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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내 앞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산 자들](민음사) - 장강명
ㅁ 장강명 작가님이 새 책을 내셨다.한 6월 쯤에 출판하신 걸로 아는데, 7월 끝자락이 되서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장강명 작가님은 무척 중요한 계기를 주신 분이다. 이런 글을 쓰고 책을 다시 잡게 해준 계기가 되었던 분이랄까. 장강명 작가님의 책 덕분에 책을 다시 잡을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글을 쓰는 삶을 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뽑으라면 어김없이 장강명 작가님을 뽑을 정도로 좋아한다. 좋아하는 데는 별 이유가 없지만, 첫사랑이 모두 기억나듯이, 소설과 글의 생활에 시작을 열어준 책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장강명 작가님의 책은 보통 직접 사서 읽는 편이다. 간직할 만한 이유가 명확하다. 지금 시대를 표현하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르포 형식의 책 [당선, 합격, 계급] 이후 읽는 책인데, 제목부터 어떤 시사하는 지점이 느껴질 정도였다. [산 자들]이라니… 어떤 ‘불편함’이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이런 글을 정말 잘 쓰신다고 생각한다.
ㅁ 산 자들은 한 마디로 연작소설이다. 10편의 ‘불편함’이 담겨져 있는데, 그 소재도 무척 다양하다. 자영업부터 취준생, 위축들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 고발자와 재건축 등. 뉴스 사회면에 등장하는 그런 이야기부터, 알려지지 않아서 더 슬픈 이야기까지.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진짜 한국에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불편한 진실들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래서 더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제목에서 처럼 바로 내 앞과 옆, 아니면 주위에 누군가에게 분명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 슬퍼졌다. 반면 단순히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약간 붕 떠버린 기분도 들었다. ‘에이 진짜 이러겠어?’라고 생각한다면 [산 자들]은 그저 허황된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곳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도 아예 일어나지 않는 일도 아니기에 한 편, 한 편 읽으면서 우울한 현실에 나 역시 파묻혀버릴 것 같았다.
작가님도 그런 이야기를 쓰시려고 했다. 하지만 조금 더 말하고 싶은 게 있으셨던 것 같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매일 이야기하는 한낮의 노동과 경제 문제들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장면들을 단순히 전시하기보다는 왜, 어떻게, 그런 현장이 빚어졌는지를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p. 379 작가의 말 中
바로 저 지점. 나는 단순히 전시하는 게 아니라 ‘왜’, 또는 ‘어떻게’ 라는 질문을 던지는 지점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그저 뉴스나 사실보다 더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는 잘했고 잘못했고 명확하지 않는 게 현실이니까. 그런 역할로 소설은 적당한 것 같다. 현실과 다르게 조금 더 전지적인 시점으로서 우리는 그 상황을 관찰할 수 있으니까.
ㅁ 그런 점에서 [현수동 빵집 삼국지]와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는 엄청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양쪽의 상황을 적절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현수동 빵집 삼국지]는 정말 뚜렷한 입장들을 보여주었다. 애초에 소설을 쓴 방식도 시점이 자꾸 바뀌게 만들어져 있어서 어느 한곳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각자 살아남기 위해서 나름의 선택을 한 것이었을테니까.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는 양쪽이라기 보다 어떤 입장이든지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서 어느 편이라고 욕할 순 없었다. 물론 그 사단을 만든 자들이 완전 나쁜 사람이겠지만, 이에 대응하는 사람들과 단지 그걸 말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진짜 현실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새들은 정말 나는 게 재미있을까]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에선 아래 문장이 엄청 기억에 남는다.
놓칠 수도 있었던 잠재력을 깨닫고 목적에 맞게 쓴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 아닐까?행정실장이 된 옛 교무 교감이나, 유체 이탈 화법을 쓴 학생 교감을 보며 내가 왜 이마를 찌푸렸는지, 이제는 설명할 수 있다.그것은 사람의 잠재력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대부분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그른 것을 옳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능력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p. 378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지만 모두 쓰지 않는다.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모든 게 그렇지 않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기준이 사람마다 다 달라서 마지막 문장이 과연 옳은 지는 모르겠다. 물론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에선 확실하게 보이지만, 그것도 나의 관점에서 그렇지 않은가. 과연 저 교무 교감이나 학생 교감이 자기들의 일을 그릇된 일이라고 생각할까? 아마 그들은 스스로에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진작에 정신차렸어야 했다. 그렇지 않은 거라면 즉, 자신들이 하는 짓이 그릇된 걸 알면서도 그런거라면, 어떤 사정인지 알고나서 우리는 그들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하다. 같은 작품에 나오는 호웅이라는 인물처럼 각자의 사정이 있다면 또 모를 일이다.(그렇다고 해서 저 교무교감이나 학생교감의 편을 들 순 없다. 어떤 사정이든 전적으로 남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ㅁ 두 작품과는 다르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작품들도 있다. [사람 사는 집]과 [카메라 테스트], 그리고 [모두, 친절하다]을 보고 있노라면 (물론 극단적이겠지만) 씁쓸한 현실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기분이 우울해졌다. 하나는 재건축 대상이 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즉 철거민)의 이야기. 다른 하나는 취준생들의 이야기다. 이 부분은 사회적으로도 많은 이슈가 되기도 했어서, 엄청 색다르다는 느낌을 받진 못했다. 단순히 사실을 나열한 기사들보다 더 안쪽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이와는 다르게 [모두, 친절하다]는 조금 다르게 신선했다. 처음에는 제목이 뭔소리인가 했는데, 읽다가 ‘아… 이거 정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피식 웃을 만한 요소도 있었고… 자세한 건 스포일테니 남기지 않겠지만, 실제로 이런 현실이라서, 나도 저런 사람들 중 하나라서 더 씁쓸했던 것 같다. 이 사회가 모든 게 편해지고 삶의 질이 윤택해졌다고 하지만, 그만큼 각박하고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는 걸 너무 잘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화자 특유의 상태? ‘그러려니’하는 체념한 듯한 태도가 너무 와닿았다. 나도 그럴 때가 많다보니까. 그게 스스로에게도 좋은 태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이게 과연 정말 나에게 좋은 태도인가 싶었다.
ㅁ 책을 덮고 나서 왜 [산 자들]이란 제목을 정했을지 생각해보았다. 산 자와 죽은 자라는 말이 나오는 단편은 기억하기론 한 개 뿐이었다. 그마저도 제목은 아니었는데, 왜? 뭐… 생각하기엔 여러가지 의미를 반영한 것 같다. 말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의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살지만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일 수 있다. 단편소설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결국 산 자들인데, 그들의 삶을 보고 있으면 살아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명이 있다는 말과 다른 것이다. 사전에서 ‘살다’를 검색해보면, 당연히 여러 뜻이 있지만, 어떤 삶을 영위하다 라는 뜻도 있다. 이처럼 그들은 어떤 삶을 영위하는 자들로 생각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주변의 이야기인 셈이다.
참 어려운 사회다. 그래서 씁쓸하다. 이 한국사회의 디스토피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우울하고 그런 사회가 지금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몸소 느낄 줄 안다면, 그것으로 [산 자들]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사회의 모든 면이 [산 자들]처럼 굴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또는 어떤 기막힌 우연이 그 삶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우연은 불운이 되어 누군가를 ‘산 자’들로 만들 수 있음을, 우리는 소설을 통해 간접적이나마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