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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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이후 처세술이나 경제에 관련된 책들이 서점가를 장악하기 시작하더니만, 이제는 베스트셀러에는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분야의 책이 되었다. 특히 우화 형식을 빌린 처세에 관한 서적들이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경제서적들은 날개?듯이 팔려 불황의 서점계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마케팅의 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책들은 대부분 단기적으로는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충족시켜 주었지만 , 장기적으로는 독자들에게 현안들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가지게 하지는 못하는, 일방적인 전달 위주의 글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지금 우리 경제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종태 기자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책은, 이종태 기자가 장하준 교수와 정승일 교수의 좌담을 정리하는 식으로 엮어 우리 경제가 가진 딜레마를 전문적인 용어 대신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하고 이해하도록 만들어 두고 있다.


“쾌도난마”란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곤혹스러웠는데, 이는 중국의 고사성어로 직독을 하면 어지럽게 헝클어진 삼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원래 이 말은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북제의 창시자인 고환이 자신의 아들들의 재주를 시험해 보고 싶어 한 자리에 불러 뒤엉킨 삼실 한 뭉치씩을 나눠주고 추려내 보도록 했는데, 다른 아들들은 모두 한 올 한 올 뽑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양이라는 아들은 칼 한 자루를 들고 와서는 헝클어진 삼실을 싹둑 잘라버리고는 어지러운 것은 베어버려야 한다고 했다는데, 이러한 일화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당초에는 통치자가 백성들을 참혹하게 다스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요즘은 서로 뒤엉킨 복잡한 일을 단번에 명쾌하게 해결하는 것을 비유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세계경제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없을 정도로 예측불허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 경제의 조류는 지금 강대국들에 의해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타고 있다. 론 스타 사건과 한-칠레 FTA에 이은 한-미FTA협상 등으로 온나라가 시끄러운 지금. 우리에게 신자유주의라는 말도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다.


두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신봉하는 자유시장 경제의 실패를 언급하면서 금융자본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주주자본이 기업들로 하여금 단기 성장에만 집착하도록 함으로써, 저투자, 저성장, 저소비 등의 악순환을 유발시키고, 노동시장은 더욱 경직화되고 노조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길거리로 나가게 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을 위한 자본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금융자본이 기업 경영의 주도권을 장악한 시스템인 것입니다. 그리고 금융자본의 입장에서는 경제 성장이 그리 달가운 현상이 아닙니다. 경기를 안정시켜 물가상승률을 낮춰야(투자한 돈에 대한) 자본이득을 보장받을 수있기때문이죠. 금융자본은 또 장기적 투자엔 관심이 업습니다. 이 회사에 갔다가 안 되면 다른 회사로 이 나라 갔다가 신통치 않으면 다른 나라로 이동하면 되니까 장기 투자에 대한 안목이 없을 수 밖에요(본서 17쪽 참조).”,


“1993-1997년 사이엔 분명히 무분별한 과잉 투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분명한 알아둬야 할 것은 이 같은 무분별한 투자를 조장하고 도와줬던 것이 바로 무분별한 외국 금융 자본이었다는 점입니다. 결국 과잉 투자 역시 정부 주도형 경장 성장 체제의 문제가 아닌,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본서 26 내지 27쪽 참조).”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강자만이 살아남는 체제이자 저성장 체제이다. 오늘날 우리 경제의 양극화는 거기서 배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주주 자본주의는 가진 자를 위한 것이다. 주주와 경영자들이 야합해 노동자들을 등치는 체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런 신자유주의와 주주 자본주의에 대해 개혁세력들이 열광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에서 기인한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본서 141쪽 참조).“


이와 같은 우리 경제의 현상을 설파하면서 두 교수는 개발독재로서의 박정희 체제나 소위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기업 체제와 정부 개입의 정당성을 옹호하며 노조의 편을 드는가 하면 주주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등 어느 하나의 경제이론으로 꼭집어 이야기할 수 없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즉 두 교수가 바라보는 현재의 경제는 현실적, 구체적, 개별적인 입장에서 경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가장 큰 문제를 불러온 것은 “한국의 경제 성장을 둘러싼 담론들은 이렇듯 객관적 연구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나 세계적으로나 말입니다(본서 66쪽 참조).”라고 한 것처럼 경제현상을 현상 그대로 읽지 않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맞추어 경제를 바라보고 있는 가장 큰 우를 범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우를 범하게 된 가장 큰 요인 중의 또 하나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오해와 환상, 양자의 상호 관계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이 모든 아이러니의 근원으로 보인다(본서 232쪽 참조).”라고 지적하고 있듯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라는 개념을 정치와 경제 양자에 모두 동일하게 적용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우리 경제의 여러 현상에 대한 점을 살핀 다음, 국가와 자본, 노동 모두에게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고, 모두의 대타협을 통해 좀 더 나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자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이데올로기적 혼선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여태까지의 경제서적들이 일정한 이론적 틀을 가지고 그 이론적 틀에 맞추어 경제현상을 파악하려고 하였던 점에 비해, 이 책은 다양한 경제현상의 실제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한국적인 경제현상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 것으로, 한국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경제현실을 다양한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 책이라 하겠다.


물론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서 이 책은 하나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그 반대적인 입장에서 논의될 수 있는 문제점들은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존에 우리들이 익혀온 경제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라는 파고를 넘어야 하는 현재의 우리 경제에서는 유익한 책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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