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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자유와 스크린쿼터제
강철근 지음 / 사회교육연구회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지금 우리나라는 한미FTA 협상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국민들 대다수는 FTA체결에 대해서는 어쩔수 없는 부분이라고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적 합의없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그러한 목소리에 동참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영화인들도 눈에 뛴다. 영화인들은 무엇보다 스쿼린쿼터제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국산영화 의무상영일수가 축소된데다가 이번 한미FTA로 실질적으로 스크린쿼터제라는 제도 자체는 유명무실해지는게 아닌가라는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크게보면 영화산업도 무조건 보호하기 보다는 문호를 개방하여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입장과 영화는 거래의 대상인 상품과는 차원이 다른 그 나라의 문화이므로 지키고 나가야 할 최소한의 부분은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람들마다 자신의 주관에 따라 입장의 차이를 보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는 예술의 한 장르라는 데 대해서는 모두 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의 한 장르이자 문화상품이기도 한 영화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여야 할지는 명백하다. 문화예술과 산업의 관점에서 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이러한 영화가 가지는 이중적인 특성에 주목하여 법학적인 관점에서 예술의 자유 차원에서 스크린쿼터제를 논하고 있다.
지은이는 대공황이 많은 국가를 국가주의적으로 우경화하게 하였으며, 음향은 각국이 언어장벽을 가지게 하여 각국은 독자적으로 활로를 찾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스크린쿼터제가 생성되었다는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우리나라의 영화진흥정책과 영화산업정책을 실례로 들어가며 스크린쿼터제를 하여야만 우리나라 영화가 잘 된다는 상관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금같은 멀티미디어관에서는 오히려 스크린쿼터에 의한 의무상영제는 일부 블록버스터만 배불리는 결과가 되고 있으며(이부분은 최근 영화 ‘괴물’에서 쇼이스트의 영화관 독점과 관련해 문제가 불거진 바가 있다), 역으로 예술영화나 미국이외의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도 산업적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제작과 상영에 대한 무제한의 자유권을 인정함은 영화의 사회적 책임의 문제와 동시에 또 다른 관점인 영화의 산업적 측면에서 비롯되는 다른 기본권과의 충돌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본서 113쪽 참조).”고 언급하며 “스크린쿼터에 의한 국산영화 의무 상영제는 국가가 영화 창작의 주체들을 보호하는 주체인 반면, 극장주와 일반 국민은 영화선책의 자유, 즉 예술의 자유를 제한하며 헌법상 기본권인 경제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제한한다면서, 예술의 자유는 예술창작의 작업은 물론, 예술 작품의 전시와 보급 등의 작용영역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예술가 뿐만 아니라 그 중개자도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법우너과 헌법재판소의 결정문들에 대한 지은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지은이는 근본적으로 영화도 산업이므로 산업적 측면에서 보아야 하며, 예술의 자유를 인정한다면 창작자에게만 그 자유를 폭넓게 인정할 것이 아니라 영활르 배급하는 업자에서부터 극장주까지 모두에게 그 자유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크린쿼터제에 의한 국산영화의무상영제는 경제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은이의 주장처럼 산업적 측면과 예술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스크린쿼터제를 살펴볼 수 있지만, 영화가 단순히 산업적 측면으로만 보아야 할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고, 예술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제한이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는 이는 어는 한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는 없는 문제고 국민적인 합의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하겠다.
지은이가 본서의 앞부분에서 밝히고 이듯이 “예술의 자유가 대지 위에서 뿌리내리고 모두가 누리는 진정한 자유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를 포함해서 어느 한 집단의 논리가 일방적으로 통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실로 상호 소통의 개방 논리와 문확구가의 이념에 입각한 모두의 실천이 뒤따라야만 할 것이다(본서 제23쪽 참조).‘라는 주장이 계속해서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