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사각지대] 제발 정신 좀 차리자

2005.12.30 / 조동섭(문화평론가)

지난 주 텔레비전에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사건들이 펼쳐졌다. 12월 17일 낮에 방송된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의 연속된 기자 회견의 시청률은 이 시간대의 평소 시청률의 4배인 15%를 넘겼다. 이날 sbs는 저녁 8시 뉴스를 7시부터 시작해 두 시간 동안 방송하며 그 대부분을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의 기자 회견에 할애했다. mbc는 특집 방송으로 'PD 수첩'으로 불거진 황우석 교수 논란을 계속 보도했다. 이어지는 이후 방송 시간에도 각 방송사는 토론 프로그램 혹은 특집 프로그램 등으로 줄기세포 논쟁을 확대시켰다. 물론 보는 입장에서는 재미있었다.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두 사람. 한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면 다른 한 사람은 거짓을 말하는 셈일 것이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가. 그리고 그 사건의 내막에는 또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일까. 이런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방송이 놓칠 리 없다.

하지만 PD 수첩, YTN 보도, 노성일 이사장의 폭로성 발언, 황우석 교수의 기자 회견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그에 따라 때마다 얼굴을 바꾸며 다른 목소리를 보이는 방송 보도의 모습은 그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어떤 날은 입원한 황우석 교수의 초췌한 모습을 비추며 동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가 하면 어떤 날은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친 야바위꾼을 만든다. 문제의 쟁점이 무엇인지 지금 밝혀야 하고 파악해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단하고 분석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두 사람의 기자회견이 열린 날, 집중적인 방송을 하면서도 지금까지의 보도 행태에 대해 자성하는 모습도 없었다. 두 사람의 상반된 주장에만 쟁점을 두고 대립 구도를 만들어 보여 주는 데 급급했다.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 희석시키는 방송의 관행에, 이미 국민적인 영웅으로 자리 잡은 황우석 교수의 위치가 더해져, 모든 사건에 대한 보도 방향이 한 사람의 개인에게 맞추어졌다. 여기에 오로지 흥미거리로 사건을 바라보는 선정주의가 힘을 합했다. 국익을 따지며 사건의 핵심을 모른 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여론에 언론이 이끌려다니기만 했다. 그리고 그런 여론을 만들어낸 것 역시 언론이었다. 공정, 편파 부당, 이런 말들은 사전에나 있는 단어 같이 멀게만 느껴진다.

조사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이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를 보도하는 모습은, 진실 규명이라는 탈을 쓰고 보는 이의 흥미를 자극하는 데에만 한정되어 있다. 이제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벌어진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좀 더 총체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정리할 수 있어야 할 때다. 외적으로는 국익이란 무엇인지, 여론이란 무엇인지 엄정히 바라보아야 한다. 내적으로는 과학과 윤리의 문제 등 그간 소홀했던 사안들에 대해 냉철히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방송사와 방송인들은 뉴스의 생산자로서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 진지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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