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에 필름 카메라에 취미가 있었다. 슬슬 디카가 유행하던 때였고 디카 좀 만지다가 렌즈 비싼 dslr 앞에서 필카 쪽으로 노선을 틀었다. 우리집에도 아빠 젊은 시절에 집에 들어온 수동 필카가 장롱에 있었다. 우연히 가지고 논 정도여서 인화까진 못했지만 필름 카메라의 찰나성, 유일성에 푹 빠져서 한참을 좋아했다. 그러다 스마트폰의 출현과 함께 그 취미는 사장되었고...사진은 수십 장 찍고 다시 안 찾아보는 것, 수십 장 중 하나 고르기도 귀찮은 것, 일 년에 한두 번 날잡고 싹 정리하는 것, 그런데 자꾸 찍는 것이 되었다. 얼굴 윤곽을 예쁘게 만들어주는 어플은 안 쓰더라도 반짝이를 뿌려주거나 웃긴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기능은 아이가 어릴 때 잘 가지고 놀았다. 사진은 소중한 것에서 그냥 여기 있는 것이 되었다.그런데 이제는 평범한 ai를 통해서도 사진은 여기를 벗어나 내가 보지 않은 것을 보여주고 내가 생각하지 않은 것을 가리키기에 이르렀다. 과거를 기록하던 것으로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 또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을 그려버리는 그 "사진"에서 꺼림칙함을 느낀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로이터통신 사진기자가 쓴 ai시대의 사진이란 제목의 책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스포)그래서 결론을 말하자면 ai가 생성한 사진(과 유사한 이미지)와 사진이 다른 것은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영역, 작가의 스토리텔링이라는 점이다. 결론만 보면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회화의 시대에 사진이 출현했을 때 그림이 사라질 거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그림의 영역을, 사진은 사진의 영역을 구축했다는 점이 사진이 사라지지 않을 거란 확신을 주었다. 기자라는 냉철한 이미지의 직업인이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었다. 사진을 찍는 즐거움, 그 인간다움에 대한 부분에서는 ai로 인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도 연결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사진을 찍는 즐거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태어날 때부터 이 세상에 스마트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집 고등학생 아이가 수학여행에 가져간 카메라는 내가 오래 전에 산 미러리스 카메라였다. 내가 부모님 장롱에서 필름카메라를 꺼냈던 것처럼 평소 잘 열지 않는 서랍에서 오랜만에 꺼냈다. 그럼에도 충전은 잘 되었고 수학여행에서 웃는 얼굴을 잔뜩 담아서 집에 돌아왔다. 사진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