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끝났다 -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곳, 다시 집을 생각한다
김수현 지음 / 오월의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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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자체의 개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현행 재개발이나 뉴타운 사업은 효과적인 방식이다. 더구나 정부의 돈도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주민들은 정부가 국공유지 매각 대금 등으로 오히려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주민'의 관점에서 보면 이 사업은 서민들의 공간을 상위계층에게 제공하는 사업이다. 사업 전후의 주거비 부담과 재입주율을 보면 명확하다. 물론 예전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서 강제로 철거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 가격으로 보상이 이뤄진다. 세입자들에게도 '원칙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토록 되어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주택은 개량될지 몰라도, 주민들의 주거 사정은 나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된다. 사회갈등 역시 끊이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하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94-195쪽

정부가 저소득층 주택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한국에서는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정부 개입 프로그램 없이 그렇게 늦게까지 견딜 수 있었던가는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판자촌(무허가 정착지)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1960년대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급속히 늘어난 판자촌은 1980년대 초까지 서울 인구의 최소한 10% 이상이 거주하던 공간이었다. 결국 판자촌이 도시 빈곤층의 주된 거주지 역할을 했으며, 그런 점에서 '비공식적인 공공임대주택'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217쪽

집값이 빠르게 오르는 시기에는 빚을 내서라도 주택을 구입하면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대출금 상환이 부담되기는 하지만 어떻든 오른 집값으로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값이 정체되거나 하락한다면? 이른바 하우스푸어 문제가 시작되는 셈이다. 얼마 전 그 숫자가 200만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기는 했지만, 어떻든 집을 지고 사는 사람들은 주변에 많다. 다만 대출상환율은 여전히 정상 범위에 들어 있는데, 이는 집을 유지하기 위해 온 집안이 안간힘을 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신 소비는 줄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내수 침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집과 사교육이 지목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어렵게라도 집을 장만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선진국에서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는 모기지대출을 상환할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이 필수적이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단순히 부실한 대출과 금융 위기 문제가 아니라, 후기산업사회의 고용불안정 문제가 한 축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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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 - 그들은 왜 나를 수집하는가?
김주완.이승우.임원기 지음 / 거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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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가 다른 수단들과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은 인간의 움직임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CCTV 영상은 특정 인간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 가운데 유일하게 '물리적 대상'을 수반하고 있다.-101쪽

CCTV가 권력의 비대칭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이유는 감시라는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이 장비를 통해 단순한 사실의 기록을 넘어 축적된 자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CCTV의 발전은 자료 생산을 더욱더 쉽게 만들고 있다. 개인들에 대한 기록과 자료를 바탕으로 각각을 다른 그룹으로 분류하고 이들을 다르게 취급, 대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CCTV를 이 같은 의도로 만든다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이를 상기시킬 필요는 있다.-110쪽

스마트폰 시대에는 '실시간 위치 정보'라는 개인정보가 생겨났다. 이 위치정보는 휴대용 PC(스마트폰)와 결합해 더욱 강력한 개인정보를 기업에 제공한다. 지도 앱, 맛집찾기 앱, SNS 앱, 게임 앱 등 스마트폰에서만 작동하는 앱이 파악한 다른 개인정보, 이를테면 스마트폰 이용 시간, 나이, 성별, 취미, 월 소득 등과 결합해 광고지만 알짜 정보를 준다. '실시간 위치정보'라고 해도 이것만 활용했다면 이 정보도 스팸에 그쳤을 것이다. 상당수 소비자들은 LBS 서비스의 편리함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제고하고 있다. 과거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무감각 내지 무뎌짐과는 다른 차원이다. 내가 원하고 나에게 맞는 최적의 쇼핑정보를 갈구한다.-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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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1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 오월의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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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싸우기 위해서 민우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의외로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별하지 않은 나'로서 차별이 안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정당성을 가지며, '특별하다'고생각하는 것 자체가 차별받는 것이라 여긴다. '감염인이라서' 차별받는 게 아니라' 사람인데' 차별받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감염인으로서 차별받기'는 상대적일 수 있는 문제이며, 많은 사람들이 감염인이라서 차별받는 문제를 부당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민우의 생각이다.-189쪽

일터에서 사람들을 구분지어 위계화하며 배치하는 힘의 벡터는 수많은 힘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그 힘에 따라서 사람들은 특정한 방향으로 행동하게 되고 대개의 경우 그 힘에 맞서는 것은 너무나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그 힘의 벡터를 구성하는 여러 힘들의 조합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우리의 저항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힘을 축적하며 시작될 수 있다. 특정한 장소에서의 인정 가능성은 경험의 연속성을 통해 다른 장소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떤 장소들에서 겪게 되는 공동의 문제에 맞서는 힘이 그 장소를 넘어설 수 있도록 만드는 연결이 필요할 뿐이다.-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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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의 발명 - '엄마'라는 딜레마와 모성애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 지음, 이재원 옮김 / 알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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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있는 여성은 자신의 인생을 바꿔야 하는데 아이가 있는 남성은 생애의 한 시기만을 바꾼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아이가 있는 남성은 계속해서 자기실현을 할 수 있지만, 여성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중간에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을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되는데, 그러면 여성은 한시도 쉬지 못하고 자기 시간을 육아에 투자해야 한다.
1장 인구학논쟁:이슈가 된 출생률 감소-36쪽

그러나 인생행로를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된 것 이면에는 새로운 도전과 강제가 등장한다. 계획이나 결정이 '자유로운'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인생행로 속으로 파고든 시장논리에 의해 구조적으로 규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노동 및 경제 공동체로서의 가족이 해체됨에 따라 노동시장의 매개를 거쳐 개개인과 관련을 맺는 생존 보장 형태가 새롭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2장 나만의 인생이라는 기회와 강요-45-46쪽

가족경제 속에서 함께 일할 수 있었던 아이와 노약자는 익명의 시장법칙 아래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다. 나아가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산업적 합리성이라는 독재에 들어맞지 않는 욕구를 끊임없이 억눌러야 했다. 따라서 산업사회의 등장과 동시에 보완적 형태의 또다른 인생행로가 필요해지는데, '근대화의 가혹함'을 완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그 임무라 할 수 있다. 이 인생행로는 시장이라는 조건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모든 인간적 욕구를 떠맡게 된다. 그것은 개인으로서의 성취에 맞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뒤에서 지원하고 원기를 북돋아주며 격려하고 확인해주는 등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성에게 주어진 노동 및 삶의 형태다.
3장 모성애의 역사-67쪽

18세기와 19세기의 사회사를 살펴보면 특히 두 가지 조건이 교육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촉진시킨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신분사회가 시장 법칙에 의해 조종되는 산업사회로 이행한 것이다. 교육은 그 덕분에 점점 더 중요해졌는데, 지위가 단순하게 상속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능력과 지식이 한층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중략)
또다른 하나는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동시에 세계에 대한 지배를 목표로 하는 진보의 믿음이 점점 더 확산된 것이다. (중략) 어린이는 아직 인생의 출발점에 있으므로 모든 것이 열려 있고 가변적이다. 새로운 세계관이 어떻든 간에, 어린이란 원하는 발전은 장려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저지하는 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가장 이상적인 '활동 영역'으로 여겨지게 된다.
3장 모성애의 역사-69-70쪽

이처럼 여성의 삶은 교육에 봉사하는 것이 되었다. 새로 등장하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종속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부르주아적 원칙과는 모순되지만 '본성'에 의해, 그리고 어머니 역할에 의해 정당화된다. 어머니 노릇은 남성과 여성의 삶의 가능성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고착시킨다. 남성에게는 시장이 요구하는 독립성이, 여성에게는 육아가 요구하는 자아 포기가 삶의 가능성이 되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경향의 한 가지 측면만을 개략적으로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본다면 새로운 부담 외에 새로운 보상, 즉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새로운 기회 또한 생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머니 역할이 부상하는 동시에 어머니 역할의 권위에 대한 평가절상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3장 모성애의 역사-83쪽

여성은 떠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어디로? 가정의 구속이 사라지고 나만의 인생에 대한 강요가 나타나지만, 그것이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위험과 수없이 결부되어 있다면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19세기 말에 몰아닥친 질문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책도 존재한다. 아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니, 아이가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드디어 자녀교육이 여성 삶에서 최후의 보루로 교육 전문가들에게 주목의 대상이 된다.
4장 제1차 출생률감소:19세기 말의 여성과 어머니-98쪽

'타인을 위한 삶'은 몰아적인 사고와 행동을 요구한다. 그에 반해 근대사회의 감추어진 교육 계획에는 목적의식적으로 인생행로를 설계하고 기회를 폭넓게 이용하며 장애물을 예측하여 피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런 기준에서 아이가 명백한 장애물이 되고 가능성을 현저히 제한하는데 어떻게 어머니가 되기로 결정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갈등이며, 이는 개별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사회의 문제다.
이런 변화의 결과는 잘 알려져 있듯이 1960년대 중반의 제2차 출생률 감소로 나타났다. 그 후 출생률 감소 경향은 더욱 심화되어 지금까지도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6장 제2차 출생률 감소의 시작-169쪽

젊은 세대 여성들은 동등한 권리와 균등한 기회, 그리고 자기 인생이라는 약속과 함께 성장했고 그 토대 위에서 자신의 미래를 계획했다. 그러나 곧 이 약속에는 작은 글씨로 인쇄된 안내문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확인해야 한다. "어머니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음!"이라고. 모든 여성이 대단한 경력을 추구하고 기업의 위계질서 안에서 1인자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돈부터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까지 일정한 권리와 자유가 당연히 자기 인생에 속하는 것이었는데, 아이와 더불어 커다란 전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8장 미래 전망-211쪽

학자들이 제안하는 것은 동반자 관계, 남녀평등, 여성해방이다. 독립과 자기 인생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기대를 수용해 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두 번째 모델로, 쉬르마허 식 테제의 반대 버전이다. 기회균등에 대한 기대와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이 기대를 낮추는 방식으로 해결되어서는 안 되며, 현실에서 기회균등이 더 많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시다. 구호는 "여성의 기대를 후퇴시켜라"가 아니라 "그것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목적의식적으로 정치적 노력의 중심에 밀어넣어라"다. (중략) 전문가들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현대사회가 자녀를 더 많이 가지기 원한다면 더 많은 평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평등 없이는 출생률 증가도 얻을 수 없다.
8장 미래 전망-221~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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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지향 -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 성장 거부 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 민들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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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은 그들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나라의 정부에 요구합니다. 법인세율을 낮추고, 노동자 임금을 낮추고, 공해 규제를 완화하고, 원자력 발전으로 전력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사회적 인프라를 위해 국비를 지출하도록 말이지요. 그리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겠다며 협박합니다. 그리 되면 고용이 줄고 소비가 얼어붙고 지역경제가 붕괴하고 법인세수가 격감해 국민국가를 꾸려나갈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정부는 그 요구에 굴복합니다.

그 결과 국민국가에 대한 귀속의식이 없는 기업일수록 국민국가로부터 많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는 도착된 법칙이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 도착된 법칙은 '세계 표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국부를 사유재산으로 바꾸는 데 열심인 사람, 공공의 복리보다 사적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을 해당 국가가 전력을 다해 지원합니다. 그것이 지금 미국과 중국, 일본, 아마도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실상일 것입니다-12쪽

이러한 이익 상반이 가장 첨예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영역이 바로 학교교육입니다. 학교는 애당초 국민국가의 내부 장치입니다. 학교의 설립 목적은 '차세대 국가를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 육성'입니다. 제대로 된 어른을 계속해서 길러내지 않으면 사회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른을 키운다'는 것은 100년의 안목으로 볼 때는 아주 합리적인 행동이 됩니다.

하지만 글로벌 자본주의는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일단 다음 4분기의 수익을 올리는데 필요한 인재 육성'입니다. 능력 있고, 임금이 낮고, 체력이 있고, 권리의식이 희박하고 비판정신이 결여되어 상사의 말에 순종하고, 어떠한 공동체에도 귀속되지 않고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아 회사의 전근 명령 하나로 곧바로 해외 지점이나 공장에 부임할 수 있는(이를 일본의 교육계는 '글로벌 인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그런 청년을 대량으로 공급해줄 것을 학교에 요구합니다.-16쪽

예전의 불량스러움과는 완전히 다르다. 과거 불량학생들은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어, 나쁜 짓을 하다가 적발당하면 어쨌든 '나쁜 짓을 했다'라는 사실관계에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달라졌다. 지금은 학생들이 사실 그 자체를 부인한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교사도 학생 자신도 그 사실을 바로 확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 없다"고 아무렇지 않게 부인한다. 이런 '우기기' 태도가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퍼졌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이런 일이 유행하고 있다고 언론에서 다루지도 않았다. 극히 짧은 시간에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하나같이 우기기를 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이 최근에는 좀더 나이가 많은 세대에까지 퍼진 듯 싶다.(중략) 하지만 그들로서는 처음부터 그렇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다. 아마도 어릴 적부터 확고한 들이대며 비행을 추궁해도 하지 않았다고 버티는 데서 협상이 시작된다는 것을 간파하고 이를 습관화해왔기 때문에 이미 다른 대응책을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42-44쪽

아이들은 자기들이 한 질문이 어른들을 아연실색케하거나 또는 유아적인 지성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무의미한 답변을 끌어내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을 일찍부터 배우게 된다. 이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과정이 아이들에게 일종의 성취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공한 기억으로 인해 아이들은 일찍부터 사사건건 "이게 어디에 쓸모가 있나요? 이것을 하면 나한테 어떻게 좋아요?"라고 묻는다. 당신의 대답이 마음에 들면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한다'. 이러한 판단 기준을 인생을 막 시작한 즈음부터 몸에 새기게 된다. 이렇게 '등가교환 하는 아이들'이 탄생한다.-47-48쪽

소비하는 일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아이들은 인생의 아주 초반부터 '돈의 전능성'을 경험한다. 그렇게 출발선에서 받은 각인의 영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고 본다. 누구든 소비주체로 등장하는 한, 그 구매 주체의 다른 어떤 부분에 대해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각인, 이는 단순히 배금주의적 경향이 심어지는 것과는 다르다.
문제는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사는 사람'이라는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사는 사람입니다."하고 자신을 설정하면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어엿한 한 사람의 선수로 시장에 참가하도록 허락된다. 이 경험이 가져다주는 짜릿한 쾌감은 매우 중요하다. 어린아이가 한번 이 쾌감을 맛보면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아이들은 그 다음부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선 자신을 '사는 사람'으로 설정하고, 또 누군가와 마주하는 상황이 되면 무엇보다 먼저 자기를 소비주체로 내세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다. 당연히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교육 서비스를 사는 사람'이라는 위치를 무의식중에 선점하고자 한다.-53쪽

다시 말해 소비란 본질적으로 무시간적인 행위이며, 소비자는 무시간적인 '유령'이다. 소비자는 상품과 화폐를 교환하는 전 기간에 걸쳐(그것이 현실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든) 원리적으로는 '변화하지 않는 주체'로 정해져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인간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비주체로 일단 시장에 들어온 인간은 누구나 '등가교환이 이뤄지는 동안 소비주체는 결코 변해선 안 되고 가치관을 바꿔서도 안 된다. 교환율도 바꿔서는 안 되며 자신이 측정하던 잣대를 바꿔서도 안 된다'는 엄중한 금기사항을 지켜야만 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배움의 장에 소비주체로 등장해버린 아이들도 이와 같은 금기사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73쪽

'자기 찾기'란 자기평가와 외부평가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는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일로 여겨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로 외부평가보다 자기평가에 후하기 때문에 외부평가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자기가 납득할 수 있는 경의와 위신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보통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장해 간다. 하지만 개중에는 외부평가를 완전히 부정하는 폭거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다들 멍청해서 사람을 몰라보는 거야"하며. 그래서 그런 멍청한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곳으로 가서 외부평가를 다시 받으려 한다. 하지만 잘 될 리가 없다. 자기가 스스로에게 내린 평가가 타인의 평가보다 더 진실하다는 전제 자체가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78쪽

일반적으로 부유층 가정의 아이들이 빈곤층 가정의 아이들보다 학력이 높게 나온다. 그 이유에 대해 보통 부유한 가정이 자녀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그보다 더 내밀한 이유가 있다. 바로 부유층 자녀들은 높은 학력을 딸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이익을 회수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지만, 빈곤층 자녀들은 학력의 효용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학력의 차이'가 아니라 '학력에 대한 신뢰의 차이'가 있다. '노력의 차이'가 아니라 '노력에 대한 동기부여의 차이'이다. '학력의 차이'는 간단하며 계량이 가능하지만 '학력에 대한 신뢰의 차이'는 '공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취급하기 곤란하다. '목표하는 바를 위해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것을 온 가족이 믿고 있고, 실제로 그 노력의 성과를 향유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과 '공부해도 소용없다'고 공언하고 지금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에 있는 원인이 자신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을 비교하면, '노력에 대한 동기 부여'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다.-91쪽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고 싶지 않으니 내버려 두세요"라는 말은 젊은이들의 상투어다. 그 사람은 정말로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속내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이 자신에게 폐를 끼칠까봐 두려운 것이다. 자기결정에 대해 타인이 관여하는 것이 귀찮고 번거로워서 "당신이 어떻게 살든 관여하지 않겠다"라고 먼저 선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되돌아올 길 없는 사회적 하강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자기결정/자기책임이라는 삶의 방식을 관철할 수 있는 사람은 강자밖에 없다. 하지만 리스크 사회에서 강자들을 살펴보면 다들 상부상조/상호지원 네트워크에 속해 있으며, 그 덕분에 리스크 헤지가 가능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말하면, 리스크 사회에서 자기결정/자기책임을 관철할 수 있는 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리스크를 떠안는 존재는 자기결정/자기책임의 원리에 충실한 약자들뿐이다.-113쪽

소비자 마인드는 등가교환을 희망하고, 등가교환은 무시간 모델이기 때문에 고등교육의 장에서도 아이들은 '공부'할 동기가 사라진다. '시간'을 배제한 곳에 '배움'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즘 대학에는 실러버스syllabus라는 게 있다. 예전의 수업개요나 학습요강 같은 것으로, 이를 더 구체화한 것이다. (중략)
나는 이것이 고등교육 자살의 한 징후라고 생각한다. 학생이 앞으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대해 미리 알고 있을 것을 전제로 해서는 배움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움이란 자기가 배운 것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주체를 구축해가는 과정이다. 공부를 끝낼 시점이 되어야 비로소 무엇을 배웠는지를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한다. 공부는 이런 역동적인 과정이다. 배우기 전과 후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지 않으면 공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152-153쪽

미지에 대한 지성의 개방성, 내가 이대로 나아가면 언젠가는 얻을 수 있는 앎에 대한 분명한 기대가 '멘토', '문제', '가설'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추상적인 설명이어서 유감이지만, 여기서 키워드는 '시간'이다. 지성이란 요컨대 나 자신을 시간의 흐름 속에 놓고 나의 변화를 고려하는 것이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무지'의 정의도 가능하다. 무지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 역시 변화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하는 사고를 뜻한다. 내가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공부로부터의 도피, 노동으로부터의 도피는 자신의 무지에 고착하는 욕망인 것이다.-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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