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세네카의 기지촌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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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미지가 없어 yes24에서 퍼왔습니다.)

책 속지를 보니 99년 12월에 구입한 책이다. <비명을 찾아서>를 너무 재밌게 읽은 뒤 복거일이란 작가에 혹해 구입했다가 실망하고 10년 가까이 구석에 쳐박아 두었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음이 동해 다시 꺼내들었다. 다시 읽어보니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재미있게 느껴졌다.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책이다. 책의 맨 뒷 장에서 작가는 "기지촌에서 힘든 삶을 마감하신 부모님 영전에 바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중학교 1학년이던 주인공 재근이와 그 가족들이 30년 동안 미군부대 캠프 세네카 주변의 기지촌에서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전형적인 친미적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캠프 세네카의 사령관은 주민을 위해 학교와 고아원을 지어주고, 정부 관리들을 압박해 마을에 전기를 끌어다 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마을을 돕는 선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마을 주민들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학교 뜰에 공적비를 세운다.

미군들의 성 노리개가 되는 여성들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이른바 양색시들과 관계를 맺는 미군들을 "신랑"이라고 부르고, 그들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살림집"으로 일컫는다. 미군의 행패로  여자가 사망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시체를 둘러매고 부대로 찾아가 항의하는 주민들을 근엄하게 타일러 해산시키고,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만 주민들은 아예 문제를 제기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조용하게 일을 마무리한다.

캠프 세네카가 쇠퇴하면서 미군이 있던 자리를 국군이 차지하고, 주민들을 통제하는 팻말을 붙이자 "주인"인 미군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객"인 국군이 나서서 무슨 짓을 하느냐는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80년대 들어 캠프 세네카가 더욱 쇠퇴하고 미군들마저 초라해 보이자 "가장 멋진 나라", "좋은 나라"였던 미국이 예전의 미국같지 않다며 당혹해 하기까지 한다.

복거일이 처음 영어 공용화를 주장한 게 1998년이라 한다. 사실 나는 그가 주장했던 영어 공용화론에 대해 자세하게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가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기지촌 주변에서 살았던 경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의 내용이 온전히 작가의 경험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작가가 하고있는 이야기는 작가가 머리와 마음 속에서 생각하고 그려왔던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미국에 대해 이러한 이미지와 생각을 갖고있는 한 한미간의 관계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기 어려웠을 것이고 영어를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 "주인"을 닮아가는 첩경인 것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겠지. (이런 시각이 지나치게 편협한 것이라고 비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복거일이 최근 대학생들과 이명박 정부의 영어 몰입교육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보았다. (대학생 웹진 i-bait.com) 그는 아직도 자신의 영어 공용화론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영어 몰입교육에 대해 방향을 잘 잡았다고 하면서도 학교에서 억지로 몰입교육을 시키는 것보다 엄마 품에서부터 두 개의 "모국어"로 말하는 영어 공용화론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작가가 글만 쓰며 사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지만, 작가가 사회를 향해 사람들을 향해 쓴소리를 지르는 게 오히려 고마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그가 글 잘 쓰는 소설가로만 남았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소설로만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꽤 재미있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소설의 작가가 복거일이라는 것... 아무리 그냥 소설로만 읽으려고 해도 그가 주장하는 이야기들과 맞물려 그럴 수 없다는 게 이 소설의 가장 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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