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후(The Who)의 열정적인 보컬리스트 로저 달트리(Roger Daltrey)가 1944년 3월 1일 태어났다. 키스 문(Keith Moon), 피트 타운셴드(Pete Townshend), 존 엔트위슬(John Entwistle) 그리고 로저 달트리로 구성된 4인조 록 밴드 후(The Who)는 1965년 데뷔했다. 이들은 1960년대 중반의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과 모드(Mod) 무브먼트의 핵심적 밴드 중의 하나이며 록음악 사상 가장 창의적이고 파워풀한 록 밴드 중 하나로 기록된다. 후의 음악은 여타 록 밴드들과는 달리 피트 타운셴드의 기타에 리듬 섹션의 기본을 두고 키스 문의 베이스 기타와 존 엔트위슬의 드럼이 각각 즉흥 연주를 펼치는 독특한 스타일이었으며, 로저 달트리의 보컬 역시 이들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데 한 몫을 했다. 피트 타운셴드가 작곡한 'The Kids Are Alright'이나 'My Generation' 같은 곡들은 10대들의 찬가가 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록 오페라인 는 평단과 대중들로부터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들은 1978년 9월 7일 키스 문이 약물 과용으로 31세의 나이에 사망한 후 새로운 드러머를 맞이해 사운드트랙인 [The Kids Are Alright]과 [Quadrophenia] 등을 냈고 계속 활동을 이어갔으나 결국 1983년 해체되었고 1984년에 마지막 앨범 [Who's Next]를 발표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걸쳐 잠깐씩 재결성, 미국 투어를 갖기도 했다

모드의 대변인

모드(mods)란 모더니스트의 줄임말로, ’60년대 영국 젊은이들의 과격한 하위 문화를 상징하는 용어다. 모드는 영국 중산층 이하의 젊은 노동자들이 TV와 고급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서 유혹적으로 선전되는 값비싼 것들을 향유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소외감을 독특한 복장에 의한 욕구 불만의 발산으로 해소하려 한 것. 그들은 하층민이면서 가죽 옷에 모터 사이클을 즐겼던 로커(rocker)와는 달리 짧은 머리에 최신 유행의 스마트한 옷을 입었고 모터 스쿠터를 즐겨 탔다. 또 모드족은 정규직을 유지하고 스쿠터를 타면서 암페타민이라는 각성제를 복용했다. 이들의 대변인이 바로 록 밴드 후(The Who)였다. 후는 1965년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모드족의 송가 'My Generation'을 발표했다. 그 곡의 '늙기 전에 죽고 싶다'라는 과격한 가사는 청춘과 기성 세대와의 분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색소폰 주자인 아버지와 교향악단에서 노래를 하던 어머니로부터 음악적인 영향을 받은 어린 피트 타운셴드(1945년 5월 19일 생)는 팝 스타가 되기를 꿈꾸며 기타 연주에 몰두했던 학생이었다. 중학교 시절 존 엔트위슬(1944년 10월 9일 생)과 컨페더리츠(Confederates)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연주를 했던 피트는, 이미 열 세 살 때 기타 소리가 시끄럽다는 할머니의 꾸중을 듣고 기타를 부순 경력을 가지고 있다. 1962년, 동급생인 로저 달트리(1944년 3월 1일 생)를 끌어들인 이들은 더그 샌덤(Doug Sandom)이라는 드러머와 디투어스(Detours)를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한다. 1964년은 밴드에게 중요한 해이다. 그들에게 모드의 세계를 알려준 프리랜서 정치평론가 피트 미든(Pete Meaden)을 만났으며 새로운 드러머 키스 문(1947년 8월 23일 생)이 밴드에 들어온 것이다. 피트 미든은 그룹의 이름을 하이 넘버스(High Numbers)로 바꾼 후 <폰타나(Fontana)> 레이블과 싱글 계약을 이루었고, 결국 밴드의 첫 싱글 ‘I'm The Face'가 발매되었다. 같은 해 9월, 키트 램버트(Kit Lambert)와 새로운 매니지먼트 계약을 이룬 밴드는 그룹명을 후로 바꾸고 매주 화요일마다 유명한 마키 클럽(Marquee Club)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1965년 1월, 로부터 거절당한 데모 테이프를 들은 (킹크스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미국인 프로듀서 셸 타미(Shel Talmy) 밴드에 관심을 보였다. 그의 도움으로 <브런즈윅(Brunswick)> 레이블과 계약을 이룬 밴드는 곧 싱글 ’I Can't Explain'을 발매했고, 미국에서도 <데카(Decca)> 레이블을 통해 선보이게 된다. 이 곡은 영국 차트 8위를 기록하며 후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중년층과 상위 계급, 젊은 부부들에 반(反)하는’ 내용의 싱글 ‘Anyway, Anyhow, Anywhere'와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My Generation'을 탑 텐 차트에 올리며 인기를 누리던 이들은 같은 해 12월,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 [My Generation]을 발표한다. 이듬해인 1966년, 로버트 스틱우드(Robert Stigwood)가 새로이 설립한 레이블 <리액션(Reaction)>과 계약을 한 밴드는 다양한 콘서트와 방송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한다. 그리고 12월에 두 번째 앨범 [A QuickOne]을 발표하여 좋은 평가를 얻는다. 이제 이들의 위상은 미국 시장에서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고, 새로운 앨범 [The Who Sell Out]('67)에서 커트 된 싱글 ‘I Can See For Miles'는 미국에서 최초로 탑 텐 히트를 기록한 후의 작품이다. 히트 싱글 ’Magic Bus'를 비롯하여 라이브 음원들을 담은 앨범 [Magic Bus]('68)는 미국 차트 39위에 올랐다. '69년에는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최초의 록 오페라’ [Tommy]가 발표되었고, 밴드는 우드스탁(Woodstock Music & Art Fair)과 아일 오브 와이트(Isle Of Wight) 축제에 참여한다.
에디 코크런(Eddie Cochran)의 로큰롤 클래식을 리메이크한 싱글 히트곡 ‘Summertime Blues'가 수록된 라이브 앨범 [Live At Leeds]('70) 이후 이들은 더욱 강력하고 치밀한 연주로 가득한 걸작 앨범 [Who's Next]('71)를 공개한다. 앨범에 수록된 'Baba O'Riley', 'Bargain', 'Behind Blue Eyes', 'Won't Get Fooled Again', 'My Wife' 등의 곡들은 1970년대의 라디오에서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며 후의 대표적인 애청 곡이 되었다. 이들 최고의 히트 싱글들을 모아 놓은 컴필레이션 [Meaty Beaty Big And Bouncy]('71)은 영국 차트 9위와 미국 차트 11위에 올랐다. 이어지는 이러한 커다란 성공 이후 피트는 다시 한 번 대작컨셉트 앨범을 기획하기 시작하는데, 결국 1973년, [Tommy]에 이은 두 번째 록 오페라이자 더블 앨범인 [Quadrophenia]가 발표된다. 그러나 이 앨범의 발매 이후 그룹의 조직력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1975년에 발표된 [The Who By Numbers]는 전에 비할 수 없이 초라한 작품이었으며 3년만에 나온 [Who Are You]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 앨범의 발표 직후인 1978년 9월 8일, 후의 역동적인 사운드를 이루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드러머 키스 문이 알코올 중독의 치료를 위해 처방된 약물의 과다 복용으로 런던의 아파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후는 사실상의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밴드는 다시 일어서기로 했고 결국 스몰 페이시스를 거친 드러머 케니 존스(Kenney Jones)를 맞이하여 새로운 활동에 들어간다. 비정규 멤버인 키보드 주자 존 번드릭(John Bundrick)이 그룹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 즈음이다. 자신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사운드트랙 [The Kid Are Alright]('79)이 발표되었고 공연도 계속된다. 하지만 1979년 12월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을 시작으로 후는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미국 오하이오주의 신시내티에서 있었던 콘서트 도중 자리 때문에 몰려들던 관객들에 짓밟혀 11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후 발표된 두 앨범 [Face Dances]('81)와 [It's Hard]('82)는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만 증폭시켜주었을 뿐이다. 결국 1983년 12월, 후는 공식적으로 해체를 선언한다.
이후 밴드의 마지막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 [Who's Last]('84)와 B 사이드 트랙들을 모은 두 장의 컴필레이션 [Who's Missing]('85)과 [Two's Missing]('87)이 발표되었고, ‘89년에는 세 명의 오리지널 멤버들이 다시 뭉쳐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Join Together]('90)를 비롯한 다양한 컴필레이션 앨범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듯, 후의 진짜 모습은 키스 문의 죽음으로 멈추어져버린 시간의 문 안쪽에 존재한다. ’젊음‘에 유달리 집착을 보이던 밴드에게 그것은 차라리 다행스런 일일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My Generation'과 ‘The Kids Are Alright'과 ’I Can See For Miles' 등의 멋진 음악을 들려주는 후의 모습은영원한 젊음 속에서 한없는 에너지를 분출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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