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거창하나 내용은 비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대략 이러하다.

어제는 토요일, 소피마르소의 '거대한 열정'이라는 케이블 영화를 찔끔거리다가 욕조에 몸을 담궈 몸 안팍의 삼투압을 재조정 한 후, 여전히 땀이 삐질 거리는 몸을 침대에 뉘인 후, 거의 직행으로 꿈의 나성형 계단 쯤에서 오르락 내리락 수직운동을 흡족하게 끝내고, 현실로 낙하한 시간은 대략 10시.

깨서 한 일은

인스턴트 커피를 한 잔 만들어 마시면서 두어 조각의 케익을 곁드린 후

다소 울렁거리는 복부를 쥐고 화장실을 두어 번 들락거릴 때까지.

옆 방에서 자고 있는 신혼 부부를 감상한 것.

'아침형 인간 강요하지 말라'는  공저의 한 명으로 참여한 나의 새 올케

참으로 제목만큼이나 실천이 정확하여

나보다도 침구에서 오래 버틸 줄 알았다.

경향신문에 소개된대로 아침형 인간에 대항 개념을 세운 한 일본인이 주창한 것이 바로

'대충형 인간'인데

나는 정기적으로 8시 30까지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다.

그 시간을 9시 혹은 9시 30으로 늦추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럼에도 일찍 일어나는 새처럼 벌레를 잡기 위해

혹은 일찍 일어나는 벌레처럼 새에 잡혀 먹히기 위해

부르조아든 프로레타리아든 학생이든 선생이든 부지런을 떨기 마련이다.

그러니 10시에 일어난 아침은 너무나 행복하달 수밖에

일어나서 비생산적인 바보상자 앞에서 키득거릴지라도

눈안에 잔뜩 들어있던 모래의 지글거림도 없고

머리속에 수면 공습을 알리는 싸이렌 소리도 없는

그런 아침엔

무언들 유쾌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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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bee 2005-06-19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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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식 메피스토(Mephisto) 2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에둘러 가는 법이 없다. 상황은 종료되고, 또 다른 상황이 모욕처럼, 불시에 끼얹는 찬물처럼 독자를 기다린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상황, 그래서 독자들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인물들, 대게는 '내'가 행위하거나 생각한다. 시간 공간적 배경에 대한 친절하고 긴 설명은 생략,  언제나 '상황은 이미 진행 중'이다.

결국, 숨을 죽이고 읽노라면 뭐에 대한 묘사였는지 어떤 윤곽을 지닌 사건이 지나쳤는지 알게 된다. 그렇게 대략 펠라닉의 교과서는 짧은 퍼즐의 연속이다. 그러나 겁먹을 것은 없다. 유쾌하고 그로테스크한 유머의 행진과 포스트모더니즘적 광대의 패배는 기껍다.

질식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나도 돌맹이 수집광인 나의 친구도 환상적인 여의사도 아니며, 바로 나의 엄마 (맨시니)이다.  그 엄마가 주인공에게 들려주는 말은

'우리는 세상을 부숴버렸어. 하지만 그 산산조각 난 파편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어'

라고 말한다. 참고로 이 엄마는 사기꾼에 온갖 엽기적인 비행을 일삼았던 과거를 가진 정신병동 수용자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분열자가 아니며, 해체주의자다. 혼란과 분열로 가득한 그의 삶은 참으로 연구대상이다.

그런  그가 담당의 앞에서 조소로 일관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그것의 사회 정치적 함의를 깡그리 부정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소설속의 나는  ' 예술의 아름다움은 예술품 자체보다는 액자에 좌우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펠라닉의 일련의 명작(?) 들은 무엇탓으로 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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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섹스 2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섹스와 젠더의 대립적 구분을 서구사회의 이분법적 담론 역사의 연장이라 보며,  그 사이의 구분을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하는 주디스 버틀러는 '그렇다면 젠더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젠더는 끝임없이 일시적이며 잠정적인 '무엇'이라고 단정한다. 

기존 우리의 섹슈얼리티론에 의하면, 섹스는 생물학적인 성이며 젠더는 사회적인 성이다. 따라서 섹스와 젠드의 관계는 임의적일뿐 전혀 필연적이지 않다.  젠더론은  인간의 성정체성이 반드시 성염색체에 따른다는 생물학적 성역할론 지지자들 보다 논리적으로 우위를 점한지 오래다 .  특히 여성성에 대해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란 보부아르의 명제가 이를 대표해 왔다. 그렇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여성 사이의 차이는 없는가? 버틀러의 질문은 이로부터 출발한다.  버틀러는 섹스와 젠더의 구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젠더 자체의 확정성을 무시한다.

어쩌면 섹스가 한 주체의 섹슈얼리티를 반절이상 지배하더라도 젠더는 다양하게 변조를 띨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남성적 섹스와 남성적 젠더를 지녔음에도 여성의 차림과 화장법에 매료된다. 이처럼 버틀러는 젠더 자체가 끊임없는  위장이라고 못 박는다. 그러므로 저 크로스드레스라 명명되고 있는 퀴어족은 여성을 흉내내고 있으나 여성은 아니다. 여성이란 끊임없는 흉내내기일 뿐, 어디에도 '여성' 그 자체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여성'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여성을 흉내낼 뿐이다.

이 경이로운 소설은 버틀러를 인용하지 않으나, 마치 그 이론을 구체화하기 위해 쓰여진 것만 같다.  칼 혹은 칼리오페는 칼리오페일 때 여성을 흉내내었으나 진정으로 여성인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진정으로 '여성'이란 정체성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끊임없이 고뇌한다. 칼일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의문없는 상태에 이르러서도 끝내 남성을 흉내낼 뿐, 자신이 다른 남자와는 다를 것이라는 추측만으로도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런 남자'란 집단 구성원들 역시 '그런 남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중이란 걸 모를 뿐이다.

이 책은 본국에서 출판된 직후에 국내 번역 출간되어 내용 자체가 소위 뜨끈뜨끈하다. 소재는 '나의 그리스식 웨딩'과 '성적 소수자 이슈'를 짬뽕시켰다.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데 칼리오페는 성적으로 복잡할 뿐 아니라 미국내에서도 소수적 인종에 속하는 그리스 계다. 여기 올려진 후기에는 '성정체성'에 대해서만 많이들 다루고 있는데 사실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리스 조부, 부친에 대한 추억과 오마쥬, 그리고 그들의 대를 이어 현대를 살아가는 '나'다. 

'홀로코스트 산업' 이나 부시 대통령 부자들에 대한 언급, 마리화나, 앤드로지니들에 대한 의학적 보고 등은 이 소설이 얼마나 현대적인 가를 반증하기도 한다.

한편, 문체적으론 하나의 명주실을 보는 듯 하다. 누에가 자아내는 실처럼, 작가의 이야기는 진짜 이야기처럼 끊임없이 뽑아져 나온다. 단지 한마리의 누에만 있으면 된다. 역사는 누에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세련된 기술은 근래에 보기 드문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2004년 최고의 소설이다. 그 문체가 경이로운 이유는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이어져 나가는 것 뿐 아니라, 제목만큼이나 적장한 중간 목소리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성별을 크로스하여 여성 혹은 남성 주인공을 내세워 말을 걸어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화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물흐르듯이 진행되는 경우는 매우 적다. 그런 바에야 정확히 중간의 목소리를 찾는 다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다. 물론 물리적이고 수학적으로 중간이란 말이 아니다. 다만 심리적이고 문학적으로 정확히 중간이란 말이며, 이것의 느낌은 지극히 주관적이나 적어도 작가와 나에게는 서로 통하는 어떤 '느낌'이다. 

이 중간의 목소리는 다만 둘 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무엇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둘 중 어떤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둘 다인 여하한 퍼스낼리티와 섹슈얼리티를 직조한다.  동시에, 그 목소리는 사회적으로 주류도 아니고 비주류도 아니면서 둘을 아우르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예컨데 그것은 흑인의 목소리도 백인의 목소리도 아니며 , 과격하지도 온건하지도 않다. 언젠가 누구든 한번쯤은 들었던 목소린데 찬찬히 들여다 보면 신선한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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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제목으로 코폴라 감독의 딸로 더 유명한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를 비틀어서  달아본다.

 이는 우선 켐브리지 철학과 출신답게 '사랑'을 감히 해석하려 한 작가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함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랑'이 무어냐? 너는 왜 그를 사랑하는가? 왜 꼭 그 사람이어야 하는가? 니가 느끼는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삶 속에서 체감되는가? 같은 일련의 질문에 대답을 못한다.

 왜 사랑하냐고? 그냥 좋으니까, 말로 설명할 수 없어. 그건 너도 느껴봐야 알어. 등의 질문과 답변이 순환되어 되돌려질 뿐이다. 그러니 사랑을 진작에 느껴본 적 없는 이들은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사랑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 그것은 일단 표현되면 거짓인 것 ' 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해답은 단 하나 ' 말할 수 없는 것에는 다만 침묵할 뿐이다'란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를 실천하는 것뿐.

이런 사정이니, 24살, 약관의 나이에 이렇게 어려운 '사랑'이란 철학적, 심리적 난제를 풀어해쳤다는 영국의 이 작가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없다. 앞 날개에 사진도 없기에 나는 그의 사진을 찾아 나섰다. 영어 웹사이트를 뒤진 끝에 건져올린 정보는 실망스런 동시에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어 웹에서도 그의 개인적 신상이나 사진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심지어는 아마존 닷 컴에도 사진이 없었다. 단지 구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이름으로 된 작가 비평 싸이트였다.

그런데 작가에 대한 비평도 호오가 극명하게 나눠져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그의 문장력이 훌륭하며 애매한 것들을 구체화하는 능력을 높이 샀고 자신의 느낌과의 '공감'을 치켜 올렸다.

반면, 그의 글을 비판하는 자들은 UK 영어와 USA영어의 비교에서부터 출발해 왜 그가 UK 작가의 대표격으로 미국내에서 많은 독자에게 대중적으로 읽히는지에 회의를 표명한다.  또한, 그의 다른 철학적 에세이들이 독자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다고 일축한다.

이런 지적들은 그의 이 소설을 읽은 한국독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단 그의 전공에 가까운 전격 철학 에세이들은 이 소설만큼 어찌보면 신선도가 떨어지며, 읽을 가치가 크게 줄어들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작품이 일정한 경지에 오른 작품 목록을 지닌 작가들도 없지 않으나 이 불어식 이름을 가진 작가 - 미국 독자들은 그의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점, 프랑스인인지 영국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단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는 예외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하긴 다른 저작들은 이미 품절된 상태이니 염려할 것도 없겠으나

어떤 작가는 노년에 최고의 작품을 내놓기도 하지만, 어떤 작가는 가장 젊고 싱싱하고 거침이 없을 떄 가장 훌륭한 글을 쓴다. 알랭 드 보통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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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물고기 2004-06-22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의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을 오래 전에 읽었더랬습니다. 제가 아는 최근 작가 중 현학을 가장 수더분하고 깜찍하게 그려내는 이가 알랭 드 보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 나는... 또한 저의 이런 믿음에 예쁘게 조응해주어 고마웠고요. 왜 나는, 보다는 섹스 쇼핑이 더 매력적이기는 합니다. 잘 봤습니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버림받은 자가 되어라/당신 인생의/모순을/숄처럼/당신 몸에 두르고,/돌을 막기 위해/당신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이 광기에/환호하며/굴복하는 것을 보라/그들이 곁눈질로 당신을 보게 하라/그리고 당신은 곁눈질로 대답한다. 버림받은 자가 되라/혼자 걷는 것을 즐거워하라/(품위 없는)/그렇지 않으면 혼잡한 강바닥을/다른 성급한/바보들로 가득 채워라…”(<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by Alice 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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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ce 2004-05-3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들렀습니다. 앨리스 워커. 책 기다리고 있는데 멋지네요.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 대한 페이퍼도 잘 봤습니다.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