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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ㅣ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평점 :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보다 더 흥미를 끈 것은, 오롯이 제목과 강렬한 표지의 색감이었다. 21세기 소설 제목으로 통용하기에는 뭔가 어색한 '사탄'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붉은 색 바탕에 철심으로 그어댄 것 같은 삭삭한 선들이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붉은 표지에 균열이라도 낼 것처럼 꾹꾹 눌러댔을 법한 뾰족한 선들은 표지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는 동시에, 표지를 뚫을 것 같은 강한 강도를 가늠하게 하는데, '사탄'이라는 단어와 기묘하게 어울리는 디자인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튼, 표지와 제목에 사로잡힌 순간부터, 독서는 별 모를 의무감이 아니라 어떤 갈망같은 추적이 되었다. 현재의 텍스트를 읽으면서도 동시에 다음 문단을 열망하는 방식으로 읽게 하는 몰입감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폐허가 된 헝가리의 집단 농장에서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이 살아간다. 슈미트 부인과 함께 있던 후터키는 종소리를 듣고 깨어 때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슈미트의 인기척을 듣게 된다. 불륜 장면을 들키게 될 우려에도 불구하고 후터키는 재치 있게 슈미트의 약점을 파고 드는데, 그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번 돈을 크라네르와 함께 빼돌리려 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건수를 잡은 후터키가 슈미트와 돈을 나누려는데, 헐리치 부인이 찾아와, 죽었던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마을로 오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전한다. 뜻밖의 소식을 접한 일단의 무리는, 자신들에게 구원자이자 지도자 역할을 했던 이리미아시의 꿈과 영광을 상기하면서 술집으로 몰려가 그를 기다린다.
한편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는 죽은 것이 아니라, 군의 대위 아래에서 정보를 수집해서 보고하는 하수인으로, 대위의 신뢰를 잃고 마지막 기회를 살리기 위해 마을로 향한다. 권력의 말단에서 마을 사람들을 감시하면서도 들키지 않고 그들에게 위대한 영도자로 추앙받았던 과거를 부활시켜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는 데 여념이 없다.
이리미아시에 대한 집착과도 같은 맹신과 희구 속에서, 일단의 무리들과는 짐짓 멀리 떨어져 무너져 가는 마을과 사람들의 일상을 세세히 기억하고 기록하는 의사는, 적어나가는 데 천착하는 인물. 평소에도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는 최소한의 인물과만 접촉할 뿐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조차 없었었던 그는 한 차례 쓰러지지만 기어이 일어나 모두가 떠난 마을로 돌아와 과거를 상기하면서, 부재하는 인물들을 재구성하는 일에 몰두한다. 이리미아시의 감시와 결은 다르지만, 그는 집단 내부에서 동향을 파악하는 데 주력한다. 그러나 그의 지식과 정보는 공동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만, 그는 와해되어 가는 세계와 인물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한다는 일념에만 도착되어 어떤 교훈도, 소망도 제시하지 못한다.
일단의 무리들이 몰려든 술집은 매일 매일 거미줄이 쌓이는 곳으로, 그들은 제각각 이리미아시를 기대어 삶의 도약을 꿈꾼다. 그들의 속내는 욕정, 탐욕, 허튼 기대감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결국 이리미아시를 붙들기만 하면 삶은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는 공통된 믿음으로 점점 취해간다. 그리고 취한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탱고를 춘다.
반면 이리미아시를 동경하는, 소년 서니의 여동생 에슈티케는 가족들에게조차 사실상 방치된 소녀로, 선뜻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오빠를 신뢰하지만, 끝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목숨을 버린다.
마을로 돌아온 이리미아시는 에슈티케의 죽음을 화두로 꺼내면서 그의 죽음에 모두의 책임이 있다는 선동을 통해 수금하고, 이곳을 떠나 주변의 성으로 모일 것을 명령한다. 자신이 도시에 다녀와 새로운 삶을 보장할 소명을 줄 것임을 약속하는데, 의사를 제외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질척대는 길을 따라 성으로 나아간다.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 서니는 성으로 가는 도중 에슈티케의 환영을 보게 되며 잠깐 혼비백산하지만, 부활을 믿지 않는 이리미아시는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마을 사람들이 이리미아시 일당에게 속았다고 힐난하는 순간 영웅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도시로 이동시키면서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배정한다. 그리고 서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지침을 주면서, 감시의 부역자로써 자신의 촉수 역할을 하도록 맡긴다.
소설의 말미에서 집단 농장에 남은 의사는 종이 없는데도 울리는 종소리를 듣게 되는데, 탱고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처음 후터키가 종소리를 들었던 시점으로 되먹이된다.
작가는 거짓 구원자인 이리미아시 일당과 참된 회복 대신 한탕을 노리는 탐욕의 무리, 어떤 진리도 외치지 못하는 맥 빠진 지식인, 한 순간 꺾여버린 순수한 에슈티케, 감시와 보고로 연명하는 지배층, 그리고 다시 이들의 각전투구가 어떻게 자기 파괴의 기만 속으로 침강해 가는지 오싹할 정도로 정밀하게 드러낸다.
치우친 제도와 관습, 일련의 악당이 난무하는 구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악의 심원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제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우리에게 참 희망이 사라지고, 부활과 회복이 흐트러지는 까닭, 과연 그들 때문이고 정치, 사회의 폐단 때문인가. 매번 제자리로 돌아오는, 훼파된 세계를 향한 작가의 예리한 시선은 회피할 수 없을만큼 날 서 있다.
우리 아버지...음, 거기 하늘에 계신, 에...주님을 찬양하라, 우리 주님, 아니..거룩하시고..거룩하시고..거룩하신..주님 이름, 그리고 이루어지게 하소서..모든 게 당신 뜻대로 이루어지도록..하늘에서도..땅에서도, 당신 손 닿는 모든 곳에서...땅 위에서..그리고 하늘에서..아, 꺼져라, 지옥으로. 아멘..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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