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장


1001 Albums You Must Hear Before You Die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장”

과연 우리는 죽기 전까지 몇 장의 음반을 듣게 될까? 닉 혼비의 소설 '하이 피델리티(High Fidelity)'를 영화로 각색한 <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의 주인공 롭 고든(존 쿠삭)은 광적인 '음반 중독자'로 등장한다. 마치 음악이랑 결혼이나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도 그와 비슷한 인물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음악에 죽고 사는 사람들! 그들은 왜 그렇게 음악에, 또 음반에 미쳐 사는 것일까.

음반 모으는 재미에 한번 빠져본 이들은 음반만 바라봐도 배가 부르다고 말한다. 거의 병적으로 음반 수집에 집착하는 이들 중엔 똑같은 음반을 두 번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가령 자신이 애착하는 음반이 국내반이거나 원판과 커버가 다를 경우, 똑같은 음반을 수입 앨범으로 또 구입한다. 비틀스 전집을 모으는 중인데, < Please Please Me >가 빠져 있다면 기어코 훗날 그 빈자리를 채워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정말 못 말리는 음반 애호가들이다.

가수 이은미는 “음반은 가장 훌륭한 음악선생님”이라 말한 적 있다. 다시 말해 이는 음반의 중요성을 역설한 말이다. 그만큼 음반은 소중하다. 그러나 디지털 음악 파일이 범람하는 요즘시대에 음반은 소외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제는 돈 주고 굳이 음반을 사지 않아도 최신 유행 음악을 얼마든지 공짜로 다운받아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반을 많이 들어야 될 감수성 풍부한 청소년들이 음반 구입을 꺼리기조차 한다. 알고 보면 사회적 손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음반 중독에 시달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음악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해줄 책 한 권이 금주에 출간됐다. 해외에서 원서로 먼저 소개됐던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장(1001 Albums You Must Hear Before You Die)'의 번역본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1001장의 음반이라니, 그 수만 봐도 흥분이 절로 된다.

어느 누군가가 책 천 권을 넘게 읽었거나, 천 편도 넘는 영화를 봤다면 그 열성에 우린 감탄사를 내뱉곤 한다. 음반도 마찬가지다. 책이나 영화 못지않게 '천 장'이란 음반 수는 만만찮은 수량이다. 집안에 가요든, 팝이든, 클래식이든 음반이 천 장 이상 장식장에 꽂혀있다면 그 사람은 음악을 단순히 즐기는 수준을 떠나, 음반 수집에 약간의 병적인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수천 장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음악 마니아의 기준이 꼭 거기에 국한될 필요는 없지만, 천 장이 넘는 수는 외형적으로 그 사람이 얼마나 음악에 중독돼 있는지 쉽게 말해주는 수치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왜 하필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이 천 장도 아니고, 만 장도 아니고 1001장인가? 그 해답은 간단하다. 이 책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1001 Movies You Must See Before You Die)'의 시리즈물인 까닭이다. 국내에서는 이미 1001편의 영화 책이 번역본으로 나와 나름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음반은 늘 영화에 비해 소외되곤 했다. 주변에서 극장엔 자주 찾지만, 음반은 구입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본다면, 현재 대중음악이 멸시받는 현상은 국내에선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때문에 이 1001장의 앨범 책이 그나마 번역본으로 나온 것만도 반갑기 그지없다.

누구는 나이 서른 넘도록 음반을 구입한다고 해서 가족들에게 미친 놈 취급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들도 한결같이 말한다. “mp3 공짜로 다운 받으면 되지 그까지꺼 뭐 하러 돈 주고 사냐?” 이 질문은 바꿔 말한다면 한 영화 애호가에게 “영화 공짜로 인터넷 다운받아서 보시면 되지 뭐 하러 돈 주고 극장에서 보시나요?”라고 묻는 멍청한 질문에 한결 다를 바 없다.

지금도 꾸준히 음반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재차 말하지만 음반은 소중하다. 30대 중반의 모 노총각 한 분은 지금도 음반을 구입할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왜 그 분이 그렇게 끊임없이 음반을 사는 지는 그 사람의 내면세계로 들어가 보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 모른다.

어쨌든 당신이 팝 음악을 좋아한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책 제목이 말하고 있지만, 사실 죽기 전에 이 책에 담긴 음반을 모두 다 들을 필요는 없다.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으니까. 그런데 당신이 음악에 늘 종속된 사람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회가 된다면 꼭 책을 보고, 앨범까지 소화하면 더 좋을 듯하다.

물론 이전에도 명반 책은 수없이 많이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1001장의 앨범들은 단순한 명반 리스트가 아니다.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을 위시해 해외 유수의 음악 매체가 선정한 명반뿐 아니라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었던 앨범까지 방대하게 실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로큰롤 50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1001장의 앨범을 줄줄이 다룬다.

시대별로 적정량의 앨범을 나눈 것도 눈에 띤다. 록의 황금기인 1970년대(279장) 앨범에 집중되지 않고, 80년대(210장)와 90년대(239장), 그리고 2000년대(99장)까지 거의 동등한 비율로 리스트가 짜여졌다. 흔히 비틀스의 모든 앨범은 다 명반이라고 말하지만, 이 책은 비틀스의 전 앨범을 리스트에 집어넣지는 않는다. 기존 명반 가이드와는 달리 좀 더 다양한 뮤지션들의 앨범을 포괄적으로 수록됐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니라 프랭크 시내트라의 < In The Wee Small Hours >(1955)를 시작으로 최근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 Get Behind Me Satan >(2005)까지 시대별로 되짚어본다. 그렇다보니 총 750팀의 1001장을 장장 960페이지에 걸쳐 다루기 때문에 방대한 앨범 자료집으로 충분한 가치를 띤다. 거기에 올 컬러의 좋은 재질을 사용해서 대학 전공 서적 그 이상의 메리트를 전해준다. 책 가격이 조금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평상시 쉽게 구할 수 없었던 아티스트들의 희귀 사진도 흥미롭게 담겼다. 음반이 나왔을 당시 뮤지션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한 134장의 화보는 참 인상적이며, 무려 91명의 필진이 참여해 각 필자들만의 독특한 필체를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참여 필진들의 이력을 보면 영미 음악 저널리스트가 가장 많고, 그 외에 잡지사 편집장, 대중문화 평론가, 자유기고가, 방송작가, 밴드 뮤지션, 영화감독, 대학 강사와 클럽 DJ 등 실로 다채롭다. 다양한 음악전문가들의 다양한 시각을 빌려온 리뷰들이라 그만큼의 가치를 지녔다.

뿐만 아니라 각 뮤지션들이 자기 음반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도 실어 앨범 리뷰에 무게를 실어준다. 빌리 조 암스트롱은 < Dookie >에 대해 "공연을 하고 파티를 즐기는 것이 평크다"라고 말했고, 닉 케이브는 < The Boatman's Call >에 관해 “육신은 사라지지만 가사는 남는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링킨 파크의 마이크 시노다는 < Hybrid Theory >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주류 밴드가 아니다. 주류가 우리에게 왔다”

이 책에 있는 음반이 집안에 다 구비돼 있다면, 굳이 이 책을 구입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언컨대, 여기에 있는 음반을 다 갖고 있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로큰롤, 재즈, 펑크, 일렉트로닉, 소울, 힙합, 월드뮤직까지 주류와 비주류 등 다양한 장르를 광범위하게 다루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라이선스로 발매되지 않은 앨범들도 꽤 많은 까닭에 수입상을 통해 구하지 않고서는 이 책에 담긴 1001장의 앨범을 다 듣기란 좀 무리가 따른다. 꼭 구입하기 힘들다면 책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음악 애호가인 당신이 오늘 당장 술자리가 생긴다면, 옆 사람과 한번쯤 이런 내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 죽기 전에 여기 있는 음반을 다 들을 수 있을까, 없을까?”

출판사: 마로니에 북스
책임편집: 로버트 다이머리
역자: 한경석 외 5인
가격: 3만 9천원

  2006/09 김獨 (quincyjon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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