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있는 여성은 자신의 인생을 바꿔야 하는데 아이가 있는 남성은 생애의 한 시기만을 바꾼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아이가 있는 남성은 계속해서 자기실현을 할 수 있지만, 여성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중간에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을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되는데, 그러면 여성은 한시도 쉬지 못하고 자기 시간을 육아에 투자해야 한다. 1장 인구학논쟁:이슈가 된 출생률 감소-36쪽
그러나 인생행로를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된 것 이면에는 새로운 도전과 강제가 등장한다. 계획이나 결정이 '자유로운'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인생행로 속으로 파고든 시장논리에 의해 구조적으로 규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노동 및 경제 공동체로서의 가족이 해체됨에 따라 노동시장의 매개를 거쳐 개개인과 관련을 맺는 생존 보장 형태가 새롭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2장 나만의 인생이라는 기회와 강요-45-46쪽
가족경제 속에서 함께 일할 수 있었던 아이와 노약자는 익명의 시장법칙 아래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다. 나아가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산업적 합리성이라는 독재에 들어맞지 않는 욕구를 끊임없이 억눌러야 했다. 따라서 산업사회의 등장과 동시에 보완적 형태의 또다른 인생행로가 필요해지는데, '근대화의 가혹함'을 완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그 임무라 할 수 있다. 이 인생행로는 시장이라는 조건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모든 인간적 욕구를 떠맡게 된다. 그것은 개인으로서의 성취에 맞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뒤에서 지원하고 원기를 북돋아주며 격려하고 확인해주는 등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성에게 주어진 노동 및 삶의 형태다. 3장 모성애의 역사-67쪽
18세기와 19세기의 사회사를 살펴보면 특히 두 가지 조건이 교육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촉진시킨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신분사회가 시장 법칙에 의해 조종되는 산업사회로 이행한 것이다. 교육은 그 덕분에 점점 더 중요해졌는데, 지위가 단순하게 상속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능력과 지식이 한층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중략) 또다른 하나는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동시에 세계에 대한 지배를 목표로 하는 진보의 믿음이 점점 더 확산된 것이다. (중략) 어린이는 아직 인생의 출발점에 있으므로 모든 것이 열려 있고 가변적이다. 새로운 세계관이 어떻든 간에, 어린이란 원하는 발전은 장려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저지하는 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가장 이상적인 '활동 영역'으로 여겨지게 된다. 3장 모성애의 역사-69-70쪽
이처럼 여성의 삶은 교육에 봉사하는 것이 되었다. 새로 등장하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종속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부르주아적 원칙과는 모순되지만 '본성'에 의해, 그리고 어머니 역할에 의해 정당화된다. 어머니 노릇은 남성과 여성의 삶의 가능성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고착시킨다. 남성에게는 시장이 요구하는 독립성이, 여성에게는 육아가 요구하는 자아 포기가 삶의 가능성이 되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경향의 한 가지 측면만을 개략적으로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본다면 새로운 부담 외에 새로운 보상, 즉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새로운 기회 또한 생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머니 역할이 부상하는 동시에 어머니 역할의 권위에 대한 평가절상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3장 모성애의 역사-83쪽
여성은 떠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어디로? 가정의 구속이 사라지고 나만의 인생에 대한 강요가 나타나지만, 그것이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위험과 수없이 결부되어 있다면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19세기 말에 몰아닥친 질문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책도 존재한다. 아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니, 아이가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드디어 자녀교육이 여성 삶에서 최후의 보루로 교육 전문가들에게 주목의 대상이 된다. 4장 제1차 출생률감소:19세기 말의 여성과 어머니-98쪽
'타인을 위한 삶'은 몰아적인 사고와 행동을 요구한다. 그에 반해 근대사회의 감추어진 교육 계획에는 목적의식적으로 인생행로를 설계하고 기회를 폭넓게 이용하며 장애물을 예측하여 피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런 기준에서 아이가 명백한 장애물이 되고 가능성을 현저히 제한하는데 어떻게 어머니가 되기로 결정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갈등이며, 이는 개별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사회의 문제다. 이런 변화의 결과는 잘 알려져 있듯이 1960년대 중반의 제2차 출생률 감소로 나타났다. 그 후 출생률 감소 경향은 더욱 심화되어 지금까지도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6장 제2차 출생률 감소의 시작-169쪽
젊은 세대 여성들은 동등한 권리와 균등한 기회, 그리고 자기 인생이라는 약속과 함께 성장했고 그 토대 위에서 자신의 미래를 계획했다. 그러나 곧 이 약속에는 작은 글씨로 인쇄된 안내문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확인해야 한다. "어머니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음!"이라고. 모든 여성이 대단한 경력을 추구하고 기업의 위계질서 안에서 1인자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돈부터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까지 일정한 권리와 자유가 당연히 자기 인생에 속하는 것이었는데, 아이와 더불어 커다란 전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8장 미래 전망-211쪽
학자들이 제안하는 것은 동반자 관계, 남녀평등, 여성해방이다. 독립과 자기 인생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기대를 수용해 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두 번째 모델로, 쉬르마허 식 테제의 반대 버전이다. 기회균등에 대한 기대와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이 기대를 낮추는 방식으로 해결되어서는 안 되며, 현실에서 기회균등이 더 많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시다. 구호는 "여성의 기대를 후퇴시켜라"가 아니라 "그것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목적의식적으로 정치적 노력의 중심에 밀어넣어라"다. (중략) 전문가들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현대사회가 자녀를 더 많이 가지기 원한다면 더 많은 평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평등 없이는 출생률 증가도 얻을 수 없다. 8장 미래 전망-221~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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