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06
앤토니어 수전 바이어트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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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전공 수업 중에 시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2학년 때는 영국시 수업, 3학년 때는 미국시 수업을 들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영국시 수업은 처참했으나 미국시 수업은 꽤 나쁘지 않았다. 사실 2학년때는 뭣도 모르고 시 수업을 들어갔는데 - 무려 한글로 된 시도 잘 읽지 않는 내가 말이다 - 미국시 수업을 듣고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니 조금 어렴풋하게 알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제대로 시를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내가 처음 접한 영국시는 나를 기겁하게 만들었지만, 다시 읽은 시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 이래서 시를 읽고 쓰고 연구하는거구나. 1세기도 전에 사람들이 고민하던 이야기와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구나, 아직도 이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구나, 아니 어쩌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겠구나. 그리고보니 그 시수업을 전공하셨던 교수님은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와 시에 대한 열정,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애정이 분명히 묻어나는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그 교수상에 가장 부합하는 분이었다.  [소유]를 읽으면서 아주 오랜만에 잘 기억나지도 않는 그 시절 내가 그리고 그 선생님이 기억났다. 


[소유]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 가상의 시인 랜돌프 헨리 애쉬와 그 시인의 숨겨진 사랑이었던 크리스타벨 라모트의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부인에 대한 사랑으로 유명한 애쉬의 책에서 한 여인에게 보내는 절절한 편지 초안을 발견한 주인공 롤런드 미첼이 R.H.애쉬와 애쉬의 사랑이었던 C.라모트의 사랑을 추적하는데, 그 과정에서 C.라모트의 전문가인 모드 베일리의 도움을 받게 된다. 미첼과 모드 베일리 모두 각자 R.H.애쉬, C.라모트의 전문가인 그들은 함께 그들의 편지를 찾아나서고, 그 둘이 함께 했던 여행길을 따라 걷고, R.H.애쉬 주변인들의 일기와 남겨진 편지를 더듬어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조각을 맞춰나간다.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타올랐는지, 어떻게 끝이났는지. 그들은 마냥 자신들의 발견에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당연히 롤런드와 모드 주변에는 그들이 발견한 내용을 탐내는(?) 학자도 있으며 그 학자를 피해 자신들이 알아낸 내용을 끝까지 추적하고 이야기를 맞춰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흥미로움 그 자체이다.


이 책의 백미는 구성이다. R.H.애쉬와 C.라모트의 사랑을 추적하는 롤런드 미첼과 모드 베일리의 이야기가 서로 엇갈려서 등장하기 때문인데, 심지어 두 사람간에 보여주는 미묘한 감정에서도 그 엇갈림과 충첩은 계속된다. 미첼과 베일리가 시작한 순수한 학문적인 호기심으로 시작한 추적이 주변인들에게 오해를 사고 - 그들은 가장 편하게 분류하자면 남자와 여자가 아닌가 - 그 오해를 부정하다가 결국 서로에게 끌리고 있음을 인정한다. 재미난 점은 미첼과 베일리가 서로에게 보이는 호의와 애정이 정말로 사람들이 흔하게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부분이다. 내게는 미첼과 베일리의 관계를 사랑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사건을 추적하는 동료애에 가깝게 보이기 때문이다. 기존 연구를 모두 뒤짚을 수 있는 엄청난 발견 앞에 그들의 연구와 추적은 동지애에 훨씬 가깝게 시작한다. 물론 후반으로 흘러갈 수록 이런 동지애에서 애정으로 발전하는 모습이 간간히 포착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애정보다는 동지애에 훨씬 가깝다. 극단적으로 미첼에게 있던 연인 발과 베일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첼의 정신세계를, 그의 학문을 이해해 줄 수 있는냐가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점이라고 생각되니 말이다. 


사실 이러한 애정은 R.H.애쉬와 C.라모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R.H.애쉬와 C.라모트의 관계는 시인으로서 서로 시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이 되었다. 물론 그 시작이 플라토닉한 관계에서 애로스적인 관계로 계속 발전을 해나가지만, 두 시인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정의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미첼의 여인인 발이 R.H.애쉬와 C.라모트의 관계에서는 애쉬부인이 맡고 있다는 점도 흥비롭다. 모드 면에서 두 시인의 이야기와 두 학자의 이야기는 명확하게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다. 미첼과 베일리의 모습처럼 - 아니 어쩌면 R.H.애쉬와 C.라모트의 관계가 먼저일지도 모르지만 - 둘의 애정은 정신적인 면이 훨씬 더 부각되는 점은 소설 내내 강조된다. R.H.애쉬와 C.라모트의 사랑이 미첼과 베일리의 사랑과 조금 다른게 다가오는건 그들의 사랑에 어쩌면 그들도 끝내 알지 못했을 결실이 남았다는 점이다. 당사자들 조차도 알지 못했지만 소중하게 기억될 그 따스한 기억을 말이다. 


소설 [소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육체가 아닌 서로의 정신세계에 반한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그 사랑의 발전에 대해서. 이 이야기를 공고하게 쌓아 올리기 위해 빅토리아 시대 시인의 섬세한 시와 그 시인들의 편지, 그 시대의 일기, 그리고 시인들에 대한 논문과 , 산문들이 겹겹히 쌓여서 하나의 오래 잊혀지지 않을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만만치 않은 두께의 두툼함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지만, 오랜 시간을 공들여 읽을만한 분명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사실 이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마지막 3페이지를 위한 이야기 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마지막 3페이지는 거진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사람만이 읽어낼 수 있는 따스한 이야기일테니 말이다.


+ 참고로 동명의 영화가 존재한다. 나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꽤 영화가 괜찮다는 평인데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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