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Digital ?
개론 수업으로 음악, 미술, 연극을 배웠던 일은 지나고 생각해봐도 참 잘한 일이었다. 이번 학기에는 최종판 격으로 <대중예술의 이해>를 듣게 되었다. 절친한 친구의 권유도 한몫했다. "꼭 들어라. 안 들으면 후회한다!" 수업과 개봉영화는 대개 남들의 입소문대로 따라갈 필요가 믿는 편이다. 9월초 수업시간, 교수님은 짤막하게 한마디 질문을 던지셨다.
"디지틀, 디지털, 디지탈 그러는데, ...... Digital이 우리 말로 뭡니까? 그런 거 생각 안 해봤어요?"
명쾌하게 한 단어로 포착이 되어지지 않는, 되어질 수 없는 말. 9월이나 지금이나.
2. 쏠트예찬
고백할 게 있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기계치다. (단 기계체조는 좀 한다.) 과학이 싫어서 문과를 온 케이스는 그 시절에 나밖에 없었다. (신기한 넘!) 특히 컴퓨터는 내게 소통불능의 매체로 단연 으뜸이다. 엑셀 하나를 돌려보면서도 좌절한다. 이렇게 많은 기능이! 사람이 지레 겁을 먹는 것만큼 실력에 악영향을 끼치는 건 없다. 한국축구가 국제경기에 약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의미가 통한다.
그러던 나와 컴과의 거리가 본격적으로 좁혀진 것은 그나마 메일의 사용이었다. 홍대 전전컴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한메일 괜찮다고 써보라고 추천했던 말이 계기였다. 그때가 98년 여름인가 그랬다. 걸작 아이디를 만들어보겠다고 영한사전, 불어사전 한 이틀 뒤적이던 그때 생각도 난다.
중요한 사실은 새문안대학부에서도 그해 늦여름 정도부터 메일클럽이 생겨나기 시작한 무렵이었다는 것이다. 창호 형과 민석이 형(모두 92학번이다!) 중심으로 30-40명이 평일날 집단메일을 주고 받으며 원시적 형태의 영적교류를 시작한 시기였다. 나의 디지틀 일상은 어쩌면 교회사람들과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후에 대학부가 SALT를 순산하였으니... 그 기쁨은 상당히 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SALT라고 답을 적기 위하여 여러 딴 얘기로 돌아왔다. 글 읽는 분들이 피곤하시겠다.
SALT는 내게 QT에 다름 아니다. 그만큼 이 공간을 통하여 나는 많은 배움과 도전을 입었던 것이 사실이다. 여러 선후배와 동기들의 글이 너무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늘 다가오고 있으며, 한사람 한사람의 개성까지 묻어나 그 은혜는 여러 물감을 칠해놓은 빠레트 같기도 하다. 그 글을 쓴 분위기가 기쁨이건, 성냄이건, 슬픔이건, 즐거움이건 말이다.
솔직히 이야기하자. 컨텐츠가 부실한 것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게시판 딸랑 하나 놓고도 모두가 사랑으로 이 공간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회와 공동체를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 글을 매일(자주) 올리는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온전히 바라보고 철저히 읽음으로써 함께 하는 이름없는 쏠트 갤러리 여러분께도 감사를 전한다. 마우스 왼쪽버튼 몇번의 조작으로 젊은 날의 영적 초상을 발견하는 일, 그것은 일상의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이 공간은 10월의 대학부 테마인 전도와도 무관치 않은 곳이 아닐까. 사이버 전도!! SALT의 어떤 글을 읽은 형제가, 자매가 우리 공동체에 거하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사람 낚는 어부의 형상이다. 지금 당장 쏠트를 방문하여 보라. 넷츠고쩜컴슬래시캡새우. 최소한 새우라도 낚을 수 있을 것이다.
3. "너가 문관이 딸이니? 진짜아?"
나의 꿈 중의 하나는 주일학교 교사이다. 앞으로의 교회학교 선생님의 직분은 그 영역이 상당히 세분화될 거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전문성? 결국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선생님의 상이 정립될 것이다. 나의 영역이 무엇이 될지는 미지수.
20년 후를 희미하게 내다본다. 새문안교회 주일학교를 지키고 있든지 어느 교회에서 그 일을 하고 있든지 나중에 그러한 일이 생기게 될 것을 나는 지금부터 진심으로 바라고 있고 그때 가서 심히 놀라며 기뻐하고 싶다. 내가 맡은 반아이와 함께 부모님 얘기를 나누다가. 뭐 이런 식이다.
"니가 문관이 딸이니? 진짜? 아, 옛날에 너희 아빠가 친교부 삼총사로 활약했었는데 그때 대단했지......어, 그리고...... 그래그래, 오늘 결석한 우리반 이삭(가명, 김성빈 둘째 아들)이 아버지가 그 당시 대학부 회장이었거든. 그 친구는 집회 끝날 때쯤 심각한 표정으로 묵묵히 걸어나와서 매주 그랬단다."
"폐회하겠습니다."
매주 보는 폐회대형도 아늑하고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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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에 제기동 본가에 갔다가 샬롬지 원고 쓰고 출력해둔 종이가 이면지에 껴있어 신기하게 읽어보다가 집으로 가져와버렸다. 거진 10년 전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사이 얼마나 바뀐 것일까? 당시 편집장은 황혜원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