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돌보다 -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린 틸먼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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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슬픔은 그것이 오롯이 혼자만의 슬픔이 아니라는 점에서 청춘의 슬픔과 다르다. 나이 듦의 슬픔은 자신과 주변인의 슬픔이며, 나이 듦이 망각에 접어들면 그 슬픔의 지분을 주변인이 더 많이 차지하게 된다. 주변인은 그것을 어떻게든 다루어야 하고.


어머니 돌보기와 아이 돌보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이 책의 원제는 mothercare인데 작가는 childcare를 염두에 두고 이 단어를 만들었다 한다) 이 돌봄이 죽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치료도 재활도 죽기까지의 편안함을 지향하며, 이미 나빠진/노쇠한 상태이기 때문에 최고가 아닌 지금보다 나은 것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


이런 사실은 우울하다.


그럼에도 자매들과 돌봄노동자와 의료인과 협력하며, 때로는 그들과 반목하며 저자는 이 돌봄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양가감정적 애정 때문일까? 미국에는 단어화 되지 않은 개념인 효()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일까? 사실 저자도 이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에게 주어진 삶 자체로 보였다. 인간의 일생을 생로병사로 흔히 표현하는데 이것은 순차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삶 순간순간에 생로병사가 한꺼번에 일어나기도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 듦도 질병도 죽음도 타인의 몸으로 내 삶에 들어올 수 있고, 그때 나는 그 삶을 또한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겪어보지 않아서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 슬픔과 돌봄 노동은 절대로 가볍지 않음이 분명하다. 들리는 이야기로도 그렇고 이 책의 저자 역시 그 경험을 책으로 쓰기까지 십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도 매일 쓴 일기처럼 생생한 것은 여전히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이 진행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은 끝이지만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한 질문이며 상상이고 결코 회고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동행임을 그가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이야기를 보며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죽음은 존재하는 것이 된다. 유골을 보관하고 타일을 제작하고 책을 쓰고 하지 못한 질문을 생각하면서.


특별한 점은 이 이야기가 의도한 것이 아닌데도 여성들의 서사라는 것이다. 어머니를 돌보는 세 자매, 그리고 그들이 고용한 여성 돌봄 노동자가 등장한다(물론 의사들도 있지만 그들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매우 중요하더라도 이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존재는 아니다. 다른 이들이 배우라면 의사는 무대 위에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감이 큰 소품 같은 역할이다.). 전통적으로 돌봄이 여성에게 주어진 임무이긴 하지만 이 가정에는 달리 돌봄을 맡을 남성 구성원이 없고, 여성 환자는 대개 여성 간병인을 고용하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는 여성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여성이 실패하고, 여성이 이겨내며, 여성끼리 대립하고, 여성이 돌보고, 여성이 죽는다. 그 덕분에 나는 이 고통스러운 이야기 가운데 편안함을 느꼈다. 성별에 따른 억지 논란, 피곤한 고정관념을 제하고 그저 인간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데서 오는 편안함이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소설로는 이주혜의 <자두>가 있다. 여기에도 간병과 돌봄이 있지만 그 뿐만 아니라 가부장제도 있다. 이것은 매우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요소가 된다. 이 소설을 더 먼저 읽어서 <어머니를 돌보다>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며칠 전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노후와 노화로 주제가 자연스럽게 흘러간 적이 있다. 우리는 주변의 불행 사례들을 앞다투어 꺼내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 중에 그것을 거부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그 삶 또한 기꺼이 살아낼 것이다. 불행하게, 힘들게, 그러나 꿋꿋이,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이 책이 그저 남의 일이 아닌 것은 누구나 부모를 잃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든 이 복잡한 감정을 살게끔 예정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삶은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해야 하는 사람들,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변하면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을 좌절시킨다. 삶은 완전하고 완벽한 통제를 허락하지 않는다. 삶은 남쪽 북쪽 사방팔방으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 P33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그래서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거나 생각하더라도 더 이상 자기 생각을 믿을 수 없게 되면 삶에 논리를 부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다만 그 삶은 당신의 예전 삶일 수는 없다. - P38

부모와 형제자매 사이에서 형성된 경험적, 심리적 관계는 암묵적이고 무의식적인 법칙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역사가 개인의 태도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결과 돌봄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의 의욕을 꺾고 힘을 뺀다. 그동안 쌓인 감정들이 해석과 결정 속에 맴돈다. 지형은 험난하고, 이전 전쟁에서 남은 폭탄이 깊은 감정의 밀도에 의해 기폭된다. 가족 또는 친구들은 화자라는 대의를 위해 협력할 것이다. 아니면 분열하다 분해될 것이다. 많은 경우 그렇게 된다. - P81

짐가방은 어디로 갔을까? 없어졌어. 너희가 어떻게 한 거야? 어머니는 점점 더 흥분했다. 그래서 내가, 짐가장은 없어지지 않았어요, 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냈다. 때로는 울음을 터뜨렸다. 기억 상실을 겪는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행동이다. 나는 짐가방에 어머니의 과거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짐가방의 분실은 어머니의 과거의 분실을 상징한다고. 또는 그 짐가방에 어머니가 잃어버린 기억들이 들어 있다고. - P86

임종 과정은 기본적으로 괭이밥의 이파리가 밤에 닫히는 것과도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징후,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징후는 발가락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이다. 마치 뭔가를 움켜쥐듯이.

그 과정은 출산 과정과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 - P184

나는 어머니가 아프긴 해도 정신이 맑았을 때 물었다. 인생은 고달프고 살다 보면 끔찍한 일도 일어나잖아요. 그런데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어머니는 말했다. 삶에는 아름다운 것들도 있으니까.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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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새를 만났을 때처럼
이옥토 지음 / 아침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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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같은 글, 글 같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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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왈츠 - 세대를 초월한 두 친구, 문학의 숲에서 인생을 만나다
황광수.정여울 지음 / CRETA(크레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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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음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임을 알게 되면 언젠가 자신이 고아가 될 운명임을 깨닫고 육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정신의 양부모가 필요함을 벼락맞은 듯이 알게 된다. 이후 양부모를 찾아 타인을 만나고 만나는 여정이 인생의 큰 조각인데, 그 양부모는 더러는 친구고, 더러는 연인이고, 더러는 선생이며, 때로는 단 한 번의 물리적 접촉도 없고 시대도 공유하지 않는 문학 속의 누군가, 아예 실존하지도 않았던 영화 속 누군가이기도 하다. 그들과는 정신으로 맺어진 관계이므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말보다 영원을 소망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 이 책에 그 영원의 관계를 찾은 아주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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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임에도 정여울 작가의 책은 『끝까지 쓰는 용기』 이전에는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이전 저작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함에도 그 책에서 큰 기쁨과 울림을 받았고, 그래서 자연히 그녀가 애정을 숨기지 않는, 그녀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황광수 평론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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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몇 장 읽기도 전에 호기심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의 영면하심으로부터 오는 무거움 때문만은 아니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인정하며 쌓아온 신뢰와 행복의 시간을 독자로서 공유할 수 있는 기쁨과 슬픔을 좀 더 진지하게 느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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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를 지나 두 사람의 서신 교환으로 책은 시작한다. 한 글자도 더할 것도 버릴 것도 없는 것은 시인의 글이 아닌 평론가의 글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세계를 자신의 단어를 사용해 감동을 주는 것이 시인의 글이라면, 평론가의 글은 애정하는 것을 세상이 아는 단어로 설명한다. 오해도 과장도 피하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를 벼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서신은 그래서 한 편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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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지나면 인터뷰다. 문학 이야기지만 결국은 문학을 통해 풀어내는 사상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문학은 소금물처럼 읽으면 읽을수록 그 갈증이 더욱 심해지는 읽기의 괴로움을 동반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끝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문학을 왜 읽느냐는 것이다. 여기 두 평론가의 문학의 힘과 책임과 기대를 읽으며 나의 읽기에 대한 짐을 내려놓아 본다. 읽고 싶다는 욕망이 민주주의의 이상과도 깊게 관련된다는 말씀이 얼마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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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것은 황광수 선생의 유고 에세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투병과 삶에 대한 글을 읽다가 낯익은 이름에 놀랐다. 바로 황현산 선생에 대한 글이다. 그분은 내가 배운 적도, 직접 뵌 적도 없으면서 내 멋대로 선생님이라고 혼자 부르는 분인데, 물론 그 근거는 그분이 쓰신 글이다. 어떤 이의 독자였다가 다른 이의 독자가 되어 그 둘을 같은 자리에서 읽는 황홀함, 그러나 그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상실감, 그럼에도 여전히 여기에 아름다운 글이 남아서 언제든 내가 펼쳐볼 수 있다는 충만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순간 정여울 작가가 엮은 애도 편지인 이 책이 독자인 나에게도 역시 애도 편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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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곳곳, 그리고 말미에 실린 이승원 작가의 유럽 여행기에서 세 사람의 여행을 읽으며 지금 프랑스를 여행하고 있는 정여울 작가의 인스타그램이 생각났다.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기차를 타고 아름답고 작은 것들을 볼 때마다, 여전히 압도적인 무언가를 만날 때마다 얼마나 선생님이 그립고 그 마음을 털어놓고 싶을까. 그럼에도 이별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 한 그녀이기에, 그 마음까지도 모두 다음 책에 여전히 아름답게 녹아들기를 소망한다. 길모퉁이에 있는, 아름답고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여전히 압도되고 싶은 보통의 독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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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 -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 딴딴 시리즈 1
이미화 지음 / 인디고(글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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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누리호가 발사되던 날, 그 발사 순간을 수어통역 하는 것을 보았다. 통역사의 풍부한 표정과 알지 못해도 짐작해봄직한 수어가 담긴 영상에 재미있다는 반응이 잔뜩 달린 게시물이었다. 재미있다는 반응은 아마도 통역사의 표정과 커다란 손동작 때문일텐데, 타인의 언어를 보고 ‘ㅋ’을 여러 번 찍어낸다는 점에서 그 게시물이 불편했다. 나의 음성 한국어를 먼 타국에서 영상으로 돌려보고 그 특징을 들먹이며 웃고있대도 내가 같이 웃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누리호 발사 수어 통역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그 고요한 굉음을. 그걸 보고 누리호를 경험하게 된 사람들과 웃음으로 소비하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을. 그 둘 사이에 견고하게 세워진 장벽과, 그 장벽을 또 다른 누군가가 가만가만 허물어가는 것을.

그렇다고 이 책이 비장애인을 ‘계몽’하기 위한 수어 소개서는 아니다. 여타의 외국어를 배울 때처럼 세상을 만나는 방식 하나를 더해가면서 청인인 저자는 수어로 가능한 세계를 하나 더 구축한다. 자신을 다시 보고, 이해하고, 화해하고, 타자를 받아들인다. 수어는 이 책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저자의 새로운 친구다. 그렇게 지어진 섬세한 세계는 영화로, 책으로, 가족으로, 산책으로, 채식으로 은은하게 스며든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역시 내가 수어를 보고 웃을 수 있는 것은 수어로 전해진 농담을 알아들었을 때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장벽을 허물어 세계를 넓히느냐 마느냐는 물론 나에게 달려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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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 - ‘모두’의 페미니즘에서 누락된 목소리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미키 켄들 지음, 이민경 옮김 / 서해문집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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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해방되어야 하는 존재에서 투쟁하는 존재를 지나 이제는 각자의 투쟁을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제목이다. 처음 페미니즘을 더듬더듬 배울 때 페미니즘의 근원을, 그로부터 파생된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것은 구십구퍼센트 백인 여성의 이름으로 쓰여있었다. 새내기 페미니스트에게 백인/비백인의 나눔은 체감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일단 그조차도 귀한 경전같아서 남김없이 흡수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태초에 말씀이 있게 된다, 백인 여성의 말씀이.
서구 백인 여성의 페미니즘이 아시아 비백인인 나에게 저항없이 흡수된 건 내가 한국에서 주류 피부색인 배경도 유효할 것이다. 이십대라는 나이도, 학생이라는 지위도, 편안한 거주지도 딱히 나를 주변인으로 정체화해 나만의 페미니즘을 고민할 지점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나의 투쟁’(히틀러 아님 주의)을 시작한 것은 ‘주류 페미니즘’으로부터 이성애 결혼(가부장제의 부역자), 임신과 출산(사회적 무능), 양육(무지한 아줌마)에 대한 공격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비혼도 딩크도 학자도 워킹맘도 아닌 나는 그렇게 주변인이 되었다. 이것이 내가 미국 국적의 흑인도 아니고 인종문제에 해박하지 않아도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는 문장 아래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다. 백인 여성의 페미니즘이 나의 페미니즘을 전부 설명할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후드의 소녀가 베스트셀러 페미니스트 작가가 되었다는 점에서 『힐빌리의 노래』가 생각이 났다. 힐빌리의 노래는 백인 남성의 이야기이므로 성공 서사를 제외하면 완전히 반대지점에 있어 비교하기 적합하다. 가장 큰 차이는 힐빌리는 (미국인)백인 남성이라는 이점을 업은 성공이었고 미키 켄들은 흑인 여성임에도 여기까지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켄들의 후드는 과거가 아니고 그녀의 삶에서 끝난 챕터가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후드 정체성으로 살고 있고 거기서 오는 페미니즘을 한다. 그 현장성은 너무 당연해서 인지하지 못하는 주제를 건드린다. 식량, 주거, 기본적인 교육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뜬구름 잡는 이념이나 사상은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이다.(여담인데 두 저자 모두 할머니의 양육으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얻었다는 점이 특이. 노년 여성이 이렇게 소중합니다)
그럼에도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면 이 책의 거의 모든 문장에 ‘미국의’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시종일관 유색인종이라는 표현을 쓰는데(나는 비백인이라는 말을 선호함. 본문 내 비백인은 1번 나오고 유색인종이 기본값) 나 역시 유색인종이지만 미국이라는 배경 바깥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정의가 대부분이고 그렇다고 나를 백인으로 생각할 수는 더더욱 없어서 나라는 아시안 여성은 사실상 텍스트에서 지워지게 된다. 미국의 유색인종이라고 마음으로 덧붙여 읽는다 해도 어쨌든 느껴지는 부분. 이럴 때 이러니저러니 해도 동아시아는 제3세계인 거 참 와닿는다.

*책의 제본상태 문제
책 읽을 때 꾹꾹 눌러 180도로 펴는 거 싫어하고 100도 이하 각도로 펴서 양 손으로 잡는 편인데 이 책 중반부 즈음 왔을 때 책등 세로로 갈라짐. 분리된 건 아니고 책등에 세로줄 굵게 2개, 잔주름 많이 생김. 괴로움.
*’그녀’의 문제
도대체 왜 요새 그녀라고 쓰는 거 기피하는지 모를 일. 여자를 여자라고 부르지도 못해요? 그러면서 여동생, 소녀 이런 말은 잘만 씀.
*노오력
책 중에 ‘노오력’으로 번역된 부분이 있던데 번역서에 당대 유행어 등장하는 거 별로라고 생각함. 언젠가 낡아버릴 말 대신 고전으로 읽혀도 괜찮을 단어를 골랐으면. 말하자면 우리집 초등학생 어린이가 대학에 갔을 때 내가 이 책을 물려줘도 노오력에 대한 부연설명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

가부장제의 ‘착한소녀‘라는 주물 틀에 들어맞는 소녀, 성가신 스스로의 흥미도 드러내지 않고 목표와 관심사도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기꺼이 지도를 받을 의사를 보이는 소녀는 교사, 고용주, 또한 삶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올 힘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자원을 얻게 된다. 반대로 더럽고, 시끄럽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되고자신의 출신을 밝히는 소녀는, ‘착한 소녀와 유리되면 될수록 같은 자원의 수혜를 입지 못한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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