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히드라 이야기
페르낭 브로델 지음, 김홍식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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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역사 분야에 노벨상이 있다면 페르낭 브로델이 수상자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독서를 하지 않을 이유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연구에 대한 학술적 근거와 개요를 설명하면서도 역자의 깊이 있는 해제까지 더해져 가독성까지 확보한 책이라니, 독자에게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있을까. 


브로델이 주는 가장 큰 감명은, 인간의 일상 생활을 소외시키지 않고, 샅샅히 살펴보면서 그 흔적을 역사의 가장 중요한 근간으로 상정했다는 점이다. 흔히 자본주의는 물질의 축적과 더불어 인식의 변화 등을 통해 시장 경제가 발달해 나타난 일차원적 개념으로 인식하기 쉬운데, 도시와 화폐의 출현은 물론 자급자족을 넘어서서 생산과 소비를 잇는 시장경제를 통해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배지가 이미 마련되고 있었다는 점을 규명하면서 자본주의 태동의 입체성을 확보한다. 즉, 인간 삶의 축적이 구조화되면서 인간의 행위를 구속하기도 하면서, 전혀 새로운 현상을 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다. 


브로델은 관념적이고 사변적으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특정 관점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관찰하고, 추적하며, 그려보는 과정을 집요하게 수행하면서, 일상이 시간의 축적을 통해서 물질생활이라는 장기 구조를 형성하고, 그 위에서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 경제라는 경제 생활이 중기 구조로 층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 구조의 토대 위에 자본주의라는 현상이 최상위층에 나타났다고 본다. 


그는 다수의 행위자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고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는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마르크스가 생각한 대로 하부구조에서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상부구조에 존재하는 자본주의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를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일련의 특징적인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밝혀낸다. 자본주의는 경쟁과 분업을 하지 않으며 일종의 특권층처럼 독점하면서 오히려 반시장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이익이 난다면 국가와 경계를 넘어서서 활동하며 잇속을 위해 게임을 왜곡할 수 있는 수천 가지의 방법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구가한다. 또한 지식, 정보, 문화면에서 누리는 다양한 우위를 바탕으로 무엇이든지 장악하며, 높은 이익이 발생하는 분야라면 닥치는 대로 뛰어들어 독점할 뿐 전문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자본주의는 상부구조의 현상이고 소수의 현상이며 높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으로, 단순히 경제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회 질서를 이용해 생존하고, 국가와 대등한 지위에서 맞서기도 하며 공모하기도 하면서 사회 구조를 지탱하는 문화로서의 역할도 감당한다. 동시에 여러 지배 계급과의 결탁을 도모하기에, 단순히 경제적 문제로만 국한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본주의는 다양한 영역으로 침투하기에 명확히 경계를 지을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3층 구조의 맨 꼭대기에서 독점을 통해 높은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으로 사회질서, 위계, 국가, 문화 온갖 영역에 침투하여 사회적 구조를 생성하고, 그와 결합해 존재하는 실체로,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는 변신의 귀재라는 것. 


카멜레온과 히드라처럼 변화무쌍한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는, 기존의 시장 경제, 마르크스주의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경제의 경계에 자본주의를 가두어 재단하는 대신 이익을 위해서 사회 전체에 걸쳐 작동하는 거대한 현상이며, 상층부에서만 이루어지기에 투명하지 않다는 그의 일침은, 왜 우리가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자본주의에 민감해야 하며, 그 독점과 불투명성에 대한 균열에의 의지를 가져야 하는지 상기시킨다.  

이익이 콸콸 쏟아지는 고전압이 흐르는 곳, 예나 지금이나 바로 그러한 곳에서만 자본주의가 존재한다. 예나 지금이나, 산업혁명 이전이나 이후나 반시장이야말로 자본주의란 실체가 존재하는 곳이다. 자본주의적 과정은 원거리 무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본주의란 것은 본질적으로 가장 높은 곳의 경제 활동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는 물질생활과 촘촘한 시장경제를 겹으로 깔고 앉아, 높은 수익이 나는 영역을 대변한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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