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바흐 : 부활절 오라토리오, 악투스 트라지쿠스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작곡, 가디너 (John Eliot Gar / SDG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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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에 들렀다가 부활에 대한 연구 총서라는 점에 끌려 구입했다.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저자들의 주장대로 평신도도 충분히 사색하며 읽을 수 있도록 편성한 부분이 돋보인다.

 

캐나다, 스위스, 프랑스의 신학 대학 교수인 저자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부활"을 조망한 연구 결과물을 한 데 엮은 것으로,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저자들의 소개대로 부활에 대한 정보를 보완하는 한편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의 개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차원과 의미들을 탐색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1부에서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의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이해, 유다이즘에서의 부활 사상,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몸, 영혼, 내세의 삶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다루고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이집트인들의 죽음에 대한 이해 부분이었는데, 이집트인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신체적 요소와 비신체적 요소로 나뉘어 있고, 몸은 여러 영적인 부분으로 인해 살아움직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바는 번역하기 어렵지만 영혼으로 이해할 수 있고, 죽는 순간 바는 몸을 떠났다가 미라가 된 몸과 합치되어, 소생시킬 때 되살아난다고 이해했다. 카는 바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각양 각색이라고 한다.  신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침투하면서 개인의 인격 자체까지 드러내는 것으로, 초상이나 조각상은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 그의 '카'가 된다고 믿었고,  시신이 소실되면 조각상이나 초상이 있는 한 사후 삶을 카가 보장한다고 이해했다는 것이다.  또 인간의 궁극 목표는 카와 바가 결합하여 아크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려면 몸인 제트를 보존해야 하므로, 이집트인들은 내세에도 몸이 존속하여 삶의 그릇이 되어야한다고 이해했다는 것이다. 당시 최고 문명을 구가하던 이집트에서는 영원과 부활에서 몸의 영속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 미라를 만들었다는 것이 단번에 이해된다. 이집트인들이 죽음을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본 반면, 소포타미아인들은 모든 인간은 지옥으로 가며 어떤 구원의 여지도 없는 것으로 인식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저자는 안온했던 이집트와 침략및 전투에 점철된 메소포타미아의 역사적 인식에서 세계관이 달라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2부에서는 복음서, 당시의 언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 찬가, 외경 등을 살펴보면서 부활의 실재성과 역사적인 측면을 다룬다.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이 책의 주요 저자이기도 한 오데트 맨빌의 연구 부분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현을 선교적 성경의 발현, 교리교육적 성격의 발현, 여인들에게 나타난 발현으로 나누고, 부활이 단순히 의례적인 주님의 방문과 위로가 아니라 그 목적이 교회를 세우고, 교리를 교육하는 수단이 되며, 동시에 역사성을 담보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멘빌 연구 부분을 읽다보면 복음서를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 소중한 단서를 얻게 된다. 또 외경문학에서의 그리스도의 발현과 연결해보면 영지주의자들의 글에서 왜 부활과 발현 이야기가 만연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 역사적인 승자의 기록이 정경이며 배척된 이들의 외경이 이단이 되었을 뿐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맥락화된다. 환시와 계시를 보는 것을 넘어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부활의 개념이 명확해져야하는 이유도 적확하게 깨닫게 되는 장점이 있다.

 

3부에서는 미래지향적 부활의 의미를 파고든다. 앙드레 미르는 성경에 근거하여 '몸'이 단순한 육체적 물질을 넘어서서 세계와 소통의 통로로서의 몸의 의미를 이야기하면서, 부활이 인류의 일체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 모든 인간에게 가능하며 모두를 위한 실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개인마다 따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성격을 가진 부활을 통해, 구원은 결국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누구에게나 가능한 보편성을 띠게 된다는 데까지 확장해나간다. 부활의 재창조적 의미를 창안해나가면서 미래적 의미를 실재로 끌어당겨 현실에 토착화시키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라는 점도 주장한다.

 

한 번의 독서로 신학자들의 연구를 보듬어 이해하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의 독서만으로도 부활의 역사적, 신학적, 미래적 측면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하는 한편, 명료하게 인식하려는 시도는 거듭 반복되어야한다는 데 저자들과 인식을 함께 하게 된다. 연구자인 저자들 뿐만 아니라 귀한 연구를 기획하고 후원한 분들께도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귀한 연구서다.

이 책의 목표는 부활이라는 주제에 관한 취약한 수준의 정보를 보강하는 것 외에도,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교 개념을 좀 더 명확히 하는 데 있다.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활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했던 언어들을 조사하고, 부활의 상징화와 의미의 효과들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다...중략..그리스도이신 예수 사건 안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인간의 운명에서 부활에 대한 희망을 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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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교회의 뒷골목 풍경 - 교회사 뒤에 숨겨진 중세인들의 문화와 삶 인문학으로 성경 읽기 시리즈 3
박양규 지음 / 예책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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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문제 의식은 중세를 암흑기로 규정하면서 종교개혁의 기치가 높아질수록 종교개혁의 진의가 오히려 퇴색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는 데서 출발한다. 중세인가, 근세인가, 현대인가의 중요성을 따지기보다  생존을 위해 언제나 "현재"를 살아내는 개인들의 얽힌 삶을 조망하면서, 시대와 맞닿았던 믿음의 굴곡진 노정을 관통하지 않는다면 누가 현재 중세의 카톨릭 역할을 맡고 있는지 직면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도 피력한다. 루터나 칼뱅의 종교개혁을 시대의 산물로 이해할 때, 특정 개인에 대한 왜곡된 숭상을 멈추고 우리 믿음의 현주소를 제대로 짚어나갈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는 결연하기까지 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구성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를 배경으로 카톨릭의 권력, 제국의 도약, 성직자와 왕들의 권력 다툼, 독단과 욕망으로 뒤틀린 신앙과 믿음의 배신을 차근차근 풀어가는 데 있다. 또 민중들의 삶을 주로 그린 농민화가였던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을 통해 종교와 신앙, 성직자와 민중을 대비시키며 중세의 뒤틀린 사회의 단면을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한편, 중세 역사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성당, 궁전 등을 사진으로 수록해 가독성은 물론 이해의 폭을 풍성하게 넓히도록 친절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초서는 <캔터베리 이야기>를 통해 법률가, 기사, 의사 뿐만 아니라 중세의 대표적인 살아있는 권력, 성직자들을 풍자하면서 시대에 저항한 동시에 당시에 멸시당하고 하찮게 여겨졌던 갑남을녀의 이야기들을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하면서 상당 부분 지면을 할애하는,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민중을 사랑한, 신앙인으로 표현된다.

 

세상에 대하여 가장 극렬한 분노를 내뿜으며, 신앙의 순결성을 내세워 하나님의 권능을 자신들의 권력으로 둔갑시켜 향유했던 중세 교회가, 슬며시 우리의 부끄러운 좌표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초서처럼 아무 힘도 없는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들과 함께 하고, 잘못된 믿음에 저항할 수 있는, 그것이 진짜 종교 개혁의 정신은 아니었는지 되묻는다.

 

신앙과 믿음의 관점에서 중세를 바라보며 현재를 통렬하게 반성하게 하는, 저자의 성실하고 진지한 시도가 두고두고 감사할 것 같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갑질의 중심에는 언제나 기독교가 있었다. 사회에서 지탄받는 재벌과 정치인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현상은 교회의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다. 교회는 십일조와 예배, 전도와 선교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초서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줄 여력이나 마음도 없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은 예배보다 사랑이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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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 철학.정치 편 - 인간이 남긴 모든 생각
박민영 지음 / 청년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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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는 이즘을 '세계를 보는 나를 보는 일'이라고 정의내리면서 이즘은 경제, 과학, 예술, 종교 등 지적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지만 분야별로 구분하거나 전공자 내지는 전문가의 명명 형식으로 분류되어 제시되므로, 통합적인 과점에서 이즘을 개괄하기 어렵다는 토로로 이 책의 기획을 설명한다. 특히 서문에서는 이즘에 대하여 철학, 정치 편과 사회, 문화, 종교 편 두 권으로 출간할 계획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이 책이 첫째 권이라고 소개한다. 책을 읽고 다면 두 번째 권도 읽고 싶어지기 마련인데, 안타깝게도 아직 두 번째 권은 출간 전인 것 같다. 연작의 출간을 기다리게 하는 저자의 풍성한 지적 사유는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즘이 탄생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고, 그 영향력과 주요 의미를 사전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덧붙이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의 견해가 제시되므로 독단적이거나 주관적 글쓰기에 갇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더해가는 동안 오히려 저자와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지는 것 같은 능동적 독서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낸다.

 

철학 편보다는 정치 편을 더 흥미롭게 읽은 것 같다. 철학 편에 비해 정치 편은 2008년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루어지는 사회적 논의에도 예리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눈여겨 본 대목은 사회민주주의와 페이비어니즘인데, 불평등, 격차, 공정성에 대한 회의가 점철된 우리 사회에게 뜨거운 화두를 던지는 이즘.

 

페이비어니즘을 탄생시킨, 페이비언협회가 1884년 영국에서 창설될 때 노동자가 아니라 진보적인 자유주의 지식인의 모임이었으며 자본주의와의 단절을 주장한 마르크스 사회주의와 달리 자본주의를 계승하되, 일그러진 자본주의 체제 안에 사회주의적인 제도를 심어가면서 자본주의를 수정해나가려는 시도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렌트의 개념은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하기 쉬운 개인의 능력이 사실은 그 능력을 갖추도록 한 유리한 가정 환경, 공교육의 혜택 등을 고려해 기회의 렌트를 유추해보야한다는 것이다.

 

실제 능력과는 상관 없이 대중이 상상함으로써 높은 소득을 올리는 상상의 렌트, 부유층끼리의 경쟁으로 얻는 인플레의 렌트, 어떤 특정 지위에 있다는 것만으로 받게 되는 지위의 렌트, 자질이나 신체 조건으로 화폐 소득을 올리게 하는 요령의 렌트, 노력과 상관 없이 수요-공급의 불균형으로 수익을 올리는 수요과 공급 렌트에 주목하면서 통상적인 경제적 임금을 넘어서는 이익은 모두 렌트의 개념으로 치환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토지, 자본, 능력은 오히려 공유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국가가 할 일은 특정 그룹의 렌트 전용을 막으면서 사회적으로 공유시키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본다.

 

저자는 페이비어니즘이 영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설명하면서 급진적인 사회 변혁 대신 점진적인 변화를 모색한 점이 오히려 사회주의보다는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일조했다는 통찰도 제시한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에 일종의 두려움 내지는 혐오감이 두터운 우리 사회에서도 보다 진전된 사회를 위하여 한번쯤은 함께  생각하며, 토론할 수 있는 이즘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즘은 당대 사회적 조건과의 관계, 이전 역사와의 관계, 다른 이즘과의 관계 속에서 탄생한다고 했는데, 자본주의의 병폐가 빠르게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지식인 층에서는 왜  페이비어니즘과 같은 이즘이 생생한 운동력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인지, 대채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풀죽는 의문도 생겨난다. 남북 대치 상황으로만 문제를 단순화시킬 수 있을까 자문해보면 오히려 암담해지는 그런 의문.

객관적이라는 미명 하에 저자의 관점이 투영되지 않은 책은 오히려 생기 없는 지식을 전달할 뿐이다. 모든 독자가 나의 관점에 동의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 고유의 관점이 투영된 책은 독자가 그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도 중요한 지적 실마리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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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성학 강의 - 한국사회.여성.젠더, 학술총서 22(개정판)
한국여성연구소 엮음 / 동녘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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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과연 약자인가라는 질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많겠지만, 여성의 사회문화적, 역사정치적 좌표를 확인하다보면 사회적 약자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데 통찰력을 제공하리라는 주장에는 모두가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해부하고 따져보면 비로소 보이는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발견해내고 도울 것인가, 이 책은 작은 파문처럼 주제들이 맞닿고 간섭하며 커다란 동심원으로 나아간다.

 

일종의 여성학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데, 2005년에 발간되어 시대, 사회적으로 낡은 쟁점으로 퇴보한 일부 주제도 있지만, 페미니즘의 이론, 여성사, 여성성과 젠더 정체성, 소비주의 사회와 여성의 몸, 여성의 관점에서 본 영화, 여성과 성문화, 가족과 여성의 지위, 여성노동의 현실, 여성과 법, 국가 여성 정책의 변화,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 북한 여성의 삶, 세계 여성운동의 발전사 등을 각각의 전문가들이 나누어 기술함으로써 학술적 결과를 망라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주제는 아무래도 페미니즘 이론이었다. 일부에서 성별 혐오가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드리워지고 있는데, 그 이면의 동적 바탕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저자는 자유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등을 소개하고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도 동등한 인간이라는 이념 아래 여성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하며 사회 구조보다는 제도나 관행을 바꾸는 데 힘을 쏟았다. 여성의 시민권,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여권 신장에 기여한 반면, 주변부 여성보다는 중산층 이상, 백인 여성 등 우월한 지위의 여성들에 대한 권익 향상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마르크스 페미니즘은 노동 계급 여성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는데, 여성문제는 결국 경제적 억압구조, 자본주의 제도의 문제라고 인식한다. 여성이 근본적으로 수행하는 노동, 같은 사회 안에서도 여성들의 계급적 위치에 따라 차별과 억압이 나타나는 방식이 다르다는 발상은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가령 엥겔스는 최초의 분업은 남녀 성별 분업인데, 사회경제적인 변화로 말미암아 바깥일이 중요해지면서 이를 담당하던 남성이 지배권을 획득하고 이것이 여성 억압의 기원이라고 설명한다. 자본주의 체계는 원활한 노동력 수급을 위해 노동자의 차이와 차별을 필연적으로 수행하는데, 여기에서 성의 범주에 따른 차별이 나타난다고도 해석한다.  또한 여성에게 본령은 가정이며 직업은 부차적이라는 통념을 주입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여성을 생산자로 끌어당기고 한편으로는 가사노동자로 규정함으로써 자본은 이중의 이득을 보면서 여성 노동자의 가치를 낮춘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문제는 여성 문제를 산업 노동자의 문제로만 환원한다거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고 탓하는 데서 오는 확장성의 빈곤.

 

급진적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은 그것이 곧 체제라고 인식한다. 여성 집단을 억압하면서 얻는 이득은 자본이나 사회구조가 아니라 남성 자체라고 보는 관점이다. 임신과 출산을 하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고, 생물학적 가족 자체가 여성을 억압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본다. 한편으로는 심리사회적으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성적 지위에 있어서 차별을 가져오는 근간이라고 해석한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공론화했듯이 이성끼리의 사랑만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이성애주의가 남성중심주의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이성애를 평등한 관계로 또 레즈비언이 아니더라도 자매애를 강조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현상을 남녀대립의 틀로 설명함으로써 문제를 단순화하고 결정론에 빠지게 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 한계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마르크스주의와 급진적 페미니즘을 통합한 데서 출발한다. 현재 여성의 문제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가사노동이나 출산을 재생산으로 개념화하거나 여성이 여성으로 겪는 문제를 더 구체화해 논의를 활성화하고자 하지만, 이론적 기술방식이나 결과가 보다 정교해질 필요성이 있다.  

 

한편 페미니즘 이론 외에 흑인 여성들과 포스트 모더니즘적 문제 의식과 같은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흑인 여성들처럼 실제로 다른 처지에 놓인 여성들의 문제가 있는데, 이것이 남녀차별의 문제보다 덜 중요한가 하는 것이고, 여성과 남성을 하나의 일반화된 집단으로 상정하고 대립시키는 것이 특정한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그 자체로 여성인 한 인간을 억압하는 또 하나의 기제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실천이나 운동에 있어서 다양한 요소가 섞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면서 각 요소의 특성을 살피고 다양한 입장을 포괄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라고 마무리한다. 이론은 현실을 설명하는 하나의 수단일뿐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겸허히 수용해야하며, 이론적 지평을 확장해나가면서 생태적 사유, 사회적 약자로의 정진을 이야기한다. 대립과 반목, 대결과 비난이 지펴진 현장에서 새겨들어야할 권고가 아닐까.

여성학은 여성이라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편파적이고 배타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여 온 기존 학문과 전통적 지식의 많은 부분에는 여성 차별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인종 차별적, 계급 차별적인 편견과 오류가 있다. 여성학은 이 모든 차별적인 편견과 오류에 도전하는 비판적인 학문을 추구한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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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 힘겨운 시기에 위로와 용기를 주는 치유 에세이
나오미 레비 지음, 김수정 옮김 / 로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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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고통의 원인을 진단하고 긍정의 마음과 태도를 갖도록 독려하는 목소리는 많지만 잠잠히 신음을 들어주고 함께 견뎌주며 지금의 모습이 최선이라고 다독이는 위로가 필요하다면, 나오미 레비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자신의 소명을 충분히 감당한 듯 싶다. 그녀는 힘을 내라고 외치는 대신 우리에게는 힘이 있다고 말하며 기다려준다.

 

사춘기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를 괴한의 총탄에 잃은 그녀는 겉잡을 수 없는 감정으로 방황을 하게 되고 사랑했지만 결국 남편과도 헤어진다. 예측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혔지만 하나님에게 저항하고 울부짖는 속에서 다시 일어나 미국에서 유대인 최초의 여성 랍비가 된다.

 

비탄과 절망, 좌절과 분노로 점철되었던 삶을 살았던 그녀는 하나님은 선하신가, 선하시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불행을 주시는가, 아니 비극의 순간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끊임없이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불행과 비극이 왜 임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 끝에서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는 절망과 낙담에 처한 이들이 등장한다. 외출하는 도중 납치되어 성폭행을 당한 미셸, 토라 봉독을 맡아 들떴지만 입장권이 없다고 회당에 들이지 않은 성도 때문에 20년 동안 신앙을 버린 짐, 겉으로는 모범적이었지만 도박 중독에 빠진 케이스, 횡령 혐의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이혼당한 프랭크, 아내의 불임으로 자녀를 갖지 못했지만 입양을 택한 브래드, 자녀의 정신 질환을 직면하지 않는 사라의 부모님, 아이를 사산으로 잃은 샤리, 갑자기 루게릭병을 앓아 소천하게 된 로이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루이,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소천한 소녀 레베카, 화재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데이비드 도로시 부부, 남편을 한 순간에 잃고 낙망한 저자의 어머니까지.

 

 나오미는 참담한 인생의 전환점에 선 그들과 함께 하면서, 또 자신의 생을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성경 말씀이 전하는 교훈, 그리고 그 순간에 필요한 기도문을 중간 중간 소개하면서 삶에서 상실과 고통, 고난은 겪을 수 밖에 없고  상처 자국이 남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강건하고 또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고 진술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자 후기였다. 정신과 의사인 역자는 위암으로 언니가 소천하자 자신이 진단하고 처방하는 전문가일뿐이지 인생의 문제에 철학적이고 영적인 해답을 줄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이 책을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 신비한 영역에서 필연적인 만남이었을 수도 있다고 언급하면서,  순례의 길에서 이제는 혼자가 아닌 것 같다고 했는데, 나 또한 충분히 공감한다.

 

힘든 삶의 노영에서 영적인 위로가 더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위로가 가능하단 말인가,  우문현답을 알고 싶다면 꼭 추천하고 싶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 어떻게 이런 일이 그토록 선한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가 있나요? 어떻게 하나님은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 수 있나요?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해답은 없다. 오직 질문만 있을 뿐이다. 이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일만이 우리의 몫이다. 혼돈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나갈 수 밖에 없는 것,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상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의문으로 가득 찬 곳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 P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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