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다 쭈꾸미 통신 -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
박형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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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윤구병이 책의 서두 부분에 쓴 뽑아 올리는 글을 읽으면서 조금은 의아한 생각을 했다. 보통의 책들은 서문에 아주 거창하고 유려한 문체를 선보이는게 대부분인데 이 책 서문에서 윤구병이 보여준 필체는 어떤면에서는 상스럽다는 인상을 받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원초적인 단어에서 느껴지는 강인한 힘은 이 책이 분명 다른 책들과는 다를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졌던 직감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지은이는 변산반도라는 풍광좋은 곳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이로 중학교 1년까지만 다닌게 정규교육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의 글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듬지 않은 듯한 투박하면서도 거친듯한 글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을 느끼게 한다. 또한 전라도 사투리를 그대로 적으면서 그 글속에서 배어져 나오는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꼴까닥 침넘어가는 고향이야기라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에는 지은이가 태어나고 자라온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애착이 진하게 뭍어나옴을 알 수 있다. 힘들었던 시절 먹을 것이 제대로 없었지만 그런 것에서 느껴지는 향수와 그 음식에 관련된 사람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에서 지금 자신의 자식들과 부인에게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고리는 지은이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인생의 고리다. 지은이는 이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보고 즐겁게 보려고 한다.


감칠맛나는 음식이야기

지은이는 남도 사람답게 입심좋은 글을 선보이고 있다. 많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동원하여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음식이 우리들 바로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침을 꼴깍 삼키게 한다.

잘 영근 풋나무 이파리가 타닥거리며 타는 냄새도 좋은데 집집마다 풍겨나와서 고샅을 진동하는 점심 무렵의 고구마 찌는 냄새가 어울리면 무엇이라 표현할 도리가 없다(책46쪽), 두부하는 일이 이렇게 대충 끝나 가면 수저 하나씩을 들고 아까 한 양푼 퍼 놓았던 순두부를 먹는데 적당하게 익은 김장김치 웃짐 얹어서 먹으면 그 짭조름하고 구수한 맛에 배가 부르고 속이 다 편안했다(책 133쪽) 사실 쭈꾸미 회는 나중 비벼 먹는 이 밥이 더 맛있다. 시고 달고 맵고 짭짤한 양념이 남아 있는 양푼에 밥을 비벼서 착착 한 숟가락씩 볼태기 미어지게 떠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것이다(책141쪽). 설 지나고 보름 무렵 처갓집에 큰 사위가 오면 반드시 상 위에 이 파김치 처음 꺼낸 게 놓이고 그러면 매형은 오른손에 밥숟갈, 왼손에 파 하나 길게 들고 휘휘 감아서 비오는 날 헛청에 나무들이듯 한 그릇 고봉밥을 뚜딱 해치우곤 했다(책148쪽)

이 대목들을 읽고서 침을 안삼킬 이 그 누가 있겠는가? 화려하고 정제된 글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보다 향토색 짙은 사투리와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를 동반하여 이렇게 편한 말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니 무척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 70년대 한창 우리나라가 힘들때를 통과해 온 세대들에게는 지금처럼 먹는게 그리 흔하지 않았던 오히려 부족했던 그 시절에는 이런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는 더없이 정겹고 공감이 가는 글들이라고 하겠다.

그런데도 무슨 방법으로든 열고 훔쳐 먹는데 처음에는 한 수저만 먹으려 하다가도 돌아서 광을 나오기 전에 또 한 수저, 또 한 수저, 그렇게 가슴을 졸이며 댓 숟갈 떠 먹어야 광문을 나올 수 있었다. 식구들 눈을 피해 엿을 먹으러 광에 드나들 때마다 나는 내가 풀방구리의 쥐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책 187쪽).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구절이다. 누구나가 어릴적 한번 쯤은 음식을 탐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머니 몰래 단 것을 탐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너무나 적나라한 표현(?)이자 앙증맞은 표현이다.

사람사는 이야기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지은이는 음식이야기를 하면서 그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도 재미나게 풀어가고 있다. 자신이 살고있는 고향에 대한 다음과 같은 구절은 그가 얼마만큼 고향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를 느끼게 하는 글이다.

마실을 갔다가 고샅을 동아서 우리 집이 가까우면 남폿불 훤한 창문으로 눈이 소롯소록 내리는 게 보이고 글 읽는 청년들의 명징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 하다(책156쪽)
 
누구나가 한번쯤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집에 불이 켜진 걸 보고는 묘한 감정을 느낀 때가 많을 거다. 지은이가 표현한 겨울의 고향 풍경은 정감이 뭍어나온다. 이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곳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저렇게 포근하게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록소록이라는 짧은 단어만으로도 그가 가진 감정을 읽을 수 잇는 것이다.

도시의 황량한 가로등 불빛 아래로 흐르는 눈을 보는 도시인들이 느끼는 감정과는 확연히 그 감정의 선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지은이는 이런 글귀 이외에도 책 곳곳에서 고향의 향내를 전해주고 있다.

자신의 고향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소개해주고 있는데. 당시 시골에서는 이름보다는 별명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런 별명은 좀 더 친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떻게보면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들일 수 있지만 지은이는 이러한 자신의 고향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서 은근히 흘러나오는 사람냄새는 우리들을 더욱 정겹게 하나다.

가장 안타까운 건 이 모든 것들에는 언제나 우리네 어머니의 힘든 모습이 교차한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한둘만 낳는게 아닌 대가족 시대에서 가족을 부양하고 농사를 지으며 지친 허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웃음 머금은 얼굴이 떠오른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라면 자신마저 희생해가며 살아오셨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힘든 하루가 떠오르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또 한번 어머니를 생각하게 한다.

시대를 초월하는 느낌으로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이라면 책을 읽고 공감을 할만한 연령대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즘의 디지털문화에 친숙한 젊은이들에게는 그다지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이야기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우리네 부모들의 추억담으로만 들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먼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책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물건이름이나 음식이름에 대해서는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사투리를 여과없이 그대로 옮겨 두고 있어서 책을 읽는데 한번씩 걸리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비록 사투리에 대한 풀이가 책 옆 모퉁이에 수록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다음 장을 넘길때는 그 사투리의 의미를 잊어버리고는 다시 ?아봐야 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떡이 빵으로 바뀌고 사카린 탄 물이 청량음료로 바뀌었듯이 나중에는 이 음식들이 또 다른 음식으로 바뀌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그 이전의 것들에 대해 향수를 느낄지 모른다. 그렇다. 시대가 변하고 입맛이 변해도도 인간으로서 우리가 느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다름아닌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그 향수 속에 뭍어있는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 지인들, 먹을 것 등등..우리와 호흡을 같이 했던 그 모든 것들 때문에 그때가 더 정겹게 느껴질 것이다.

마치며

지은이는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네의 전통문화가 사라져가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이런 추세가 지금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지금 자라는 이 세대도 나중에는 지은이가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아쉬워 할 지도 모른다. 시대는 바뀌고 그 시대에 등장하는 인물도 바뀔 것이지만 우리네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감정은 언제나 똑 같을 것이다. 끈끈한 정이 그립다는 것이다.

변산반도에서 불어오든 아니면 거제도에서 불어오든 대관령에서 불어오든 우리네 곁을 스치며 지나가는 고향바람은 언제나 우리를 고향언저리에 보이는 언덕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그게 시골이 되었든 아니면 도시가 되었든 우리 모두는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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