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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사실, 100페이지 정도까지는 덮을까 말까 고민하며 책을 읽었다. 발음하기 어려운 일본 이름은 낯설었고, 단어 단어 끊기는 대화체는(이것도 일본식인가..?) 어색했고, 떼를 지어 걷는다는 설정은 일본의 전체주의적 속성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 "보행제" 자체가 특별한 사건 없는 단조로운 사건인지라 이야기 구조도 헐렁하고 느슨해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보행제에 참가한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지쳐갈 무렵이 되자, 책 읽는 재미가 솔솔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10대 후반 청소년들의 감성에 나 역시 젖어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차이에서 오는 정서적 이질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느끼고,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미묘한 떨림을 경험하며, 어른이 만들어놓은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은 아름다웠다.
게다가 그 시절에 겪는 마음의 불안과 혼돈을 "잡음"으로 표현한 부분이나, 사랑을 "냄새나고 비참하고 부끄럽고 흉하지만 필요한 것"으로 묘사한 부분, 세상에 대한 불안과 성취욕구를 동시에 느끼는 청년 시절을 "오들오들 떨면서도 번들번들거리고 있다."고 묘사한 부분은 무릎을 탁! 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싶을 만큼 공감이 갔다.
물론 이 책이 특별하게 잘 씌여진 성장 소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일본 소설이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비판이 심심찮게 들리는데(사실 내 생각도 그렇다.) 이 책도 그런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나가는 것"의 다른 이름일 터, 걸으면 걸을수록 어른스러워지는 아이들의 모습은 세월을 거듭할수록 성숙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작가 자신의 독백이고 다짐이라 여겨져 후한 별점을 줄 수밖에 없었다.
잡음으로 가득했던 나의 10대... 고통스러워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결코 잊고 싶지는 않은 10대의 나에게 무한한 애정이 담긴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