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로 통하는 ‘모든 길’의 모체
문명은 인류가 정착단계에 진입하면서 창조됐다. 그게 농경의 시작이었다. 인류는 정착에 성공하자 행동반경을 점차 확대했고, 이(異)문화와의 교류 폭도 넓혀갔다. 이러한 대단위 공간이동은 문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문명은 점이 아니라 선으로 확장됐던 것이다.

공간이동은 바퀴의 발명과 길의 건설이라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것이다. 바퀴는 문명의 발상과 궤를 거의 같이 하지만 길, 보다 정확히 말해서 간선도로의 건설은 기원전 6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페르시아제국에 의해 이루어졌다.

길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다니면 생겨난다. 길은 자연발생적이다. 그러나 간선도로는 인공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르단의 ‘왕의 길(King's Highway)’과 페르시아제국이 왕도(王都) 수사(Susa)에서 소아시아의 서쪽 끝인 사르데스까지 닦은 장장 2600㎞의 포장도로다. 요르단의 ‘왕의 길’이 아카바에서 암만을 잇는 남북 간 도로라면 페르시아의 길은 동서 간 이동로였다.

길과 길을 서로 연결시켜 마치 인체에 피를 돌게 하듯 광대한 영역을 유기적으로 묶는 도로망(길의 네트워크)은 로마인에 의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다.

길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로마제국 최초의 간선도로는 집정관 아피우스 클라디우스 카우쿠스의 명에 따라 기원전 312년에 완공된 ‘비아 아피아(Via Appia, 아피아 가도)’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손에 넣었던 로마는 처음에는 로마에서 카실리움(지금의 카푸아)까지 50㎞만 닦았으나 점차 연장하여 기원전 240년에는 아드리아해의 항구도시 브린디시움(지금의 브린디시)까지 540㎞ 길이의 간선도로를 완공했다. 완주하는 데만 무려 13일이 걸렸다고 한다.

길이로만 보면 로마의 아피아 가도(街道)가 페르시아의 ‘왕의 길’보다 훨씬 짧다. 그런데도 아피아 가도가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이 훨씬 심대했다. 그것은 길의 건설에 동원된 공학적 기술이 월등히 뛰어난 데다, 그 길을 통해 도모하고자 한 목표가 그 이전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차라리 정용(政用)도로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다.

○ 속도·시야확보 위해 ‘곧은 길’ 닦아
로마인도 지금의 현대인처럼 길을 건설하기에 앞서 먼저 노선을 확정했다. 도로건설에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됐기에 원로원의 의결을 거쳤으며 가능한 한 곧게 닦았다. 43㎞를 일직선으로 닦은 구간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도시 한복판을 지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곳 주민도 길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였다. 물론 속력을 내는 데도 좋았다.

노폭은 마차 두 대가 지날 정도(4m 정도)였지만 동원된 공법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땅을 1~1.5m 깊이로 파고 그 바닥에 주먹만한 돌을 깔았다. 그런 다음 모래와 자갈, 잘게 부순 돌로 채웠다. 마지막으로 돌을 잘라서 서로 물리게 하여 움직이지 않도록 짜맞추되 가운데를 볼록하게 했다. 길 양쪽으로 도랑을 내 물이 잘 빠지도록 했고, 일정한 거리마다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페르시아와는 달리 가로수는 심지 않았다. 군용도로의 목적상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 정도의 노력을 기울인 길이었기에 그들이 대량수송을 위해 개발한 사륜마차도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었다.

또 페르시아의 예에 따라 일정한 거리마다 말을 바꾸어 타거나 쉬어갈 수 있는 역참을 두었다. 그걸 ‘스타치오네스(stationes)’라 불렀는데, 영어의 ‘스테이션(station:역)’은 여기서 나왔다. 한창 때는 한 스타치오에 말 40필을 준비해두었다고 하니 그들이 가도를 얼마나 중시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로마의 역사는 작은 영토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그후 수많은 정복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 세계 최대의 제국으로 성장했다. 제국에는 문화와 관습, 풍속이 서로 다른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았다. 이들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그리스인이 즐겼던 사변(思辨)철학이나 순수과학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것, 다시 말해 도로나 수도교를 짓는 토목기술, 건축이나 무기와 같은 응용과학, 그리고 행정제도와 법률, 교육, 의료 서비스, 우편제도 등과 같은 소프트 인프라를 더 필요로 했다. 그들은 끝까지 시민의 생활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모든 노력을 다했다. 이는 그리스인이 미학에 관심을 쏟은 것과 좋은 대비가 된다. 그런 만큼 독창적인 문화를 이뤄내는 데는 이렇다할 성과를 보이진 못했다.

길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익명의 다중을 위한 것이라 하여 사회간접자본, 즉 인프라라 부른다. 하지만 ‘인프라의 아버지’라는 로마는 인프라 대신 ‘몰레스 네케사리에’란 말을 사용했다. 이 말은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대사업’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토목공학 또는 토목기술은 요즘 유행하는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일 뿐 아니라 그 수준은 한 국가가 대국이 되느냐 못되느냐의 여부까지 결정한다.

아피아 가도는 로마인이 최고의 토목공학 기술로 만든 성과물이다. 로마에서 그리스나 이집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아피아 가도를 지나야만 했다. 아우구스투스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멸한 후 로마로 입성할 때 이 길을 통과했다. 그 후 꾸준한 유지·보수를 받았다고는 하나 2000년 넘게 그 모습을 유지하며 유럽 도로건설의 모델이 되어 주었으니 로마인이 이 길을 통해 얻고자 한 견고함과 편리함과 아름다움은 모두 성취했다고 볼 수 있겠다.

길은 사람과 물자의 통행을 위해 만든 물적 시설이다.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닦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 길을 통해 적이 쳐들어올 수도 있으므로 길을 지킬 자신이 있는 자만이 길을 건설할 수 있다. 로마는 그런 자신이 있었다. 아피아 가도가 지나는 지역은 한때 적이었던 민족이 살던 땅이었다. 그 길을 닦으면서 로마인은 그들을 포용하고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구상을 한다. 따라서 아피아 가도를 건설하지 못했다면 ‘팍스 로마노’(로마제국에 의한 평화체제)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피아 가도가 완성됐을 때에는 지중해도 그들의 영역이 됐다. 이는 지중해를 일러 ‘마레 노스트룸(우리들의 바다)’이라 부른 것으로도 증명된다. 지상의 길과 바다의 길, 이 모두를 손에 넣은 그들은 당시 선진 문화권인 서아시아와 그리스, 이집트를 자기네 영역으로 삼았다.

○ 대제국 수도이자 모든 길의 중심
동양의 강자 한(漢)왕조와는 실크로드를 통해 인적·물적·문화적 교류를 이루었다. 실크로드는 장건(張騫)이 기원전 139년 흉노를 제압하려던 한무제의 명에 의거, 대월지국(大月氏國)을 설득해 뚫은 길. 로마는 대제국의 수도이자 명실공히 모든 길의 중심, 요즘 말로 허브(hub)였던 것이다.

재미있게도 길에는 고정된 주인이 없다. 이용하는 자가 곧 주인이다. 로마가 융성할 때는 로마가 당연히 아피아 가도의 주인이었다. 서기 60년경 바울과 베드로가 유대 땅에서 일어난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겠다며 아피아 가도를 이용해 로마에 당도했다. 처음에는 복음이 로마 상류층의 이해와 상충되어 심한 박해를 받았다. 로마 남쪽의 연도에는 그 당시 박해받던 기독교의 흔적인 도미네 쿼바디스 교회(베드로가 환영 중에 예수를 만났다는 장소에 세웠다)와 성 세바스티아 교회(로마 황제의 친위대 장교였다 순교한 세바스티아를 기려 세웠다), 카타콤베(기독교도의 예배장소이자 공동묘지) 등이 남아있다. 이들의 피가 헛되지 않았는지 로마는 313년 기독교를 공인했다. 길은 이처럼 이용하는 자가 주인이다.

반도 내에만 동서남북으로 29개의 간선도로를 건설하는 등 길에 의해 발전을 거듭한 로마제국은 말기에 이르러선 총 8만㎞에 달하는 간선도로와 7만㎞의 지방도로를 보유하게 됐다. 속주(屬州)에 깐 도로까지 합하면 실로 엄청났다. 길은 로마인의 지배영역을 확장한 것만 아니라 사고의 지평까지 넓혔다. 대제국이란 군사력만 갖춘다고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비견되는 비전을 가져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곳에선 그 옛날 지축을 흔들었던 수레바퀴와 말발굽 소리, 군사들의 함성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습만은 남아있어 로마인이 추구했던 바가 무엇이었던가를 짐작케 한다. 그들이 닦은 길의 네트워크(오프라인 인프라)는 지금에 와선 정보통신(IT) 네트워크(온라인 인프라)로 발전하여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 그것도 실시간대로. 로마제국이 남긴 유산은 실로 엄청나다.
 
[자료출처: 주간조선(권삼윤 역사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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