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클로 - [초특가판]
트란 안 홍 감독, 양조위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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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나서 기분이 좋은 영화가 있고 괜히 뭔가 찜찜하고 뒷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가 있다. 나에게 씨클로라는 베트남 영화는 후자에 속하는 영화였다. 트란 안 홍 감독은 이전 작품인 그린파파야 향기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영상미와 절제된 대사, 주인공들의 표정연기 등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형상화시키고 있다.

씨클로는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아 운행하는 베트남식 택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주인공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감독은 이 씨클로를 통해 베트남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감독은 주인공이 씨클로를 폭력배들에게 빼앗기고 나서 겪게 되는 갑작스런 생활에서의 변화를 통해 사회주의가 남긴 빈곤과 자본주의가 몰고 온 정신적인 충격. 그 혼란 속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는 베트남 주민들의 삶을 아주 현란할 정도로 눈부신 색채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한 색채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감추어진 쓸쓸함과 절망은 모든 것이 회색의 잿빛과도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포에를 연기하는 양조위였지만 그의 행동에 대해서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부분이 있어서 무척 혼란스러웠다(양조위가 베트남어를 잘 못하니깐 감독이 표정연기만 하도록 주문했다고 하는데 어떤면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더욱 그 캐릭터를 호감가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건 다름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씨스터(트란 누 옌켄, 감독의 부인이기도 하다)에게 매춘을 하게 하는 장면에서였다. 폭력조직에 몸담으면서 자신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포에가 씨스터와 씨클로보이(르 반 록)의 순수에 매료되게 되고 포에를 통해 세사람은 서로 연결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포에는 씨클로보이와 씨스터를 시험하면서 그들도 순수성을 차츰 잃어가는 모습에 급기야는 불구덩이에 몸을 던진다는 조금은 이상한 캐릭터였지만 감독은 이러한 도착적인 양조위의 캐릭터가 아주 마음에 든다고한다.

하지만 나에겐 너무 철학적인 주제다. 아직도 아리송하기만 하다. 하지만 모든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라면 이 부분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영화는 어떠한 결말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우리가 익숙한 헐리웃의 영화들에서 대부분 명쾌한 결말을 보여주어서인지 그러한 영화보기에 익숙한 나에게 있어 이 영화는 많은 어려움을 던져주었던 게 사실이다. 이미지의 과다를 ?아가다보니 어느새 영화는 끝나버리고....

 영화를 보면서 '체하는 식'의 영화읽기를 싫어하는 편이어서 무언가에 많은 의미를 담으면 침을 튀기는 걸 싫어하는 편이지만 이 영화는 조금 예외적이었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미장센은 결코 녹녹하니 이 영화를 보게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냥 한번 돌아볼 뿐이다. 나에게 만약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여 내 삶자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치닫고 있을 때 과연 순수를 읊조릴 수 있을것인지. 사람의 삶이란게 자신이 의도하는 바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란걸. 

디비디타이틀의 화질이나 사운드는 볼만한 수준이며 특별히 기대할만한 스페셜 피처는 없다. 다만 첫 출시때의 엄청난 가격에 비한다면 가격이 너무 많이 인하된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디비디산업의 고질적인 병폐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다음은 트란 안 홍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대해 밝힌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가족 >
내 영화들은 설사 산산조각이 났을지라도 가족에 대해 말한다. 씨클로의 중심주제는 아버지와 아들의 유대 관계이다. 영화의 2/3쯤 되는 지점에서 범죄세계에 빠져든 씨클로 보이는 또다른 씨클로가 그의 팔 안에서 죽어갈 때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게 되고, 비로소 자유로와지게 되는 것이다.

다음날 그는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와 닮은 감정에 대해 자신 안에 아버지의 존재를 느낀다는 사실을 말한다. 아버지와의 연관성은 또한 그의 조상들과의 연관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속죄라는 것이 있다.

그가 죄악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 그는 자살을 기도하고 나서 자유로와질 것이고, 그를 정성껏 돌보는 택시 주인 여자의 모성적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순수>
이것은 순수에 대한 영화이다. 시인은 범죄 속에서 노동의 순수를 상실했다. 그는 씨클로 보이에게서 순수한 존재를 느끼고 그에게 끌리지만, 그가 범죄에서 빠져나가도록 도와주는 대신에 그를 시험한다.

시인이 매음을 시키고, 희생시키고, 모욕하는 씨클로 보이의 누이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이 그녀가 우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는 그에게 노동에서의 순수를 연상시켜 주었다. 나 개인적으론 시인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부패(도착)가 매혹적이었다.

<생선들>
이 주제는 아주 중요하다. 나는 매우 영화학적인 관점에서 이미지들을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자전거택시 주인 여자의 아들과 씨클로 보이 사이에 연관을 맺기 위해 이미 그림이 사용되었지만, 영화가 종교, 속죄, 은총에 관련된 장면을 포함하기 때문에 또다른 봉헌물을 찾아내야만 했고, 그래서 생선에 대해 생각했다.

아시아에서 생선의 이미지는 아주 강하며, 또한 기독교의 전문용어 속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자전거 택시 주인 여자가 처음 나올 때, 그녀는 자신의 불구 아들에게 "너는 나의 작은 생선이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카메라는 씨클로 보이의 입 안에 있는 생선을 보여준다. 이건 마치 그가 이제부터 주인 여자의 죽은 아들의 영혼에 의해 살아갈 것처럼 느껴지는 강한 효과를 발휘한다.

<눈>
그린 파파야 향기에서는 모든 것이 조화로웠다. 씨클로에서는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였다. 그린 파파야 향기는 정신적인 영화였고, 씨클로는 더욱 육체적인 영화이다.

나는 관객들이 상이한 세상을 보게끔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고, 그들을 이미 알고 있는 경험의 흔적들과는 다른 흔적들 속으로 이끌려고 했다. 관객들은 낯선 사람과 재탄생을 향해 가고, 그 와중에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게 되는 것이다.

<감각>
영화에서 모든 것은 맛을 가져야 한다. 이 맛은 신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처음에 그것은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일해야만 했다. 이것은 사물의 물리적 비중에 대한 문제다. 내가 음향, 재료, 색깔, 채소, 벌레들에 그토록 중요성을 부여하는 이유가 바로 그때문이다.

나는 숨막힘, 더위, 향기가 느껴지기를 바란다. 내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은 '스토리'나 '에피소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영상 속에서 다시 번역하려고 애쓰고 있는 '감각'들이다.

씨클로가 범죄 세계에 들어가려 할 때 보여지는 입 안의 도마뱀 꼬리처럼, 가끔 격렬한 이미지들이 필요하다. 영화는 관객의 감수성, 관객의 내면세계를 감정평가할 수는 있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다해도 괜찮다. 그 내면 세계가 그 영화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거나, 그 속에서 감각적이지 않기 때문이니까.

지성인들은 신경질을 낼 것이다. 그들은 감각보다는 메시지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영화를보러 극장에 가게 된다면 '감각적'이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될것이다.

<폭력>
씨클로에는 폭력적인 장면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장면들을 통해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힘겨운 점들을 치유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폭력적인 죽음 후에 아이들이 노래하는 것이 그렇다. 나는 드라마에 병행적으로 존재의 텅 빈 감각, 삶의 폭을 부여하고자 했다.

게다가 그린 파파야 향기가 도쿄에서 상영된 후 일본 감독은 내게 "나는 당신이 부드러운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옳았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을 때, 나는 "영화는 정신현상이다.너는 모든 악마들이 너를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중얼거렸었다.

물론 나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내 부모는 아직 살아 계시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당신에게는 털어놓지 못할 강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난 가끔 끔찍한 상상, 혹은 장난스런 자문을 하곤 한다. 그들이 모두 죽어버린다면 내가 정말 자유롭고 대담해질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힘을 가진 작품, 경이로운 작품을 벌써 만들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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