를 끝냈어도, 지속적으로 숱한 삶의 이야기를 피워내는 주변부의 백성들이 살아내는 한, 또 다른 사씨남정기, 구운몽은 수많은 김만중들에 의해 피어나리라는 의미에서 덧붙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어디에서건 생이 지속되고, 너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엮이고 이어져 마침내 하나의 큰 덩어리로써 다시 거대한 이야기로 줄기져 가는 한, 김만중은 죽을 수 없고, 민초들은 멈출 수 없으며 남해는 결코 잠들 수 없다.

 

생의 겉모습에 천착하며 깊은 곳으로 침잠하는 대신, 때로는 표독스러울 만큼 괴로운 생의 생채기일지라도 있는 힘껏 껴안으며, 저벅저벅 걸어 나가는 생의 의지를 되새기는 것이 구원의 해답일 수 있다는 사실.

 

내가 지금 서 있는 좌표와 맥락을 당장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마침내는 많은 이들의 걸음이 맞닿고, 이어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큰 줄기로 이어져 나가리라는 확신. 부서지고 무너져 철저히 분리되었던 나의 삶과 너의 삶이 만나 우리의 이야기로 부활하는 그 아름다운 여정이, 김만중을 추적하면서 작가가 정말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왜란을 가로질러 살아내고, 유배지란 오명 속에서도 삶을 피워낸 숱한 민초들의 삶이 계속되는 한, 어느 시대와 조건 속에서든 김만중은 김만중답게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썼을 테고, 소설 속 숱한 주인공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너끈하게 살아냈을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한 인터뷰에서 문학은 주변부에서 쓰여야 한다고 했다. 중심에 서서는 결코 문학의 사명을 다할 수 없다는 게 지론이었다. 밀려나고 어그러져 초라한 모습으로 선 주변부에서, 있는 그대로를 편견 없이 목도하여, 가려진 생의 이면, 중심부와 주변부를 관통하는 궤와 그 의미를 포착하는 게 문학이 정말 해야 할 일이라는 취지였던 것 같다.

 

중심부에서 순식간에 주변부로 밀려난 김만중을 쫓으면서, 주어진 생을 자신답게 살아내는 개인들과, 그 개인들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면면한 생의 역사를 그려내는 동시에, 누구 하나 조연으로 전락시키지 않으면서, 주변부와 중심부의 인위적인 경계를 한꺼번에 무너뜨린 작가의 역량에 감사했다. 그만큼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문학적 소명에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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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나라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2
박종현 지음 / 즐거운상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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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나라>라는 부제가 보여주듯이, 읽고 나면 말레이시아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그리고 얼마나 친근한 나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말레이시아의  말라야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장기 체류하면서 현지 생활을 오랫동안 경험했고, 또 직업인 기자 정신을 발휘하여 쓴 글이라서 그런지, 피상적이지 않고 실제적이고 입체적인 말레이시아의 모습이 그려진다.

 

말레이시아는 인도계, 중국계, 말레이계 등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국가답게 다문화의 다름에 대한 수용성이 높고, 영어, 말레이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가 통용되면서 수년 째 퇴직 후 살고 싶은 나라 1위로 꼽힐 만큼 동남아시아의 중심 국가로 부상하고 있단다. 특히 이슬람 문화를 가졌으면서도, 기독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를 허용하고 있는 점도 다민족이 하나의 말레이시아를 이루도록 하는 통합의 기초로 작동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주요 동남아 국가를 2시간 내로 왕복할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라는 점도 말레이시아의 강점이다.

 

만 17세 이하 모든 국민은 남녀를 불문하고 군대를 가야하되, 추첨제를 통해 약 20%만이 입대를 하고, 복무기간이 3개월이라는 점, 지역의 술탄 중에서 5년마다 국왕을 선출하는 데, 술탄이 사실상 모두 말레이계여서, 국왕은 말레이계만 될 수 있다는 점, 제조과정, 제조 회사의 운영까지도 꾸란의 가르침을 준수해야만 인증을 받을 수 있는 할랄푸드 인증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할랄푸드가 아니면 제품 경쟁력이 현격히 떨어지므로, 말레이시아에 진출한 세계적인 패스트푸드점조차도 할랄푸드 인증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 말레이시아 최고의 대학인 말라야 대학의 교직원 절반이 여성이며, 여성 총장은 물론 공직에 진출한 여성이 많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편이라는 점, 이슬람 금융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으며, '진짜 아시아, 말레이시아'를 앞세우며 국가 브랜드 정책을 우리나라보다 한 발 앞서 내세웠을 정도로 국제적 감각을 갖추었다는 점,  마하티르 총리의 정치적 역량, 우리보다 6개월 먼저 우주인을 배출했을 정도로 우주 산업에 대한 관심도 높다는 점, 우리나라가 신 행정수도 정책을 추진할 때 참고했던 푸트라자야에 대한 소개 등은 말레이시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흥미로운 대목. 

 

종교로부터 시작된 절제된 생활 문화, 다민족을 품은 관용 정신 등이 깊게 뿌리 내린 사회 문화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도  통합, 안정, 신뢰의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지 말레이시아가 그 해법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 같다.

 

랑카위, 코타키나발루, 쿠알라룸푸르 등 주요 도시에 대한 소개도 되어 있어, 간략하지만, 여행객들에게도 도움이 될 듯.

 

저자의 의견대로,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부족하고, 편견과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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