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격하는 DMB
2006.01.24 / 박혜영 기자 

인간이 만들어낸 미디어가 인간의 삶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사유와 문화 자체가 얼마간 DMB에 의해 재편될 것임을 뜻한다.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DMB, 그렇다면 그것의 문화적 지평은 무엇일까.

DMB, DMC, HDTV, IPTV, WCDMA, WiBro, Wipi... 낯선 용어들이 넘쳐난다. 정보 통신 분야의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며 새로운 매체와 기술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같은 뉴미디어 홍수 속에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문화적 의미이다. 이는 뉴미디어의 기술적, 산업적 측면만큼이나 그 문화적 함의와 철학적 논의가 필요함을 뜻한다. 김평호 언론개혁시민연대 방송개혁위원장은 "뉴미디어란 말 그대로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잠재력을 구현하는 매체란 뜻이며, 또 그러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뉴미디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뉴미디어의 가능성을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매체는 기술과 산업의 변화는 물론 사회문화적인 변화를 추동하며, 매체가 가져야 하는 궁극적 차원의 유용성은 하드웨어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수준과 내용, 즉 문화적 생태 환경을 제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DMB 매체의 속성

미디어 이론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마셜 맥루한에 의하면 사회는 미디어의 내용보다 매체의 속성에 의해 더 많이 결정된다. 신매체가 인간과 사회, 소통 양식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는 말이다. 새로운 매체는 사회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 동시에 역으로 새로운 사회를 구성해내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신문,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인터넷, 모바일 등이 그래왔고, DMB 역시 인간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데 일정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 같은 변화를 추적하기에 앞서 DMB라는 매체의 속성을 살펴보자. DMB는 ‘안방에서 거리로’, ‘거실에서 내 손 안으로’의 매체 환경적 변화를 가져온 휴대형 멀티미디어 디지털 방송이다. DMB는 거실이나 안방 같이 고정된 공간을 벗어나 시청 가능한 이동형 미디어다. SK텔레콤의 조사 자료 역시 DMB 이용자들은 ‘움직인다’는 것에 DMB의 우선적 가치를 둔다고 말하고 있다. DMB의 두 번째 특징은 바로 ‘개인성’이다. DMB는 ‘내 손 안에 TV’로 혼자 보며 즐기기 적합한 사적 미디어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골라 듣고 보며 콘텐츠에 대한 선택과 통제력을 행사한다. 세 번째 특징은 ‘컨버전스’, 곧 하나의 기기에 다양한 기능이 통합됐다는 것이다. 모바일 컨버전스는 휴대 기기에 새로운 기능, 서비스, 미디어 등이 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휴대전화에 카메라, MP3, TV 기능 등이 결합되면서 전화기와는 차원이 다른 개인용 기기로 변모하고 있다. DMB는 방송의 모바일화로 방송과 통신이 융합된 ‘미디어 컨버전스’라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혁명

이제 DMB가 불러일으킬 문화적 새 지평을 살펴보자. 휴대전화 통화 중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나 어디 있어”, “거기 어디야?”라는 말이다. 유선 전화가 집이라는 고정점을 가지고 있다면 모바일은 이동 중인 다양한 공간과 함께한다. 이는 유선전화와 달리 이동전화가 공간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려준다. 이는 모바일이 사적 공간은 물론 공적 공간에서의 사적 커뮤니케이션까지 가능케 해줬음을 의미한다. 그 경계가 무너진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DMB 역시 이 같은 모바일 미디어의 성격을 공유한다. DMB는 소유주를 따라 자유롭게 이동하는 ‘동행 미디어’다. 손 안의 TV를 보는 동안 개인은 공적 공간을 자기만의 사적 영역으로 재편시키는 가운데, 도시 전체는 여러 개의 시청각 공간을 수시로 변모시키는 거대한 관람 공간이 된다.

DMB의 경우 가장 시청률이 높은 시간대는 오전 7~9시, 낮 12~1시, 저녁 6~8시다. 이는 DMB가 주로 출퇴근 시간에 이용됨을 보여 준다. 또한, 출퇴근자들이 모여드는 지하철은 DMB 관람의 대표적인 공적 공간이다. 이처럼 DMB는 개인성을 공적 공간으로까지 확대해간다. 이는 개인과 관련된 모든 것이, 심지어 고독과 위안까지도 공적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마셜 맥루한은 이미 50여 년 전에 ‘미디어는 메시지인 동시에 마사지’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인간은 특정 대상과의 직접적인 대면으로 위로받는 대신 매체 기술을 통해 피로한 영혼을 주물러주는 마사지를 받는다. 이는 곧 도시 전체가 새로운 개인적 공간으로 재편되는 와중에 인간의 사유와 문화적 행태가 매체 환경에 의해 새로운 모습을 지니게 됨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가정 내 거실에서 집단 시청하던 TV가 DMB에 의해 철저히 개인 영역으로 옮겨가며 가족 TV에서 개인 TV로 그 정체성이 이동하게 된다. 가족을 한자리에 불러내는 TV가 사라지며 가정과 개인의 생활 패턴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이는 가족 단위 문화의 감소와 가족 구성원들의 파편화를 가속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것은 과거 이동성 미디어로 각광받았던 워크맨과 공간이 맺는 관계와 유사하다. 워크맨은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싶은 장소에서 듣게 해준다. 이는 집단 공간에서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며 음악 청취의 공간적 제약을 없애버렸다. 워크맨의 신화는 바로 자기중심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현대 젊은층의 출현이라는 사회문화적 조류와 무관하지 않다. 도심 속 고독을 즐기며 센트럴 파크를 조깅하는 여피족의 모습은 워크맨 등장에 따른 삶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DMB는 또 시간적 제약으로부터도 자유로운 환경을 구현한다. 9시 뉴스와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굳이 집으로 돌아가 TV를 틀 필요가 없다. 이는 이동 시간의 탄력적 지배를 가능케 하여 콘텐츠에 대한 개인의 선택과 통제를 불러일으킨다. 미디어 학자 조레기베리는 또한 모바일 미디어의 시간적 특성이 TV를 볼 수 없는 시간에도 볼 수 있게 하고 다른 일을 하는 시간에도 TV를 볼 수 있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TV를 이용할 시간을 늘려준다고 한다. DMB는 출퇴근 시 지하철과 버스 등에서 허비되는 죽은 시간을 교육 및 여가 행위로 채워간다. 도시인들은 끊임없이 미디어에 기대며 지하철에서의 죽은 시간을 생산적 시간으로 바꿔간다.

시지각의 변화, 신인류를 만들다

전화와 현미경이 각각 청각과 시각의 범위를 넓혔듯이 사람은 자신이 만들어낸 미디어에 의해 자신의 감각을 변화시킨다. 마셜 맥루한은 매체 발전을 인간 신체의 보철적인 확장으로 이해한다. 옷은 피부, 라디오는 입, 텔레비전은 눈의 확장이다. 매체 기술은 신체뿐 아니라 전지구촌으로 공간을 확장시킨다. 예를 들어 화상전화 등은 먼 곳의 인물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 연결시켜 준다. 지각의 확장은 기계에 종속되어야 가능하다. 나의 손 끝에 달려 있는 기계가 이미지를 재현하고 경험을 직조하며 이미지를 생산한다. DMB를 통한 관람 경험은 DMB의 이동성과 개인성이란 특징으로 인해 분산적이되 순간순간 몰입하는 이러한 지각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 분산적인 몰입 상태는 디지털 영상 세대의 특징과 맞닿아 있다.

보통 디지털 영상 세대로 불려지는 젊은 세대에게 디카와 휴대전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기계다. 이들은 매체들이 일러주는 시간에 길들여져 무의미한 시간을 매체를 통해 채워간다. 이들의 커뮤니케이션 욕망은 주로 매체를 통해 매개된다. 또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경험을 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의 욕망은 이동 중에도 타인이 포착하지 못한 이미지를 끊임없이 소비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나아간다. 이들은 새로운 기기를 선점하면서 또 다른 나만의 경험을 마련한다. 이러한 일련의 문화적 변화가 DMB와 같은 매체를 추동시킨 요인인 동시에 DMB를 통해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욕망은 더욱 강화된다. 즉, 현실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실패를 기계와의 교감을 통해 대체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또한 남에게 없는 새로운 것, 개인의 특이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보 인터페이스를 수집하는 데도 DMB는 한몫을 차지한다. 불 꺼진 영화관 안에서 경험하는 몰입의 상태가 아니라 즉각적이고 순간적인 정보 획득이 DMB 콘텐츠에서 이뤄진다. 주로 교육, 드라마, 짧은 콩트, 퀴즈 등의 DMB 콘텐츠가 바로 여기에 기여한다. 한편 DMB로는 장편 영화를 감상할 때 영화관 안에서와 같은 몰입의 즐거움을 기대할 순 없다. 따라서 DMB에서 상영할 수 있는 영화도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순간적 몰입이 가능한 형태의 콘텐츠가 DMB를 구성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상의 현상들이 DMB가 불러일으킬 문화적 새 지평의 밑그림이다. 아직 그 구체적인 행보가 어디로 향할지, 또 더 이상의 새로운 어떤 것이 출현할지 섣불리 재단할 순 없다. 분명한 것은 인류의 신매체로 등장한 DMB가 인간의 시공간 개념과 시지각 환경을 변화시키는 가운데 우리의 문화적 세계 역시 커다란 혁명을 맞게 되리란 사실이다. 박혜영 기자

모바일 컨버전스 시대 도래

‘미디어 컨버전스’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내놓은 'SERI 전망 2005'는 다섯 개의 모바일 컨버전스 분야에 주목하라고 권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방송의 모바일화인 DMB이다. 두 번째는 인터넷의 모바일화로, 이는 2006년 상반기에 상용화될 예정인 ‘와이브로’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RFID(전자태그)의 확산으로 물류, 유통, 교통 등의 분야에 가져올 유비쿼터스 혁명이다. 네 번째는 서비스의 모바일화로, 휴대전화를 이용해 체지방이나 당수치 측정 같은 의료, 안전 등의 분야에 새로운 서비스들이 도입된다. 다섯 번째, 휴대 기기가 음악, 게임, TV, 업무 등을 처리할 수 있는 복합 기기로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모바일 컨버전스는 소비자들에겐 유비쿼터스 시대의 새로운 삶의 환경을 만들어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뉴미디어 콘텐츠와 공공성

DMB의 미래는 자본에 의해 굴러가는 콘텐츠 경쟁에서 수용자 문화의 다양성과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화두를 던진다. 이 같은 문제 제기 속에 DMB 회사들은 현재 콘텐츠 개발을 위해 독립영화 쪽이나 인터넷 진보 언론 쪽과의 연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는 미디어의 다양성과 공공성을 확보할 하나의 시작이다. 이러한 현상은 90년대 중반 이후 디지털 비디오가 출현했을 때를 상기시킨다. 디지털 비디오는 독립제작사와 비디오 저널리스트 등이 진보적 미디어 제작을 확대하고 활성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조동원 실장은 모바일 역시 이런 기능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모바일 컨버전스의 정점인 DMB 역시 공공 영역 안에서 다양성과 공공성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매체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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