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색볼펜 읽기 공부법 - 책읽기에서 시험준비까지 인생을 바꾸는
사이토 다카시 지음, 류두진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어렸을 책을 깨끗이 봐야 한다 어른들 얘기는 귓등으로 들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한정시킬 있는함부로 밑줄 긋기 지양해야 한다는 어느 작가의 이야기에는 솔깃했던 같다. 책은 읽을 때마다 조금씩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므로 밑줄을 긋는 행위는 자신의 부족했던 생각을 쓸쓸하게 확인하는 작업밖에 되지 않는다는 요지였다. 나는 매번 다르게 읽힐 있는 책의 의미를 해방시키기 위해 기꺼이 펜을 내려놓았다. 미치도록 줄을 치고 싶은 경우에는 모서리 한쪽을 접어놓았다. 나중에 휘리릭 책장을 넘길 때에도 자리에서는 잠시 멈추기를 바라며. 그때 감명 깊게 읽은 책들을 쥐어보면 모서리 한쪽이 뭉툭하다. 사랑의 기억을 몸에 새긴 문신처럼.


하지만 읽어야 책과 읽을 있는 시간의 한계라는 괴리 앞에서 나는 어쩔 없이 펜의 손을 들어주고야 말았다. 슬쩍슬쩍 연필로 조심스럽게, 그러다가 0.4 내외의 밑줄 전용펜, 뒷장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형광펜 다양한 필기구를 실험했다. 밑줄에는 긋는 순간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시간이 없어 대충 읽은 책에는 거친 선이 날아다녔고, 저자와 완벽한 일치감을 맛본 책에는 종이가 뚫어질 것처럼 높은 압력으로 깊은 흔적을 남겼다. 한동안 빠져들었던 펜은 무지개 색이 하나의 심에 들어있는 색연필이었다. 녀석은 예술 관련 책들과 어울렸다. 화려한 도판과 함께 텍스트 중간의 세련된 파스텔톤의 색감이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생각의 근육이 강하게 필요한 철학책에는 연필이 어울렸다. 사각사각 연필을 돌려 깎을 때의 느낌이 좋았다. 마치 무사가 전쟁에 나가기 칼을 가는 심정 같다고나 할까. 곱게 연필을 옆에 두고 중요한 문장에다 정확히 밑줄을 그을 때면 화살이 과녁 중앙에 꽂히는 쾌감이 들었다. 거친 종이 위에 흑심이 조금씩 부서지며 충돌하는 마찰음은 어렵고 힘든 산을 오르는 행위를 실감나게 했다.


원하는 책을 모두 사는 것은 결국 욕망이란 생각에 도서관을 적극 이용하게 되면서 밑줄 긋기 대신 새로운 읽기 습관이 생겼다. 바로노트북과 함께 읽기. 왼쪽에는 , 오른쪽에는 노트북을 펴놓고, 중요한 구절이 보일 때마다 옮겨적었다. 책을 읽고 다음에 구멍 숭숭 뚫린 그물처럼 빠져나가던 생각들이 그나마 여과지에 거른 것처럼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열감에 휩싸이며 읽은 책들의 경우 발췌한 양이 터무니없이 길어지기도 했다. 기억을 효과적으로 종합할 있다는 이점 때문에 빌려 읽는 책이 아니라 사서 읽는 전반으로 노트북의 사용을 확대했다. 발췌하다 보면 안에서 볼드 주기나 키워드 구분, 내용의 분류, 색상 표현 등을 자유롭게 가공할 있어 책의 내용을 나름대로 다시 구축할 있어 좋았다. 단점이 있다면 노트북 없이 읽을 적에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 읽은 책들은 에버노트의 카테고리별 리스트에 존재해야 있었고, 그렇게 기록되지 않은 책들은읽었다는 사실정도만 희미한 기억으로 남았다. 노트북 없이 읽고 다음에는 밑줄 그은 문장을 한꺼번에 발췌하며 책의 내용을 정리하기도 했다. 여러 모로 불편하기도 하고 거추장스러운 행위다


하지만 그렇게 옆에 두고 읽는 행위가 다산의 독서법 질서(疾書)’초서(抄書)’ 해당한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확신을 갖고 밀어붙였다. 다산이 평생 그렇게 많이 읽고 있었던 것은 책의 중요 내용을 발췌해 적는질서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적어놓는초서 기인했다고 한다. 그렇지. 인간이 어떻게 많은 책을 맨바닥에서 새로 지어낼 있겠는가. 다산도 이래저래 고민하다보니 나은 읽기법을 고안해내지 않을 없었을 것이다


최근 들어 가장 적극적으로 읽는 행위는서평 쓰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것과 서평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이지만, 서평을 씀으로써 책을 다시, 더욱 깊이 읽게 되는 것만큼은 부인할 없었다. 아직 요약과 독후감을 너머 진정한 서평의 전형을 찾지 못했지만, 오히려 패턴화 서평은 지양하는 쪽이어서, 매번 새롭게 자유로운 서평의 형식을 실험해 생각이다.


속독에는 관심없고, 챕터씩 읽을 때마다 멈추고 머릿속으로 내용을 재구성하는 매킨지식 독서법은 괜찮은 같다. 중요한 책의 내용을기억하는 못지 않게 안에서 자신의생각의 근육 키우는 것이다. 정보습득에만 주목한다면 정보가 담긴 칩을 몸안 어딘가에 이식하는 빠를지도 모른다. 속에 있는 길을 따라 걸은 후에 자신이 직접 길을 있는 능력을 키우는 , 그것이 독서를 통해 우리가 정말로 얻고 싶은 것이 아닐까. 길을 내려면 우선 속에 있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전제는 바뀌지 않는다. 길을 내는 것이 중요하니까 속에 있는 길은 대충 건성건성 뛰어넘고 어떻게 길을 낼지 고민하자?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믿을 만한 사람은 없는 같다.


<3색볼펜의 읽기 공부법> 얼핏 3색볼펜 사용법에 대한 책으로 읽힌다.

파란색은 객관적으로 중요한 내용에,

빨간색은 객관적으로 아주 중요한 내용에,

초록색은 주관적으로 재미있는 내용에 밑줄을 치란 얘기다.


단순한 얘기를 굳이 권으로 묶어낼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어 책을 펼쳤는데,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어버렸다. 여기서 핵심은 초록색 펜의 사용에 있다. 지금까지 어떤 펜을 사용하든중요 중요사이의 구분이었다면, 3색볼펜을 통해주관 삽입하는 것이다. ‘주관과 객관을 전환하는 기술 익히고, ‘읽기=생각하기 공식을 몸에 새기는 . 밑줄을 '긋고', 볼펜을 '딸깍하는 신체적 활동을 통해 몸을 바꾸고, 생각하는 방법을 바꾸게 되는 . 옆에 노트북이 없어도, 공책이 없어도, 3색볼펜이 있다면 자유롭게 심해를 탐험할 있겠다는 희망을 엿보았다.


문장이란 프로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처럼 성질이 제각각인 법이다. 직구를 비롯해 커브, 포크, 글라이더, 너클볼 등과 같은 변화구가 책에도 존재한다.


혼자만의 독서보다 같이하는 독서모임에 많은 기대를 거는 그만큼 입체적인 읽기가 가능하다는 있다. 하지만 3색볼펜을 사용하면 혼자 하는 독서에서도 3색의 대화가 이뤄질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반가웠다. 투수의 구질을 제대로 파악하는 몸으로 체득해야 정확히 배트를 휘두를 있다. 무턱대고 배트만 휘두른다고 좋은 타자가 수는 없는 법이다


저자가 이야기한 독서는 일단경청이다. 자신의 논지를 펼치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이해할 있는 능력. 주관적 감상 못지 않게 객관적 요약 능력은 무시할 없는 기본이다. ‘자기 나름의 시선 중요성 때문에 우리는 소통의 가장 기초적인 공통분모조차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은지. 그래서 아래 저자의 이야기는 책을 지지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다.


독서는 일단 ‘듣는’ 작업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기 위한 ‘적극적 수동성’의 자세를 단련시켜야 한다. 

적극적 수동성의 자세를 배우는 것 자체가 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다.


읽기 수준이 낮을 때는 책을 읽고 받아들이는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각자의 읽기 방식이 있으면 된다’라는 생각은 엄밀히 말하면 위험한 것일 수 있다. 

기본적인 요약이 되어있지 않은데 의견만 충돌 시킨다고 해서 생산적인 토론이 될 리 없다. 

객관적인 요약을 해내지 못하는 것이 서로 간의 이해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공통 인식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어야 주관적인 의견이나 발상을 자유자재로 교환하기 쉽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응답’이다.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확실히 파악하려는 자세 없이 수준 높은 커뮤니케이션을 이룰 수 없다. 

독서는 ‘정보 습득’에서 나아가 다른 사람의 사상과 철학을 폭넓게 수용하는 행위다. 

따라서 독서는 여전히 유효한 공부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다. 


책을 읽다 말고 밖에 나가 3색볼펜을 사왔다

앞으로 3색볼펜 콜렉션에 집착할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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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6-10-20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삼색볼펜 책이 나온 적 있어 읽었는데 문장을 분석하는 능력이더라구요. 이것도 비슷하지 않나요?

나뭇잎처럼 2016-10-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그 책인 거 같은데요. 삼색볼펜 책이 또 있나보죠? ㅎㅎ 맞아요. 읽고 난 다음에 분석하기 보다 읽으면서 바로 다른 서랍에 분류하는, 즉각적인 뇌 사용의 전환 같은 거죠.^^ 삼색볼펜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네요^*

manaman 2019-05-22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너무 잘 쓰시네요. 반했습니다.

나뭇잎처럼 2019-05-25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묵혀두었던 서재인데 manaman님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