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간에게 허락된 인간다움 - 다섯 가지 감정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 경북대학교 인문교양총서 43
신은화 지음 / 역락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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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재밌고 내용까지 충실한 철학 책을 만나기 참 어려운데 이 책이 이 어려운 걸 거뜬하게 해 냈다.

 

저자는 철학은 이성에 바탕을 둔 학문이라 감정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다. 물론 동물도 인간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정교한 감정을 갖는 것은 사실이라 전제하면서 그 정교한 감정들 중 다섯 가지(혐오, 수치심, 분노, 두려움, 연민)를 보다 자세하게 다룬다.

 

각 감정의 의미 해석의 비중을 줄이고 역사, 사회 현실, 문화 예술과 접목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형식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특히 허기와 공포, 깔창 생리대와 수치심처럼 현실 문제와 철학적 주제를 연결시키는 저자의 혜안은 참으로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용서에 대한 저자의 의견에도 많은 생각을 했다. 용서의 전제는 사과와 반성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저자는'용서는 사죄에 달려있지 않'고, '선은 악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선 그 차제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악은 선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일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런 생각이 용서의 본질 아닐까?

 

140페이지의 부담없는 분량에, 이렇게 쉽고 재밌고 내용까지 훌륭한 철학책이라니...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 아무리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 탁원한 능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다른 동물의 고통에 무감하고 그들을 거리낌 없이 학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곧 야만성의 표징이 될 것이다. <중략> 우리의 인간다움을 보증해주는 것은 종적 탁월성이나 차별성의 일방적인 강조보다는 우리와 동물들과의 공통점에 주목하고 그들과의 상생을 추구하는 노력에 있다. - P8

수치심에 대한 성찰은 우리 자신과 타인의 고유성과 평등함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나의 존엄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중략> 나와 타자 사이의 다름을 그 자체로 포용하고 차별의 근거로 활용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중략> 그래서 수치심은 진짜 자기를 찾고 진정한 자존감을 갖도록 하는 길을 열어준다. - P60

용서는 사죄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선의 본질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생각하도록 이끈다. 선은 악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선 그 자체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악은 선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고 말이다. - P80

언제든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 감정들은 분명 삶의 불확실성에 관한 것이고, 바꿔 말해서 삶의 확실성을 향한 욕구를 반영한다. 이처럼 죽음의 공포는 죽음 그 자체보다는 삶을 지키고픈 욕구에 더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것 중의 하나는 생존 본능일 것이고, 이것에 의해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을 갖는다. 다시 말해서 두려움, 공포, 불안 등의 감정은 죽음에 대한 거부감과 연결되어 있지만, 결국 그것의 이면은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다. - P100

삶의 의지를 상실한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갖지 않는다. - P102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도덕적 미덕은 기술처럼 반복적인 수행됨으로써 갖춰지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혹은 윤리적, ehtike)‘이란 말이 ‘습관(ethos)‘이란 말에서 파생되었음을 상기시킨다. 도덕적 미덕은 타고난 본성과는 다르다. 아래로 흐르는 물의 본성을 반복적인 노력으로 바꿀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우리의 태생적 본성도 습관을 통해 고칠 수는 없다. 그러나 도덕적 미덕은 우리가 그것을 마치 본성처럼 받아들여 습관을 통해 체화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P104

스피노자는 희망은 두려움 생길 수 없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희망은 어떤 결과는 바라지만 그것이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감정이다. 따라서 희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바와 다르게 도출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두려움과 불안감을 갖는다. <중략> 희망은 그 어떤 바람이 좌절된 것을 걱정하는 감정이다. 마찬가지로 두려움은 좌절을 걱정하는 마음, 즉 좌절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점에 희망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결론적으로 스피노자는 희망과 두려움이 상호적인 관계를 이룬다고 본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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