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들어가며

우리 사회는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여태까지 억눌려왔던 각종 다종 다양한 목소리가 주변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오해와 불신, 반목이라는 과도기적 현상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전 발생한 대통령 탄핵소추라든지 수도이전과 관련한 헌법소원, 새만금 가처분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매스컴을 장식할 때마다 항상 법이라는 단어가 따라 다녔다. 신문과 방송들은 연일 각종 법을 들먹였지만 국민들에게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만 들렸다.

그런 와중에 출간된 김두식 교수의 이 책은 우리의 법현실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과 앞으로 우리의 법현실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지은이 자신의 소고를 담고 있는 책으로 시의적절하게 출간되어 먼나라 이야기로만 들리는 법에 대해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이해의 폭을 넓혀주려 시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은이가 검사 출신이다보니 자신의 생생한 경험이 글 곳곳에 녹아들어 있어 현실과 이론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읽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부분에 있어 수긍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은이가 바라본 헌법의 풍경은 어떠한 모습일까 자뭇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2. 헌법, 국민, 국가

헌법에 대한 정의는 견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정치체제와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것을 규정해 놓은 법으로 한 국가의 기본이 되는 법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헌법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헌법이 우리의 지난 세기동안은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인들의 도구로 전락한 적이 있었다.

국가라는 거대공룡이라는 이름이라기 보다는 국가라는 이름을 빌어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 아닌 만행은 우리의 법을 누더기로 만든 적이 있다. 지은이가 국가와 정치인들을 등식화 시키는 것은 조금은 비약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아마 지은이는 이런 의도로 글을 쓴 것이라 본다.

지은이는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는 배경이되는 형식적 법치주의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우리가 국가의 괴물화를 막기 위해 지켜내야 할 법은 반드시 ‘정의에 합치되는 법’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법의 탈을 쓴 불법’은 이미 괴물로 변해버린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악의 도구일 뿐이며 이미 법일 수 없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여태까지 우리는 국가를 우선시하며 국가를 사랑하도록 교육받아왔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나온 세기동안 잘못되어진 관행을 바로 잡고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에 대한 통제가 따라야 하는데 바로 그 중심에 법이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 법은 정의에 바탕을 둔 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은이가 설파하는 정의에 기반한 법은 매우 설득력있는 글이라 하겠다. 정의에 뿌리를 두지 않은 법은 자칫 법집행자의 자의에 의해 국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그야말로 주객이 전되되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헌법과 국가의 바탕위에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이루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 역할은 우리 국민들 개개인에게도 달려있지만 지은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법조인들에게도 많은 부분 그 책임이 있는 것이다.


3.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의 행사는 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이 경우 법치주의는 위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정의에 바탕을 둔 법 즉, 실질적 법치주의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것으로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가 있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간접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즉, 의사결정 자체가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에 의해 다수결 원칙에 따라 대화와 타협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이해할 경우 양자의 개념은 상충할 수도 있다 할 것이지만 법치주의를 실질적 법치주의로 이해한다면 양자는 적절한 조화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과의 관계에서 사회의 발전초기 단계에서는 법적 안정성이 중요한 것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성숙한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는 구체적 타당성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가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과 결부된 문제라 할 것이다.

지은이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진리 찾기의 출발점은 상호 관용의 정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은이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아직 우리 사회는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남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때부터는 대화와 토론이라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찾는다면 모든 것을 법에 호소하여 판단할 필요는 없으며 그에따른 비용과 노력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4. 소송과 법조인 그리고 국민 

소송은 분쟁의 해결수단으로서 다른 것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을 때 가장 최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예전과 달라 지금은 많은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당사자간의 분쟁을 합의에 의하여 도출하려고 하고 있다. 이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법원에서도 당사자들간의 화해를 적극 권장하는 것이 실무이다.

당사자들의 처지가 아닌 다음에야 사건관계자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법원의 판단은 100% 옳을 수도 없으며 당사자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3자가 그에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보다는 당사자들간의 합의는 적극 권장되어져야 할 것이다.

지은이는‘대화와 토론은 늘 엄청난 시간과 정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도 따지고 보면 이런 불가피한 비효율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대화와 토론을 통해 기준이 결정되고 나면, 더 이상의 잡음은 없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라고 밝히고 있듯이 지금 우리 사회는 좀 더 성숙한 미래지향적인 삶을 위해서라면 이러한 대화와 타협 그리고 관용의 정신이 더없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고 하겠다.

대화와 타협, 관용, 다양성이 존중되어져야 한다면 법조인들이 법으로 먹고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 부분을 가지고 일반인들까지도 모두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논리일 수도 있다. 법해석을 일반인들도 한다는 것은 자칫 단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유효할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된다면 법원으로서는 여론재판에 내몰리게 되고 사법부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든 의료체계 아니면 건축에 대해서도 다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건 그 직역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오랜 시간동안 품어온 불신과 반감이 표출된 것이 아닐까 한다.

중요한 것은 법조인들에게 바라는 것은 법과 양심에 따른 행동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부분을 제쳐두고 일반인들도 무조건 법조인과 같이 법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논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우리나라의 법체계와 그 법에 따라 우리가 보호받아야 하는게 무엇인지하는 점을 인식하고 그에 따른 정당한 보호를 요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서로의 직역을 존중해주고 서로의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여태껏 법조인들이 보여온 모습은 변화되어야 한다. 지은이도 그러한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한 시기라고 하며 우리 법조계에 만연해 있는 인맥과 학연, 지연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우선 법률가들은 사법연수원이란 단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70년 사법연수원이 개원한 이후, 모든 법조인들은 이 하나의 국립 법률가 교육기관을 통해 배출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법조인들은 모두 사법연수원 선후배 또는 동기라고 하는 끈으로 연결됩니다.

법률가가 되면 모든 것을 소유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이면에는, 법률가를 구하지 못하여 고통받는 일반인들의 설움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대목은 지은이가 우리 법조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신들만의 '끈'에 대한 비판과 그에 따른 폐해가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식으로 돌아오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법이 일반 국민들과 유리된 것은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지금 현재도 국민들은 법의 조력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법에 의해 지배되기도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제는 법조인들의 사고도 법률도 하나의 서비스라는 점을 인식할 때가 왔고 우리 국민들도 정당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가 왔다고 하겠다. 이런 것들은 법조인이나 국민 누구 하나의 힘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국민이라는 하나의 테두리내에서 같이 굴러가는 바퀴라고 생각한다면 서로가 노력하여야 할 부분인 것이다. 그리고 전문직으로서의 법조인들이 좀 더 각성하고 자신들이 배운 지식을 국민들과 이 사회를 위해서 활용하여야 한다는 정신자세가 더없이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죽은 권리를 살려내는 데 있어 시민의 의식 개혁이 무척 중요합니다. 말로만 하는 의식 개혁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의식 개혁이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데에도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자기 사상의 자유를 지키려는 공산주의자라면 기독교인들의 종교의 자유를 지켜주는 데 남보다 더 열심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더 이상 일부 의식 있는 변호사들의 ‘착한 마음’에 의존하는 공익 소송이 아니라, 그런 의식 있는 변호사들의 활동을 국가가 직접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라는 지은이의 이야기는 우리 국민들과 법조계에 대한 참다운 기본권 찾기의 하나의 수단을 제시하는 좋은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5. 마치며-풍경안의 헌법


헌법의 풍경은 그것이 어떠한 식으로 비쳐졌던간에 지금 우리 사회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모든 풍경안에 헌법을 품을 수 있는 그만한 저력을 가진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헌법도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일상생활 중의 한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헌법은 ‘그림의 떡’ 또는 ‘잘 포장된 한 장의 종이쪽지’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권력자들은 누구나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인정한다. 그러나’의 논리를 들이대며 자기 눈에 거슬리는 것을 마음대로 제한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막지 못하면 이미 헌법이 아닌 것이지요.

요즘 각종 비리 사건에서 검찰이 보여주고 있는 탁월한 역량이 바로 그 격려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여전히 법에 의한 통제와 국민 감시의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 권력이 괴물로 변할 경우 그 첨병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검찰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글로서 이제는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는 정신으로 우리들의 기본권을 지키고 또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바탕이 되는 헌법과 우리 국민, 법조인이 다 같이 노력하는 자세가 견지되어야 할 것이다.

지은이가 바라보는 헌법의 풍경은 여유로운 모습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가 풀어나간 이야기는 지난 세기 우리 헌법이 가진 풍경과는 달리들도 쉽고 친근하게 헌법과 기본권 그리고 법조계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제는 우리 안의 헌법이 되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지은이의 글쓰기는 우리에게 또 다른 권리를 인식시켜 준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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