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책의 세계
2006.11.03 / 송주연 기자 

‘책을 읽는다.’ ‘책’이라는 명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동사이자 서술어인 ‘읽다’. 이 완벽한 조합이 곧 거센 도전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읽는 것도, 보는 것도 아닌 ‘듣는’ 트렌드가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른바 ‘오디오북’. 말 그대로 시각이 아닌 청각에 의존하는 매체인 오디오를 통해 책을 들으면서 감상한다는 의미다. 올 초 교보문고가 오디오북 서비스를 시작한 데 이어 최근엔 단순히 책을 읽어주는 대신, 시나리오처럼 각색해 보다 재미있게 책을 들을 수 있게 한 ‘오디오 드라마’라는 개념도 새롭게 등장했다. ‘책을 듣는다’는 건 우리에게 과연 어떤 것일까.

사실, 오디오북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한 건, 장애인 복지에 관한 측면에서였다. 책을 읽기 힘든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을 그대로 녹음해 테이프나 CD에 담아 들려주던 것이 대중들 사이로 파고든 것이다. 국내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넘어 보다 확장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책을 듣는 서비스가 시작된 건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이다. 당시 양파북 등 몇몇 업체들이 오디오북 시장에 뛰어들긴 했지만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서구에서 ‘마이 카 시대'와 함께 CD나 테이프에 책을 담아 운전 중 책을 듣는 일이 보편화된 것에 비해, 국내에서 오디오북은 아주 소수의 성인들과, 아동용 동화 정도에 그쳐야 했다. 그러던 것이 2~3년 전부터 MP3가 보편화되고, PDP, 아이 팟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개인 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서서히 관심권에 들기 시작한 것이다. 올 봄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가 인터넷 사이트 ‘제노마드(www.genomad.co.kr)’를 열어 오디오북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오디오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현재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업체는 7개 정도. 이들 업체들은 직접 사이트를 만들어 다운로드 혹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거나 교보문고를 비롯한 유명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파일을 제공하고 있다.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오디오북은 더 이상 CD나 테이프가 아니라 파일이라는 점이다. 음악이나 영화를 자신의 MP3에 다운받아 듣고, 보는 데 익숙해진 세대에게 파일 형태의 책은 종이보다 친근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CD나 테이프가 주요 매체였던 시절에 실패했던 오디오북이 지금 뜨고 있는 건, 전 세계에서 파일 형태의 콘텐츠를 이용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기로 유명한 우리의 네티즌 세대의 힘이기도 하다. 즉, 영화와 음악, 방송의 유통 경로가 디지털화됐듯, 이제 책도 파일 형태로, 그것도 보다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소리의 형태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최근 등장한 서비스가 ‘오디오 드라마’다. 책을 단순히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로 각색해 음악과 효과음을 가미하고, 여러 명의 성우가 연기를 하면서 책의 내용을 전달한다. ‘오디언닷컴(www.audien.com)’에서 지난 9월 처음 시작된 이 서비스는 책을 소비하는 방식의 또 하나의 진화나 다름없다. 이제 막 첫 걸음마를 뗀 서비스지만, 이 사이트에 접속해 책을 들어본 독자들은 놀랍고도 신선하고, 책에 대한 친근감을 높여줬다는 반응이 많다. 출판업계에서도 이 같은 책의 형태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오디오 드라마를 기획, 총괄하고 있는 오디언닷컴 이승호 팀장은 “50여 개의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맺고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계속 제휴 출판사를 늘려가고 있는데 대부분 적극적인 반응이다. 출판업계에서는 절판된 책을 파일 형태로 되팔 수 있다는 점에서도 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독자 입장에서도 책과 친근해지는 것 외에도, 한 번 읽고 쌓아두게 될 책을 500~8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다운로드받아 듣게 돼 훨씬 경제적이다. 물론, 책으로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도서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오디오 드라마 형태로 온라인상에서 다운로드해서 들을 수 있는 책은 현재 160여 권 정도. 소설이나 에세이, 실용서 등에 한정돼 있긴 하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실용서나 교양서는 거의 대부분 오디오북이나 오디오 드라마로 만날 수 있다. 올 한해 우화 형식의 자기계발서로 베스트셀러가 된 <배려>(한상목, 위즈덤하우스), 경제분야의 베스트셀러 <한국의 젊은 부자들>(박용석, 토네이도) 등은 오디오북으로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오디오 드라마는 아무래도 소설과 에세이가 강세다. 드라마의 인기를 힘에 업은 <주몽>(홍석주 외, 황금나침반), <포도밭 그 사나이>(김랑, 청어람), 식물인간 상태의 아내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담은 에세이 <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최종길, 밝은 세상), 한 소녀의 희망 이야기 <지선아 사랑해>(이지선, 이레), 시골병원의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박경철, 리더스북) 등이 오디오 드라마로 사랑받는 작품들이다. 오디언닷컴 측은 “현재 40여 명의 제작진을 구성하고 한 달에 30여 권의 각색과 녹음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책의 성격에 맞게 오디오 파일로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아가 "시각장애인의 문화혜택이 넓어져, 일반인과 문화격차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책을 듣는다.' 영화, 음반, 방송 등 다른 문화 콘텐츠의 디지털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가운데 책도 디지털 문화 속으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지난 수천 년과 인류 곁에서 함께 해온 책은 이제 스스로를 진화시키고 심지어 근본적인 존재 형태마저 변형시켜가고 있다. 과연 책의 진화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책을 듣는 일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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