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희망찬 순간보다 우울하고 어두운 순간들로 가득했던 2005년을 뒤로하고 어느덧 병술년 2006년의 밝은 해가 떴습니다. 2006년이라 뭐 새로운 게 있을까? 이렇게 푸념조로 한해를 시작하시는 분도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주어진 시간은 그냥 흘러가라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인생이 뭐있나'하는 자조 속에도 우린 내심 뭔가 2006년을 '의미와 가치'라는 묵직한 것으로 채워줄 수 있는 무엇을 기대하게 됩니다.

대중음악계의 2006년의 전망, 딱히 뭐라 얘기할 순 없어도 그다지 밝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이 음악적 난세에 조용필이나 서태지 혹은 비틀즈와 너바나와 같은 '영웅'의 출현을 행여 기대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과거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이전보다 진일보한 색다른 그 무엇을 이 나라의 대중음악이 제시해주길 기대하는 실낱같은 소망입니다. 그러기에 결국 우리는 과거에 명멸한 음악 영웅들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과거 역사의 필연적인 반복이니까요.

저는 2006년을 맞이하면서 바로 이 사람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바로 쿨의 전설 마일스 데이비스입니다. 올해 2006년은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탄생 8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재즈계는 이 명멸한 트럼펫 주자에 관한 여러 추모행사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럼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네요. “왜 21세기가 시작된 지 한참지난 지금까지도 마일스 데이비스인가?” 구체적으로 들어가 물어본다면 과연 내가 듣고 있는 가요 한곡, 팝 하나, 재즈 앨범 하나와 마일스 데이비스는 어떤 관계가 있는건가요? 그가 죽은 지 어느덧 1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마일스의 65년 인생동안 남긴 음악적 유산은 분명 이 난국의 대중 음악계에 뭔가 시사해 주고 있다는 겁니다.

'재지한 재즈속으로' 지면을 통해 앞으로 3회에 걸쳐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명쾌한 답변을 찾아보겠습니다. 이번 마일스 데이비스 탄생 80주년 특집은 '스타일의 창조자 마일스 데이비스', '뛰어난 전략가 마일스 데이비스', '블랙 파워의 지존 마일스 데이비스'란 타이틀로 3회에 나눠서 진행됩니다. 먼저 '스타일의 혁신자 마일스 데이비스'입니다.


1.스타일의 창조자 마일스 데이비스
재즈 역사가 100년이 조금 넘은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수많은 아티스트가 있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존 콜트레인 등등, 우린 그들을 음악적으로 일가를 이뤘다는 의미에서 '대가'라는 호칭을 붙였습니다. 일일이 그들의 업적을 빼곡히 밝힐 순 없어도 다들 혁신과 실험이란 기치아래 재즈의 진보를 일궈낸 인물들입니다. 마일스 데이비스 역시 앞에 언급한 대가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고혹적인 선율과 담백한 주법이 느껴지는 쿨 재즈를 창조했고, 이어 10년마다 새로운 연주 스타일을 제시해 낸 대가입니다. 그런데 마일스 데이비스는 앞에 언급한 다른 재즈 뮤지션들과 사뭇 다른 점이 발견됩니다.

록 전문지 롤링스톤 2003년 겨울호는 “역사상 위대한 500대 록 명반”을 선정한 특집호였는데 이 순위에서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1959년 역작 'Kind of Blue' 가 12위에 랭킹 돼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재즈 록 퓨전의 효시를 알린 1970년작 'Bitches Brew'가 94위, 1960년작 'Sketches of Spain'이 356위를 차지했습니다. 재즈 아티스트의 앨범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3장씩 록 음악 잡지에 명반으로 거론된다는 것은 마일스의 음악이 재즈의 영역을 넘어 전체 대중음악에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쿨을 시작으로 하드밥, 모달, 그리고 퓨전에 이르기까지 마일스의 음악 인생은 부단한 '스타일과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백인의 관점에서 흑인의 비밥을 해석한 처녀작 'Birth of cool'(1949), 비밥(Bebop)을 한층 구조적이고 세련되게 창조한 하드밥 명반 'Round Midnight'(1956), 재즈를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버금가는 음악성으로 끌어올린 'Miles Ahead'(1957), 코드 변환에 의거한 연주가 아닌 음계(스케일)가 연주의 중심이 되는 모달 주법을 시한 'Kind of blue'(1959), 대중적인 록 음악을 재즈의 관점에서 해석한 재즈 록 퓨전의 효시 'Bitches Brew', 환갑의 나이에 아랑곳없이 첨단 일렉트로닉 재즈를 연주한 'TuTu'(1986)를 선보입니다.

마일스는 기존에 익숙해진 연주 스타일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오로지 새로운 연주법을 찾기에 골몰했습니다. 사람이 뭔가로 유명해지면 자칫 나태해지고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매너리즘이란 말은 그럴 때 쓰는 거죠. '쿨'의 창조자란 명성만으로도 마일스는 충분히 재즈 계를 군림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일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갑자기 국가 대표 축구 감독 히딩크의 명언이 떠오르네요. 16강에서 8강을 거쳐 꿈에도 없었던 4강전을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이정도면 됐다'라는 여론 속에서 히딩크의 답변은 명작이었습니다. '난 여전히 배가고프다'라고.

그의 음악적 야망의 끝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혁신적인 연주법이라도 조금 시간이 지나 익숙해진 것이 됩니다. 마일스는 이럴 때 마다 기존의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걸 찾아 골몰했습니다. 일례로 마일스는 1986년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카인드 오브 블루의 명연 'So What'을 다시 연주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마일스는 '그 똥 같은 연주, 다시는 하지 않아'라고 일축했답니다. 새로운 스타일에 늘 목말라하는 마일스의 면모가 드러나는 대답입니다.

재즈뿐 아니라 모든 음악장르를 막론하고 하나의 명반을 낳기 위해선 엄청난 산고를 겪게 됩니다. 기존의 익숙한 것을 과감히 버리고 무(無)의, 백지의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무모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두고 볼 때 그런 음악인들의 무모한 결단은 경험은 명반이란 결실을 낳았고 결국 음악계 전반을 풍성하고 생명력 있게 했습니다.

스타일의 창조자,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를 뛰어넘어 모든 음악계의 귀감이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쿨 에서 퓨전에 이르기까지 그가 일궈낸 창조를 위한 고군분투는 재즈 스타일을 한층 다양하게 했고 재즈가 클래식에 버금가는 창조의 예술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줬습니다. 아울러 재즈가 고상한 일부 계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접할 수 있는 대중화의 방법론도 제시했다고 봅니다.

1991년 9월 25일 불꽃같은 예순 다섯 해의 인생을 살고 마일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로이길 거부하고 영원한 현역이길 고집한 마일스 데이비스. “음악은 한때 하다가 그만두는 유행이 아니다. 평생, 죽을 때까지 씨름해야 할 업(業)이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지금 이 순간 이 시대 대중음악들에게 전하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다음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2006/01 정우식 (jasbso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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