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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록 ㅣ 범우 한국 문예 신서 13
이태준 지음 / 범우사 / 1999년 12월
평점 :
품절
‘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새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또한 명예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펼쳐들고 첫번째 글을 읽고 나서, 책을 덮었다. “아껴 읽어야지. 너무 아까워.” 곁의 동행이 피식 웃었다. 어쩌면 내가 괜히 책이 읽기 싫어져서 하는 흰소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알라딘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책이다. 책 소개말이 마음을 끌었고, 단아한 책표지도 그랬다. 그래서 사 두기는 했어도 한참을 책꽂이에 꽂아 둔 채 였다. 며칠 전 퇴근 길 무심히 뽑아들기 전까지.
첫번째 글을 읽고 급하게 다시 저자의 약력을 찾았다. 1904년 생이 분명하다. 놀랍다. 그의 글은 아무런 시간적 편견 없이 신선했다. 그 시대 글이라면 의례 나타나는 표현방식, 그 시대 나름의 멋내기, 그 시대적 문체… 그런 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글이었다. 오늘을 사는 내게도 껄끄러움 없이 마셔지는 지원한 음료수 같다. 전반의 글들에 비하면 후반이 글들은 조금더 그시대의 글 답고 조금은 덜 감상적인 소재들이다. 옛 것에 대한 애착, 본인이 아껴하는 것들에 대한 예찬을 담백하게 써내렸다. ‘목수들’이란 제목의 글에 묘사된 목수들의 대화를 일고 있노라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묻고 마음이 뜨듯해 진다. 그렇지,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