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지침서 (반양장)
쑤퉁 지음, 김택규 옮김 / 아고라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중국 본토 작가의 소설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별로 없다. 중국태생으로 미국이나 유럽에 거주하는 작가들의 글은 종종 읽어볼 기회가 있었지만, 본토의 작가는 좀처럼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작해야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인 위화 정도이려나. 그러니  [이혼 지침서]의 작가 쑤퉁은 내게 두번째 중국 작가인 셈이다. 사실 이 책은 중편 소설 [처첩성군]을 찾던 와중에 찾았는데, 이 소설은 영화 [홍등]의 원작이다. 붉은 색이 인상적인 영화 [홍등]은 어릴 적 봤는데 이번에 '신성원의 문화읽기' 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소설이 나와서 원작 소설이 있다는걸 알았다. 프로그램에서 소설을 쭉 읽으면서 패널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거 괜찮겠다, 꼭 읽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해서 찾아 읽었다. 

[이혼 지침서]는 소설  세가지가 모인 중편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 구성이 근대로 넘어오는 중국과 현대로 넘어오는 시기, 각 과도기의 중국을 그리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첩과 부인이 성을 이룰 정도라는 제목이 소설을 압축하는 '처첩성군' 그리고 전쟁 중 - 정확한 전쟁의 배경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 1900년대 이후의 전쟁일 것이다 - 에 만난 소녀와 소년의 이야기 그리고 전쟁을 이야기하는 '등불 세 개', 마지막으로 가장 현대의 중국을 그리는 - 이혼이 가능하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 '이혼 지침서', 

'처첩성군'은 일부다처가 용인되던 중국사회의 마지막 지점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 속 배경을 보면 시대는 이미 여자도 대학에 다니는 시대가 왔는데 아직도 처첩제도는 그대로 살아있는 시대. 한국에서 손가락을 꼽아본다면 도대체 언제쯤일지 잘 가늠도 되지 않는 - 아마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즈음이 아닐까 - 그런 시대의 이야기. 집안의 모든 여자들이 단 한 사람의 남편만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에게서 집안의 모든 권력이 나오는 뒤틀린 구조에서 열 아홉살의 대학생이었던 한 여인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를 소설에서 보여준다. 무시할 수 없는 점은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이들 가정과 제도의 모습이다. 시대는 이미 여자도 대학에 가고 있는데, 주인공은 대학교를 1년 동안 다니다 첩이 된다 , 첩이라는 구시대의 제도가 공존하고 있는 현실과 함께, 가부장이 모든 가족의 생사여탈까지 주관하는 지극히 전통적인 유교국가의 가족을 보는 듯한 이 가족의 모습이 과거의 중국이다. 

'등불 세 개'는 전쟁이 나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떠나 비어 버린 마을에 홀로 남게 된 오리치기 소년과, 전쟁에 나간 아버지가 자신들을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등불 세개를 밝히는 소녀의 이야기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결국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소녀의 아버지가 소녀가 등불을 켜놓은 배로 돌아온다는 서사적인 요약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아릿함이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어머니를 지키며, 돌아온다는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전쟁터가 되어 버린 마을에서 등불을 켜는 소녀의 마음과 그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의 마음이 소설을 가득 채운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가장 현대의 모습인 '이혼 지침서'는 현대로 넘어오는 중국인의 보습이랄까. 평범했던 가장이 어느 날 자신의 일상에 질려버려 말한다. 이혼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아서 그의 이혼을 환영하는 이도 없고 - 아 단 한사람은 있다 - 도와주는 이도 없다. 오히려 위자료를 구하려 도움을 청하는 주인공에게 어린 시절의 친구는 모욕을 주고, 직장 상사는 그를 타박하고,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이 주인공을 무시하고 그로 인해 주인공은 무력한 자신의 모습에 좌절한다는 이야기인데, 주인공을 둘러싼 풍광이 현대로 넘어오기 시작하는 중국의 모습이랄까. 그런 풍광을 한껏 전달한다. 

쑤퉁의 중편 소설 모음집 ' 이혼 지침서'에는 근세에서 근대 현대로 이어지는 중국의 세가지 모습이 들어있어서 읽은 재미가 난다.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건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등불 세 개'이다. 전쟁통 속에 아버지를 기다리는 소녀와 그 소녀가 켜놓은 등불 세개, 정말 그 불빛을 보고 찾아오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소녀를 잊지 못하는 소년까지 모든것이 아귀가 맞아 들어가고, 소설이 한편의 그림이 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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