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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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더라도 신령한 몸을 입고 천국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부활의 의미는 단지 그것뿐일까. 현재의 삶에 미치는 부활의 놀라운 함의, 그리고 그 현재성과 확장성에 천착하는 대가의 활자들은 숨막힐 정도로 유려하고 섬세하지만 또 냉정하리만큼 담백하고 단호하다.

 

명망가 귀족 출신 네흘류도프는 우연히 배심원으로 참석한 재판정에서 자신과 밀정을 나누었던 마슬로바가 살인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모습을 목격한다. 젊은 날의 한 때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지만, 유약한 객기의 발현 정도로만 밀어두고 여지껏 잘 살아왔는데, 살인 누명을 쓴 피고를 마주하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양심의 가책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녀의 타락과 절망, 그리고 억울한 처지를 목도하면서 회심을 하지만, 처음에는 일견 자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내지는 대견함도 뒤섞여 있다. 그녀를 만나고, 누명을 벗길 방도를 찾으면서 감옥의 비참한 처지, 민중들의 날것으로서의 삶을 마주하게 되고 상류층의 위선, 방만한 사회 제도의 타락상을 점점 더 깊게 알아나간다. 마슬로바 역시 첫 사랑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되는 대로 인생을 살아 마침내 감옥까지 흘러들어왔지만, 감옥 안에서 혁명가와 정치범 등을 만나면서 단지 억울함을 풀거나 네흘류도프를 이용해 감옥에서 벗어나려는 개인적 생의지에서 벗어나 네흘류도프 대신 혁명가를 결혼 상태로 택하는 사회적 삶으로까지 확장해나가는 자세를 갖게 된다.

 

소설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한 편이지만, 등장인물의 외양이나 심리에 대한 묘사는 생생할 뿐더러 사법 제도의 세세한 부분까지 파헤치는 작가의 역량 때문에 읽는 내내 손에서 책을 놓치 못할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

 

덧붙여 기독교 문화, 혁명에 목말라 있는 러시아인들에게 부활의 의미를 정공법으로 묻는 주제의식은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가령 네흘류도프가 자신의 토지를 무상으로 배분하는 장면은 생경할 정도로 차분한데, 헨리 조지의 사상에 고취되어 정의의 사도로써 분배를 실시한다기 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은 것을 실천함으로써 회심한 신앙인의 노정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동료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지위나 명망을 버리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존중하고 헌신하는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감옥이라는 특수한 환경조차도 억압할 수 없는 부활한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네흘류도프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후 그의 죄책감과 의무감을 덜어주려고 기꺼이 시몬손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마슬로바 역시 어떻게 부활은 임하는지 보여준다.

 

톨스토이는 기독교 세계관을 투영하여 단편적인 교훈이나 설교로써 마무리하는 대신 우리의 뒤엉킨 삶속에서 어떻게 참된 부활과 구원을 체득하고 덧입는지 소설<부활>을 통해서 그 과정을 설파한다. 또 실천과 변화가 없는 회심 없이는 구원의 역사는 시작될 수 없고, 나의 죄인됨을 인정함 없이는 부활을 경험할 수 없으며, 나를 넘어서는 연대 없이는 천국에 들어설 수 없다는 진리를 소설을 통해 온전히 드러내보인다.

우리는 이와 다름없는 일을 지금 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자기 생명의 주인이며 우리의 향락을 위해서 생명이 주어졌다는 어리석은 착각 속에 살고 있으나 이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보내졌다면 그건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서 어떤 목적을 위해 보내졌음이 분명하다...너희가 먼저 신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나머지는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 밖의 것을 찾고 있다. 그러므로 찾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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