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현대미술가 시리즈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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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밀렸던 전시를 몰아보는 일. 운좋게도 그때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들이 한국에 왔고, 외국 도시를 방문하면 꼭 하는 일(개장 시간에 미술관에 들러 하루 종일 그림 속에 있는 것)을 하면서 퇴사의 기쁨을 누렸다. 좋은 전시가 있으면 휴가를 내고서라도 하루를 온전히 바치는 것이 낙이었는데 퇴사 직전에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었던 것 같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눈에 포착된 강렬한 색채와 천진난만한 선들은 고흐 그림을 직접 대면했을 때 만큼 몸에 진동을 일으킬 만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가진 그림에 대한 질문을 따라 삶의 궤적을 오롯이 쫓을 수 있어서 부지런히 적어가며 그의 여정을 함께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특히나 중국인들이 원근법을 거부하며 그린 두루마리 그림을 필립 하스와 함께 설명하는 45분짜리 영상은 그가 ‘보는 것’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탁월한 영상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하는 것을 잘 말할 줄 아는 사람. 잘 쓰기보다 잘 쓰는 것에 대해 잘 말하거나, 잘 그리기보다 잘 그리는 것에 대해 잘 말하는 사람. 호크니가 잘 그린다 못그린다는 판단하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지만 적어도 잘 말하는 사람인 것은 분명해보였다.


그가 예술학교를 다니면서 품었던 질문은 두 가지. “무엇을 그릴 것인가, 어떻게 그릴 것인가” 그 질문은 평생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물을 그릴 때, 나무를 그릴 때마다 집요하게 파고들게 만들었다. 나의 첫 그림 <비오는 바다>에서 나는 포말에 집착했다. 어떻게 하면 부글부글 일다가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표현할 수 있을지 밤새 고민했다.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동양화를 배울 적에는 한 학기 내내 나뭇잎만 그렸다. 어떻게 하면 그 섬세한 잎맥과 부드러운 곡선을 표현할 수 있을지. 그림을 그리는 일은 자세히 보는 일이었고, 그렇게 그릴수록 나뭇잎이 의식 속에서 선명해졌다. 

호크니의 전시를 본 지 두 해가 지나 그의 책 <다시, 그림이다>를 다락방에서 만화책 훔쳐보듯이 맛나게 읽었다. 호크니 전시에서 사온 그 책을 펴든 건 얼마 전 무작정 미술학원을 등록하고 첫 그림을 그리고 나오면서다. 역시나 첫 그림도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나뭇잎을 캔버스 한가득 그려넣은 것이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연초록의 물감을 푼 것 같은 콘트리트 건물 옆 나무들이 계속 시선을 붙잡았다. 회색벽을 배경으로 서너 그루가 울창하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 마치 난민촌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미소를 보는 것처럼 강렬했다. 묵은 색을 털어내고 연하게 새 잎을 피워내는 소나무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다시 풍경들이, 사물들이, 내 눈에 닥쳐오기 시작했다. 


"나는 욕심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돈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돈은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흥미진진한 삶에 대해서는 욕심을 냅니다. 나는 삶이 항상 신나기를 바라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물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에서도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지요. 나는 쓰러지는 날까지 신나는 삶을 살 작정입니다.”


아이처럼 오랫동안 바라보기, 열심히 바라보기는 호크니의 삶과 예술에서 핵심적인 행위이자 가장 큰 기쁨이었다. 고흐의 이웃들은 고흐가 너무 뚫어지게 바라본다고 불평했는데, 고흐가 그렇게 사물을 바라봤기 때문에 그런 그림이 나올 수 있었고, 그렇게 열심히 바라본 다음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일뿐이었다. 

호크니는 고흐와 달리 유쾌함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는 아이폰이 나왔을 때, 그리고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 아침마다 방금 벗은 슬리퍼, 재털이의 담배, 책상 위의 스탠드, 탁자 위의 꽃 같은 일상의 풍경들을 그려 지인들에게 전송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엄마, 어때? 잘 그렸지?” 하는 마음이었을까? 내가 밤새 창작의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꼴딱 밤을 새운 다음 다음날 아침 <비오는 바다>를 아침밥상에서 가족들에게 보여줬을 때 반응하고는 분명 달랐으리라. 추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은 ‘그게 뭔데?’ 하는 표정으로 멀뚱히 바라보았다. 나의 창작욕은 그때 첫 좌절을 맛보았다.


나이가 들어 제일 좋은 것은 남들의 시선이나 품평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자기 일말고는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는 일이 별로 없을 뿐더러, 그들이 뭐라고 하든 그게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라지, 흥’ 그러면 그만인 일이다. ‘장차 그림을 열심히 그려서 화가가 될래요’(그러면 가난한 예술가가 된단다, 좀 더 유망한 직업을 선택하는 건 어떻겠니), ‘유명한 작가가 되어서 돈을 벌어야지’(과연 얼만큼 벌어야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와 같은 순환논리에 빠져 한 줄도 못쓰고, 하나의 그림도 완성하지 못하는 애처로운 상황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건 감격할 만한 축복이다.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아이처럼 그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였을까, 호크니가 ‘회화는 나이든 사람의 예술’이라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하라고? 글쎄, 그림 그리는 게 소일거리 정도는 아니어서 그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하겠다.


호모 픽토르(Homo Pictor)


알타미라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횃불을 밝히고 들소와 사슴을 그린 사람들이 취미로 벽 천장에다가 그렇게 그림을 그리진 않았을 거다. 누군가 그리는 사람을 위해 먹을 것도 해와야 했을 거고, 그리는 사람은 뚫어져라 들소를 관찰하고 온 마음과 정신을 바쳤을거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동감 있고 예술혼이 살아있는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테니. 누군가는 좀 더 잘 그리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좀 더 잘 쓰는 사람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리고자 하는 욕구, 쓰고자 하는 욕구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이 있는 나무가 가지를 뻗고 잎을 피우듯이 생명이 있는 인간이 자신의 눈에 닥치는 것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너무나 지당하고 명백한 욕구이다. 다만 그 욕구를 직업이나 금전과 환산하려고 할 때 우리의 욕구는 금세 움츠러들고 제지당하기 쉽다. 어렸을 적 이면지 한 묶음에다가 만화를 그리는 동생에게 ‘넌 왜 만날 만화를 그려?’라고 물었을 때 동생이 엄숙한 얼굴로 자신은 ‘인격수양을 위해 그린다’고 했을 때, 실로 나는 동생에게 감동했다. 동생은 그런 녀석이다. 그래서 아직도 동생을 존경한다. 


재밌는 건 그림을 그리면 우리는 그리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같은 풍경을 보지만 누구나 같은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다. 자신의 기억과 함께 보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건 더 잘 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보는 행위는 그리는 행위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완성이 된다. 마치 책을 읽는 것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쓰는’ 행위에 의해 완성되듯이, 보는 행위는 ‘그리는’ 행위에 의해 완성된다고 할까. 그리는 동안 우리는 질문하게 되고, ‘질문’이 있어야 사물을 훨씬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중국인들은 회화를 위해 필요한 세 가지로 ‘손’ ‘눈’ ‘마음’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좋은 그림을 보면서 창작자의 ‘마음’을 느끼고 감동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화가는 단순히 캔버스나 종이에 점점 더 많은 물감을 덧칠하는 것이 아니다. 참신한 생각과 관찰을 계속하면서 각각의 생각과 관찰을 통해 이전의 것들을 조정해 가는 것이다. 주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전에 쓴 것들을 수정하고 추가해나간다는 점에서 글쓰기의 과정과도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하는 호크니 말을 들으니 ‘이제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라고 말한 한 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나도 한 마디 덧붙이련다. ‘너의 해석을 들려줘. 보여줘. 표현하지 않은 해석은 알 수 없어. 알 수 없는 해석은 사라질 뿐이야. 마치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세계가 너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지 않게 해. 세계가 너를 통과하는 데에는 의미가 있어. 너의 목소리를 들려줘. 이 세상이 우리 모두의 목소리로 가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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