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 -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 딴딴 시리즈 1
이미화 지음 / 인디고(글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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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누리호가 발사되던 날, 그 발사 순간을 수어통역 하는 것을 보았다. 통역사의 풍부한 표정과 알지 못해도 짐작해봄직한 수어가 담긴 영상에 재미있다는 반응이 잔뜩 달린 게시물이었다. 재미있다는 반응은 아마도 통역사의 표정과 커다란 손동작 때문일텐데, 타인의 언어를 보고 ‘ㅋ’을 여러 번 찍어낸다는 점에서 그 게시물이 불편했다. 나의 음성 한국어를 먼 타국에서 영상으로 돌려보고 그 특징을 들먹이며 웃고있대도 내가 같이 웃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누리호 발사 수어 통역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그 고요한 굉음을. 그걸 보고 누리호를 경험하게 된 사람들과 웃음으로 소비하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을. 그 둘 사이에 견고하게 세워진 장벽과, 그 장벽을 또 다른 누군가가 가만가만 허물어가는 것을.

그렇다고 이 책이 비장애인을 ‘계몽’하기 위한 수어 소개서는 아니다. 여타의 외국어를 배울 때처럼 세상을 만나는 방식 하나를 더해가면서 청인인 저자는 수어로 가능한 세계를 하나 더 구축한다. 자신을 다시 보고, 이해하고, 화해하고, 타자를 받아들인다. 수어는 이 책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저자의 새로운 친구다. 그렇게 지어진 섬세한 세계는 영화로, 책으로, 가족으로, 산책으로, 채식으로 은은하게 스며든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역시 내가 수어를 보고 웃을 수 있는 것은 수어로 전해진 농담을 알아들었을 때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장벽을 허물어 세계를 넓히느냐 마느냐는 물론 나에게 달려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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