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과학은 피라미드로 통한다
인류의 발전 단계는 흔히 사용된 도구의 소재를 기준하여 석기·청동기·철기 시대로 구분한다. 이들 소재는 도구로서뿐 아니라 건축과 토목의 재료로도 사용됐는데 이 경우에도 돌의 사용이 가장 빨랐다. 이는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피라미드와 스톤헨지, 고인돌과 같은 거석(巨石) 축조물로 증명된다.


인류 최초의 건축 재료가 돌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주위에 흔한 것을 이용해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적절하게, 때로는 교묘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주어진 것을 욕구에 맞게 쓸 줄 아는 존재이기에 건축과 토목작업을 벌일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돌 가운데서도 거석을 이용한 거석 축조물은 권력을 상징한다. 오직 권력자만이 거석을 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석은 지극히 물질적인 것이지만 그것으로 만든 축조물은 희한하게도 추상성을 띤다. 대지를 딛고 우뚝 솟아있는 피라미드를 보면 고딕 첨탑에서처럼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염원을 느끼게 된다. 권력자는 자신이 하늘의 자식(天子)이며, 자신이 죽으면 하늘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거석 축조물 모두가 권력자의 무덤으로 사용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추상 형태는 그 속에 뭇 상징을 담고 있다. 그래서 신비스레 보이며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삼각법을 고안한 피타고라스(기원전 582~497)는 고대 이집트의 척도를 일러 “자연에서 구한 것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했고, 영국의 존 그리브스(1602~1652)는 피라미드의 계단 수와 밑변의 길이를 실측한 공으로 옥스퍼드대학 천문학 교수가 됐으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1642~1727)은 피라미드 축조 당시의 길이 단위인 큐빗(cubit)에 관심을 갖고 지구의 둘레 등을 계산하려 했다. 또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 중 피라미드 내부로 수행원 없이 혼자 들어가 한동안 머문 적이 있었다. 그는 그때 운명의 계시를 받았다고 했다.

실로 수많은 학자, 군인이 피라미드에 다가가 신비한 축조물의 길이와 경사각, 내부의 중력 등을 측량했고 또 내부 구조를 샅샅이 살폈다. 그 결과 ‘피라미드학(Pyramidology)’이란 학문이 태어났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피라미드에 관한 지식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것도 아니고, 한두 사람이 연구하고 실측해 나온 결과도 아니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이 현장이나 연구실에서 노력한 결과다.

○ 동서남북 4방향 정확히 가리켜
생소하게 들리는 피라미드학에는 천문학과 지리학, 측지학, 지질학, 수학, 기하학, 건축학, 토목공학, 점성학, 물리학, 도량형학, 유전학, 연대학, 원주율, 황금분할 등 온갖 과학과 기술이 포함된다. 심지어 현대의 미터(m)법도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터법의 종주국은 프랑스다. 프랑스혁명 직후 새로운 국제계측단위를 만들자는 주장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당시 유럽에선 메소포타미아 원산의 인체를 기준으로 한 야드·파운드가 통용되고 있었고, 동양에선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면서 정비한 척관법(尺貫法)을 사용하고 있었다. 탈레랑 페리고르는 “이런 것으로는 정밀성에 문제가 있다”면서 1790년 지구의 크기를 기준으로 한 미터법을 제정할 것을 주창했다.

그는 이를 위해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길이를 구한 다음 그 1000만분의 1을 1미터로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가까스로 합의는 얻어냈으나 시행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875년에야 국제미터조약이 체결됐고 백금제 미터 원기(原器)는 1889년에 제작됐다. 그러나 미터법의 수리체계와 그 바탕이 되는 십진법은 고대 이집트에서 따왔다.

근대 유럽이 계측 단위로, 또 셈법의 하나로 채택한 십진법은 고대 이집트인이 가졌던 지식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만큼 그들의 지식은 대단했다. 무한한 영생을 유한한 정밀함으로 표현하고자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카이로 교외의 황량한 기자(Giza) 대지 위에 서 있는 피라미드는 정사각형의 밑면에 네 개의 삼각형이 에워싼 사각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삼각형은 고대 이집트인에겐 우주질서를 상징했다. 그런 만큼 피라미드는 거대하다. 피라미드의 어원이 되는 ‘퓨라미스’(‘본받는다’는 뜻)는 고대 그리스인이 부르던 이름이고 정작 고대 이집트인은 ‘높은 곳’이란 의미로 ‘메르(mer)’라 불렀다.

셀 수 없이 많은 돌(약 230만개)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지은 피라미드는 밑면 한 변이 230m, 높이가 146.5m에 이르는 하나의 산이다. 경사각은 51도52분이라 안정감이 있으며 밑면의 각 변은 동서남북 네 방위를 정확히 가리킨다. 거기다 서로간의 오차도 0.1% 미만이라 정밀함에 있어선 현대 건축물을 뛰어넘는 완벽을 과시한다.

이런 이유로 대니켄 같은 일부 학자는 외계인 축조설을 주장했다. 크레인과 드릴, 헬리콥터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가 없던 시절이라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피라미드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란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몇 백 년 전부터 마스타바 분묘(탁자 모양의 무덤), 굴절식 피라미드(상부와 하부의 경사각이 서로 다른 것), 계단식 피라미드 등 단계적으로 발전해오다 기원전 2500년경 쿠푸 왕 때 지금의 대피라미드가 탄생됐다. 기자 대지에는 대피라미드 외에도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 등이 남아 있지만 쿠푸 왕의 것이 가장 크다.

피라미드 작업에 동원된 천문학과 수학, 기하학, 토목공학 등은 물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매년 반복되는 나일강의 범람에 대비하여 토목과 관개기술을 숙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건 생존방안이었다. 예로부터 대피라미드는 홍수 등 지구에 다대한 영향을 미치는 천체의 변동을 기록하기 위해 축조됐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파라오(이집트의 왕)는 그걸 위해서라도 권좌에 오르면 피라미드 축조부터 서둘렀다. 토목공사야말로 인간 지혜의 총화가 아니던가.

그들은 길이 단위인 큐빗의 사용에 앞서 저울을 만들어 신전에 바칠 봉납품의 무게를 달았고, 1년을 365일로 하는 달력도 사용하고 있었다. 단위와 측량 면에선 그 어느 민족보다도 앞섰다.

○ 노동자 무덤들도 눈여겨 살펴야
피라미드학에 있어 현재 최고의 권위자라 평가받고 있는 미국 시카고 대학의 마크 레너 교수는 “이집트인이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가 이집트를 건설했다”고 말할 정도다. 파라오는 인력을 적절히 배치하고 시간을 철저히 관리했으며 다친 사람이 생기면 즉각 치료해주는 응급 의료서비스 체제를 갖추었고 필요한 자재를 확보·동원하는 데도 빈틈이 없었기에 무사히 완성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파라오는 고대 세계 최고의 CEO였다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이를 두고 피라미드 축조는 절대 강제노동의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가 많다. 모두가 고루 잘 살기 위한 작업이었다면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설령 파라오의 개인 무덤을 축조하는 작업이었다 해도 그랬을 것이다. 파라오는 영생한다고 믿었으니 영혼은 육신의 죽음과는 관계없이 영원할 것이다. 그건 파라오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영혼이 불멸한다고 믿었기에 문명을 창조하고 또 기쁜 마음으로 이승에서의 삶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보다 더 큰 사람의 에너지를 어디서 달리 찾을 수 있겠는가. 기계적 정밀함까지 갖춘 피라미드는 그래서 탄생되었다.

경제학자들은 한 나라의 경제가 이륙단계에 접어들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경제만이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전환하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까. 인류는 그 에너지를 영혼불멸의 신앙에서 얻었다고 하면 너무 자의적인 해석일까?

피라미드를 방문할 때 잊지말아야 할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피라미드만 보지 말고 주위에 흩어져 있는 장제전(葬祭殿)과 하안(河岸)신전, 스핑크스, 복원시켜 놓은 ‘태양의 배’와 노동자의 무덤도 눈여겨 살펴야 한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피라미드 내부에까지 들어가(별도의 입장권이 필요하다) 대회랑과 텅 빈 석관만 남아있는 ‘왕의 방’, 그리고 그 방 상부에 양쪽으로 난 환기구멍도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피라미드가 담고 있는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함께 볼 수 있다.
 
[자료출처: 주간조선(권삼윤 역사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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