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홍세화 > [씨네21] 재즈의 재즈에 대한, 재즈를 위한 영화와 음반 10선

[씨네 21 No.419] 2003년 9월 9일

재즈의 재즈에 대한, 재즈를 위한 영화와 음반 10선 - 황덕호

영화로 듣는 전설의 재즈 명언


지난 96년 카네기홀, 영화계의 인사이자 재즈의 후원자이기도 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위해 열렸던 대규모 재즈 콘서트에서 색소폰 주자 조슈아 레드먼은 “많은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꾸준히 재즈를 사용해온 클린트에게 감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재즈가 쓰인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특별한 선택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보기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표현일 뿐이다. 재즈가 쓰인 할리우드영화들은 본격적인 재즈영화에서부터 로맨틱코미디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그 수많은 리스트 가운데서 재즈가 차고 넘쳤던 영화를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는 반드시 들어야 할 위대한 예술가이지만 듀크 엘링턴은 여전히 몰라도 상관없는 ‘흑인’ 음악가이기에 우리에게 재즈는 한낱 백그라운드 뮤직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영화 <카튼 클럽>이 국내 흥행에서 참패한 이유에 대해 고(故) 정영일씨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재즈의 고전들을 우리가 잘 모른 탓도 있다고 당시 글에 쓴 적이 있는데, 그러고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재즈에 대한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올해 국내 개봉한 영화 <시카고>에 쓰인 음악은 ‘재지’하긴 해도 재즈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그건 제임스 라스트나 리처드 클라이더만의 음악이 클래식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필자는 재즈의 문 앞에서 서성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방법으로 영화가 아주 유용한 매개체라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영화란 음악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예술이며 더욱이 그 음악을 돋보이게끔 하는 어떤 ‘맥락’ 안에 그것을 담아 놓기 때문이다(물론 그 ‘맥락’은 음악에 대한 순수한 접근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다음의 영화들은 재즈를 단순히 배경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재즈 속으로 밀어넣음으로써 재즈의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일 수 있는 몇편의 영화들이며(아울러 이 영화들은 모두 국내 비디오 또는 DVD로 만날 수 있다) 그 영화로부터 시작된 몇장의 재즈음반 컬렉션이다.

광기어린 즉흥연주 <버드>

<캔자스 시티>에 등장하는 고적대의 흑인소년이 이른 아침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의 어머니 에디 파커는 이 소년을 찰리라고 불렀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캔자스 시티 소년의 일대기, 그러니까 모던재즈의 창시자 찰리 파커의 생애를 그린 영화 <버드>를 88년에 만든다. 이 영화는 <아마데우스>와 달리 한 음악가의 천재성에 그리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이면에 놓인 상처와 파멸해가는 개인사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찰리 파커의 천재적인 음악성을 가장 압도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있는데 뉴욕에서 유명해진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캔자스 시티의 선배 연주자 버스터 프랭클린이 찾아오는 대목이다. 이미 8년 전 파커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던 그는 파커의 명성을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클럽에 들어서자마자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즉흥연주로 <Lester Leaps in>(레스터 영 작품)을 연주하는 파커의 모습을 보자 그는 경악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날 밤 절망한 그는 자신의 색소폰을 강물에 집어던진다.

♣ 모던 재즈의 창시자 찰리 파커의 생애를 그린 <버드>에 쓰인 파커의 알토 색소폰 연주는, 그의 실제 녹음과 새로 녹음한 반주를 합성한 것이다. 찰리 파커는 실황음반 <1949 JAZZ at the Philharmonic>에서 <Lester Leaps in>을 광기어린 즉흥연주로 녹음한 바 있다.

♣ <라운드 미드나잇>에 직접 출연했던 바이브라폰 주자 바비 허처슨의 <Chan\'s Song>은 허비 핸콕이 오리지널 곡을 작곡했다.

♣ 34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파커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낙엽 쌓인 비 젖은 거리를 빠져나가는 장면 위로 킹 플레주어가 부르는 <Parker\'s Blues>가 흐른다.

<버드>에 쓰인 파커의 알토 색소폰 연주는 파커의 실제 녹음에서 따와 새로 녹음한 반주 부분과 합성한 것으로, 그는 실황음반 <1949 Jazz at the Philharmonic>(버브)에서 <Lester Leaps in>을 광기어린 즉흥연주로 녹음한 바 있다. 이 연주에서는 파커가 존경하던 레스터 영을 비롯해서 로이 엘드리지, 플립 필립스 등 스윙시대의 선배 연주자들이 독주자로 등장해 함께 경합을 펼치는데 그들 속에 속한 파커의 솔로는 새로운 모더니스트로서의 자신의 면모를 좀더 선명히 부각시킨다. 선배들이 즉흥연주 속에서도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주제의 흔적들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코드만을 좌표로 삼은 파커의 솔로는 새로운 세계 속으로 비상한다.

영화 <버드>는 파커의 시신(그는 34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을 실은 영구차가 낙엽 쌓인 비 젖은 거리를 홀연히 빠져나가며 담담하게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장면 위로 파커의 블루스 넘버 <Parker’s Mood>가 흐르는데 이때 나는- 무척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형언할 수 없는 전율에 휩싸였다. 흔히 듣던 파커의 알토 연주가 아닌 보컬이, 그것도 파커가 남긴 그 ‘요철기복’의 선율을 그대로 살린 채 가사 한자 한자가 그 위에 얹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절묘한 노래에서 필자는 맨해튼 트렌스퍼에게서 그저 무심히 들었던 보컬리즈(vocalese, 흔히 모음창법을 의미하는 vocalise와는 다르다)의 매력을 뒤늦게 깨우친 것이다(하지만 <버드>의 사운드트랙에는 아쉽게도 보컬버전이 아닌 파커의 연주만이 담겨 있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킹 플레주어로, 그의 60년 음반 <Golden Days>(하이파이 재즈)는 제목처럼 그의 대표곡들을 망라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음반에는 <Parker’s Mood> 외에도 그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Moody’s Mood for Love>를 담고 있는데 이 곡 역시 스탠더드 넘버 <I’m in the Mood for Love>를 완전히 뒤틀어버린 알토 색소폰 주자 제임스 무디의 전설적인 49년 녹음을 텍스트로 삼아 여기에 가사를 붙인 노래다.

고전의 위엄, <라운드 미드나잇>

약물로 파멸된 찰리 파커의 모습은 1940∼50년대 재즈 뮤지션들 사이에서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약물은 60년대 록 뮤지션들에게서처럼 아주 ‘당연한 문화’였기에 우리는 베르트낭 타베르니에 감독의 86년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에서 인생의 벼랑에 몰린 또 한명의 재즈 뮤지션을 만나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 데일 터너는 비록 실존했던 인물은 아니지만 그의 이야기는 역시 술과 약물로 자신의 삶을 파멸시키고 유럽에서 긴 시간을 유배해야만 했던 레스터 영과 버드 파웰(타베르니에는 이 영화를 이 두 사람에게 바쳤다)의 실제 이야기를 수시로 교차시킨다. 그리고 비슷한 인생의 굴곡을 맛본 테너맨 덱스터 고든이 그 역할을 맡아 영화의 진실성은 매우 각별했다.

이 영화의 타이틀이자 주제곡이기도 한 셀로니오스 몽크의 작품 <라운드 미드나잇>(Round Midnight)은 재즈 발라드의 최고 걸작이란 찬사가 붙을 만큼 수많은 연주자들의 손이 거쳐간 스탠더드 중 스탠더드다. 사운드트랙에는 바비 맥퍼린의 스캣으로 담겨 있지만 마일즈 데이비스 5중주단의 55년 녹음 <Round About Midnight>(콜럼비아)은 이 곡을 실질적인 스탠더드 넘버로 만든 기념비적인 명연주다. 폭풍 전야의 적막과도 같은 마일즈의 트럼펫과 이후 격랑을 몰고 오는 존 콜트레인의 테너가 빚어내는 극적인 대조는 이후 수많은 ‘모방품’들이 범접할 수 없는 고전의 위엄을 지니고 있다.

<라운드 미드나잇>의 음악감독을 맡은 허비 핸콕은 이 영화를 위해 너무도 아름다운 발라드 넘버 하나를 만들었는데 극중에서는 테일 터너가 그의 어린 딸을 위해 작곡한 것으로 되어 있는 <Chan’s Song>이다. 이 곡은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많은 연주자들이 녹음으로 남겨 점차 스탠더드가 되어가는 추세인데, 사운드트랙에 실린 바비 맥퍼린의 스캣도 아름답지만 영화에 직접 출연했던 바이브라폰 주자 바비 허처슨의 98년 음반 <Skyline>(버브)에 실린 연주는 그 담백함이 일품이다. 느린 전주로 시작하여 원곡의 아름다움을 지키되 작품의 감상(感傷)에 크게 기대지 않고 후반으로 갈수록 그루브를 살려낸 것은 이 연주의 큰 매력이다.

♣ 셀로니오스 몽크의 <라운드 미드나잇>은, 마일즈 데이비스 5중주단의 55년 녹음 <Round About Midnight>으로 인해 명실상부한 최고의 스탠더드 넘버로 자리잡았다.

♣ <Goodbye pork pie Hat>은 레스터 영이 파리에서 돌아오자마자 세상을 떠났을 때 밍거스가 그를 추모하며 만든 진혼곡이다.

♣ 64년 녹음한 <A love Supreme>은 존 콜트레인이 만년에 신께 바친 일종의 고해성사와 같은 곡으로, 콜드레인의 정점을 들려준다.

재즈의 흥분, 그 극한 <모 베터 블루스>

알코올과 약물의 상흔이 깊이 패어 있는 재즈계가 오늘날 이들의 유혹으로부터 철저히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스파이크 리 감독의 90년 영화 <모 베터 블루스>의 주인공 블릭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마살리스 형제들로 상징되는 80∼90년대 재즈 뮤지션의 스마트한 위상은 전혀 뜻밖의 함정을 통해 위기로 빠져들 수도 있다. 그것은 인생에 화려한 절정 뒤에 매복하고 있는 오만과 우유부단이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음반은 브랜포드 마살리스와 빌 리(스파이크의 아버지)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지만 사실 영화 속에는 사운드트랙에 담기지 않은 중요한 재즈의 고전 두곡이 등장한다. 그 첫 번째 곡은 청부업자들의 폭행으로 입술이 터진 블릭이 병원에 누워 있는 장면에서 흐르는 찰스 밍거스의 59년 작품 <Goodbye Pork Pie Hat>이다. 밍거스의 음반 <Mingus Ah Um>(콜럼비아)에 실린 곡으로, 그해 레스터 영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돌아오자마자 세상을 떠났을 때 밍거스가 그를 추모하며 만든 진혼곡이다. 흑인 교회적인 작품의 분위기는 다분히 밍거스다운 것이지만 부커 어빙의 그답지 않은 부드러운 테너 사운드는 확실히 레스터 영에 대한 애잔한 오마주다. 이보다 조금 더 격렬하게 빅밴드 편성으로 녹음한 63년 버전(임펄스 레코드의 음반 <Mingus Mingus Mingus>에 실려 있다)도 훌륭하지만 오리지널 버전에서 묻어나는 그 허무는 자꾸 그곳으로 손이 가게끔 만든다.

♣ 아프로-쿠반 재즈의 고전 <Manteca>의 최고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57년 디지 길레스피의 실황음반 <Dizzy Gillespie at Newport>.

♣ 런던에서 망명을 시도했던 당시의 아루투로 산도발과 길레스피 빅밴드와의 연주가 실린 <Live at the Royal Festival Hall>.

♣ 빅밴드 레코딩의 가장 이상적인 구현이라 할 수 있는 <Chairman of the Board>. 좌우 채널을 통해 팽팽하게 맞서는 색소폰과 트럼펫 섹션의 대칭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두 번째 고전은 존 콜트레인의 64년 모음곡 <A Love Supreme>(임펄스)의 첫 번째 악장 <Acknowledgement>다. 이 곡은 방황하던 블릭이 진실했던 여인 인디고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영화의 종반부에 흐르는데(이 음반의 표지는 대형 사진이 되어 블릭의 거실에 걸려 있다), 약물의 위기로부터 새로운 삶의 길을 발견한 콜트레인이 만년에 신께 바친 일종의 고해성사란 점에서 절묘한 감동을 준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음반을 통해 전체 악장을 온전히 들었을 때 느낄 수 있다. 약 33분에 이르는 이 모음곡은 구도의 숭고함 속에서도 재즈의 흥분을 끝까지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콜트레인 음악의 정점을 들려준다.

비장한 열기 <리빙 하바나>

<라운드 미드나잇>이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재즈 뮤지션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면 <리빙 하바나>(원제는 <For Love or Country>)는 재즈가 금지된 땅에서 재즈를 열렬히 사랑한 한 연주자의 모습을 담고 있는 영화로, 쿠바 출신이자 90년 미국으로 망명한 재즈 트럼펫 주자 아르투로 산도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산도발 자신이 직접 음악을 담당한 영화다. 그가 망명 이전부터 미국 재즈계에 그 이름을 알렸던 것이 찰리 파커와 함께 모던재즈를 창조했던 디지 길레스피의 협력 덕분이었기에 이 영화에는 그의 음악이 다수 등장하는데 특히 영화 도입부를 장식한 길레스피의 작품 는 압도적이다. 47년에 작곡된 이 아프로-쿠반 재즈의 고전을 길레스피는 여러 차례 녹음했지만 그중에서 57년 실황음반 <Dizzy Gillespie at Newport>(버브)에 담긴 연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리 모건, 베니 골슨, 윈튼 켈리 등 당시 ‘젊은 사자’들로 이뤄진 그의 빅밴드가 뿜어내는 열기는 쿠반 재즈의 표본, 바로 그것이다(분명히 말하지만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음악은 너무도 훌륭한 쿠반 음악이긴 해도 쿠반 재즈는 결코 아니다). 아울러 영화의 마지막 부분, 산도발은 길레스피 빅밴드와의 유럽 투어에 참여해 런던에서 망명을 시도하는데 당시 긴장과 번민에 휩싸였을 산도발의 연주는 디지 길레스피의 90년 음반 <Live at the Royal Festival Hall>(엔자)에 그대로 담겨 있다. 영화를 본 뒤 다시 음반을 들었을 때 느낀 것이지만, 산도발의 연주는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비장한 열기를 곳곳에서 토해낸다. 이렇듯 영화는 음악을 새롭게 듣도록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90년대 최고의 재즈 사운드트랙 <캔자스 시티>

에서 방영된 특집 프로그램의 음원을 CD에 담은 <The Sound of Jazz>에서 지미 러싱의 명연으로 <I Left My Baby>를 들을 수 있다.

로버트 알트만의 95년 영화 <캔사스 시티>는 재즈에 관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도 재즈와 재즈 연주장면이 비중있게 쓰인 영화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여러 장면들은 공황기 재즈의 새로운 메카로 떠올랐던 캔자스 시티에 대한 아주 그럴싸한 허구적 고증(?)으로 재즈팬들을 열광시킨다. 예를 들어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클럽 유리창에 붙어 있는 “재즈의 전쟁, 콜맨 호킨스 대 레스터 영”이란 제목의 포스터는 34년 캔자스 시티에서 벌어졌던 두 명인의 전설적인 철야 연주대결을 근거로 한 것이며 흔치 않은 여성 피아니스트의 등장, 그리고 열띤 테너 색소폰들의 각축은 당시 캔자스 시티의 명인들이었던 메리 루 윌리엄스, 벤 웹스터, 허셸 에반스를 한눈에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진짜 기막힌 장면은 뚱뚱한 몸집의 가수 한명이 무대가 아닌 바 안쪽에서 <I Left My Baby>를 부르는 장면으로, 이 모습은 역시 이 중서부 도시 출신의 가수 조 터너와 지미 러싱(이들은 모두 거구였다)이 바텐더 혹은 햄버거 가게 종업원이었다는 숨겨진 사실을 정확히 끄집어낸다.

단언하건대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90년대 발매된 수많은 재즈음반 가운데서 손에 꼽힐 명반이다(아직 들어보지 못한 재즈팬이 있다면 반드시 들어보라!). 특히 케빈 마호가니가 부른 <I Left My Baby>는 캔자스 시티의 걸쭉한 블루스 잼세션이 아직 살아 있음을 들려준다. 하지만 이 곡의 원래 주인인 지미 러싱도 이에 못지않은 명연을 남겼는데, 57년 <CBS>에서 방영된 특집 프로그램의 음원을 CD에 담은 <The Sound of Jazz>(콜럼비아)에 이 연주가 실려 있다. 여기에는 카운트 베이시를 비롯해 레스터 영, 콜맨 호킨스, 로이 엘드리지 등 스윙시대를 호령했던 명인들이 대거 등장해 그들의 유장한 솔로를 들려준다.

<캔자스 시티>에서 재즈팬에게 인상적이었던 또 하나의 장면은 대리모가 되기 위해 이 도시를 찾아왔다가 길을 잃은 한 흑인소녀를 고적대의 흑인소년이 늦은 밤 재즈클럽으로 데려가는 대목이다. 이때 이 소년은 소녀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저기 저 사람이 레스터 영이야.” 그리고 이때 카메라는 레스터의 사운드를 90년대로 이어간 테너맨 조슈아 레드먼을 클로즈업한다. 이 장면에서 연주되는 곡은 캔자스 시티 재즈를 대표했던 명곡 <Moten Swing>으로, 이 곡은 20년대 후반부터 이곳을 장악했던 베니 모텐의 곡이지만 이 곡을 널리 알린 인물은 복마전과 같았던 캔자스 시티 재즈계의 최후 승자 카운트 베이시였다. 그는 이 곡을 여러 번 녹음했다. 하지만 58년 음반 <Chairman of the Board>(룰렛)에 담긴 연주는 그야말로 빅밴드 레코딩의 가장 이상적인 구현이라 부를 만한 호연이다. 좌우 채널을 통해 팽팽하게 맞서는 색소폰과 트럼펫 섹션의 대칭은 재즈 오케스트라의 매력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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