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대한 우화를 끝내 끝까지 읽고 말았다.
집사 스티븐슨이 함께 일했던 캔튼부인을 찾아가는 며칠 간의 여정.
얼결에 그 여정의 끝까지 함께하고 말았다.
마지막 문장을 마치고,
온집안을 뒤져 몇년이나 지난 줄스를 찾아 연기를 내뿜어보았다.
도대체 이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썼을까, 생각하면서.
"I trusted I was doing something worthwhile.
I've given what I had to give. I gave it all to Lord Darlington.
I find I do not have a great deal more left to give.”
"What can we ever gain in if our lives have not turned out quite as we might have wished?
The hard reality is that for the likes of you and I, there is little choice other than to leave our fate, ultimately, in the hands of those great gentlemen at the hub of this world who employ our services.”
하지만 그는 그토록 믿었던 달링턴 경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다해 최선을 다하느라
이제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아마도 얼마 안 있어 그의 아버지처럼 작은 방에서 스러져갈 것이다.
유력한 인사들이 드나드는 저명한 저택이었던 달링턴의 주인은 가고 없다.
대신 그에게 흔쾌히 자신의 차를 내어주며 휴가를 보내주는 미국인 주인이 있을 뿐이다.
달링턴 경은 전쟁을 겪으며 그 역시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에 휘말려 나치에 이용 당하고 결국 죽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토록 헤아리지 못하고,
답답하리만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그저 ‘dignity’를 지키며 최고의 버틀러가 되는 것밖에 인생에 목표가 없었던 스티븐슨이
바닷가에서 흘린 눈물에 선뜻 손수건을 내밀지 못하면서도
그를 탓할 수 없는 건
그의 숭고하리만치 대단한 직업정신때문일까.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단단하게 말하던
필경사 버틀비.
스티븐슨은 그 단단한 버틀비를 닮았으면서도 그 어느 순간에도
하는 편을 택했던 인물이다.
저녁이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하지만,
은퇴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하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날은 많지 않다.
그는 과연 어떻게 살았어야 했을까.
시간을 돌릴 수 없지만 만약 돌릴 수 있다면
그는 캔튼부인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하루하루 일에 파묻혀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사랑과 인생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게 나았을까.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더 열심히 주인을 위해 봉사할 것을 다짐한다.
이 거대한 우화에 숙연해지는 건
그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우리 모두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모습에서 겹치는 우리의 모습들이 있다.
윤리적이지 않은 회사를 위해 젊음과 인생을 바치는 수많은 사람들.
소중한 것을 뒤로 물린 채 그저 한 곳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그를 탓할 수 없게 만드는 작가의 힘.
황혼에 대한 그의 글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