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우리 나무
박상진 지음 / 눌와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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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장을 펼쳐 지은이의 사진을 보고 '아!...'하는 나즈막한 탄성이 절로 나왔었다. 이렇게 예쁜 책을 만들어낸 사람이 또 이렇게 멋스럽게 나이든 분이라니 하고.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가끔 문학작품 속에서 작가가 읊어대는 나무들, 풀들의 이름 중 실체를 떠올려 낼 수 있는 것은 몇 되지 않았다. 혹시 이 사람들도 사전이나 도감에 있는 나무들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주워삼키는 건 아닐까 하는 터무니 없는 의심마저 했었다. 나의 곁에, 내가 사는 이 땅에 이렇게 많은 아름답고 정겨운 나무들이 같이 숨쉬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무관심한 내가 미처 못 알아차렸을 뿐이라는 반성을 이제와서 한다.

책에 실린 섬세하고 자상한 사진들과, 다정한 시골학교 교장선생님이 들려주는 듯한 솜씨 좋은 나무 이야기들, 매실주 담그기나 나무껍질의 효능 등 사이사이 숨어 있는 요긴한 정보들, 저절로 느껴지는 우리 나무에 대한 작가의 짙은 애정.책 읽기를 마친 지금, 나무껍질 하나 나무잎 결 하나 예사롭게 보이질 않는다. 어디 멀리 숨어 있는 희귀한 나무를 이야기한 책이 아니어서, 주변에서 바로 실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이 책이 가진 큰 미덕 중 하나다.

이 책이 오래도록 가치를 빛낼 수 있도록, 궁궐의 나무들이 오래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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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록 범우 한국 문예 신서 13
이태준 지음 / 범우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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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새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또한 명예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펼쳐들고 첫번째 글을 읽고 나서, 책을 덮었다. “아껴 읽어야지. 너무 아까워.” 곁의 동행이 피식 웃었다. 어쩌면 내가 괜히 책이 읽기 싫어져서 하는 흰소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알라딘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책이다. 책 소개말이 마음을 끌었고, 단아한 책표지도 그랬다. 그래서 사 두기는 했어도 한참을 책꽂이에 꽂아 둔 채 였다. 며칠 전 퇴근 길 무심히 뽑아들기 전까지.

첫번째 글을 읽고 급하게 다시 저자의 약력을 찾았다. 1904년 생이 분명하다. 놀랍다. 그의 글은 아무런 시간적 편견 없이 신선했다. 그 시대 글이라면 의례 나타나는 표현방식, 그 시대 나름의 멋내기, 그 시대적 문체… 그런 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글이었다. 오늘을 사는 내게도 껄끄러움 없이 마셔지는 지원한 음료수 같다. 전반의 글들에 비하면 후반이 글들은 조금더 그시대의 글 답고 조금은 덜 감상적인 소재들이다. 옛 것에 대한 애착, 본인이 아껴하는 것들에 대한 예찬을 담백하게 써내렸다. ‘목수들’이란 제목의 글에 묘사된 목수들의 대화를 일고 있노라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묻고 마음이 뜨듯해 진다. 그렇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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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보험론:이론과 실제 - 개정판
김정수 지음 / 박영사 / 198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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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보험에 대한 이론서적이 충분치 않은 국내에서 김정수의 '해상보험론'은 바이블로 통한다. 해상보험의 발생 및 발전 경로, 약관, 실무, 재보험에 이르기까지 해상보험에 관련된 대부분의 분야를 언급하고 있다. 물론 일부는 간단한 언급에 그친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웬 만한 건 다 있다'는 표현이 걸맞는다.

이 책의 훌륭한 점은 소지하고 계신 분이라면 대부분 아실 것으로 생각하고, 몇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해 보자. 우선, 일본서적을 참고로한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불필요한 한자나 일본식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인덱스가 상세하지 않아 빠른 검색에 약간의 어려움을 느낀다. 셋째, 최근의 보험시장의 변화가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1989년 개정판 이후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처음으로 해상보험 실무에 뛰어든 초년병들에게는 약간의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현재 국내 해상보험은 재보험시장의 경색, 보험요율 자유화 등 많은 격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환경변화를 온전히 담아냄으로써 이 책이 계속해서 '바이블'로서의 충실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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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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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울어 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이가 주는 부담감, 직장인 생활패턴 상 불가피하게 토막나는 책읽기, 습기를 잃어가는 감성 등이 이유가 되어 울만한 책을 읽어도 좀처럼 울어지지 않았었다. 이른 아침 사무실에 앉아 책을 펴놓고 눈물 콧물 훌쩍거리는 나를 보며 사무실 사람들이 웃는다. “와! 정말 책 보고 우시는 거에요?” 민망해서 울먹이며 웃는다. “그러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작가의 표현력이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표현 방식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타고난 글쟁이의 솜씨다. 물론 여기에는 좋은 번역도 한 역할 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가장 많이 보이는 방식은 ‘미루어 짐작하게 하기’이다.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작은 나무’에 대한 배려나 애정은 노골적으로 묘사되는 법 없이 늘 간접적 묘사를 통해 미루어 짐작되고는 한다. 그래서 읽는 사람은 그러한 짐작에 슬그머니 웃음 짓게 되고, 마음이 따듯해 지는 기회를 갖는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얼마나 달라 질 수 있는가에 대한 많은 사례를 제공한다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다. 특히 할아버지를 통해 묘사되고 있는 ‘인디언식의 세상 이해하기’는 때로는 우리의 가치기준이 얼마나 허술하고 이치에 어긋나는지를 살짝 속삭여 준다. 물론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디언과 가장 추악한 서양인-인디언의 상대적 개념으로서-들을 대비시켜 선=인디언, 악=서양인 식의 구분을 짓는 데는 조금 억지가 있다 하더라도.

제목이 조금 평이하다 해서, 책표지나 편집이 애교스럽다고 해서, 소재나 문체가 가볍고 경쾌하다고 해서 가치가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아름다운 책이다. 구겨진 마음에 다림질이 필요하다는 사람을 만나면 이 책을 권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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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ect me from what I want!

뉴욕의 어느 전광판위를 흐르던 문구.

일탈을 꿈꾸는 자의 비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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