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주 기타, 바로크 메탈의 시대를 열다

’80년대 초반 레인보우에서 밀려난 개성파 보컬리스트 그레이엄 보넷은 자신의 그룹 알카트라츠를 조직하면서 새로운 기타리스트를 찾고 있었다. 그의 눈에 띈 인물은 스틸러라는 4인조 그룹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스웨덴 출신의 젊은이였다. 그레이엄 보넷은 바로 그 잉베이 맘스틴을 기타리스트로 맞아들여 알카트라츠를 출범시켰고 그는 많은 록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지미 헨드릭스, 리치 블랙모어에게서 영향을 받은 프레이즈에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빠른 연주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결국 그의 인기는 그룹의 리더 그레이엄 보넷을 뛰어 넘었고 ’84년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고향에서 함께 활동하던 뮤지션들을 맞이해 자신의 그룹 라이징 포스로 전곡 인스트루멘틀화를 시도한다. 총 8곡 가운데 2곡만 보컬이 삽입된 데뷔 앨범은 이례적인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가 추구한 클래식과 록의 결합은 바로크 메탈이라는 새로운 독립 서브 장르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잉베이 맘스틴은 많은 멤버 교체와 개인적인 일들을 겪으면서도 이후 꾸준히 활동을 펼쳐왔다. 그의 연주에 충격을 받은 많은 기타리스트 지망생에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게 했고 후배 기타리스트들이 연이어 데뷔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기타 사에 한 획을 그은 동시에 꺼져가는 기타 음악에 불을 지핀 업적은 지금까지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제는 세월이 너무 흘러, 또는 유행의 흐름과는 전혀 관계없이 변함없는 음악을 구사해서 식상한 점도 있지만 그의 빠르고 날카로운 기타 연주는 록 음악과 일렉트릭 기타사에 거대한 산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잉베이 맘스틴이 처음 등장했을 때 헤비 메탈계는 거의 난리가 났었다. 지금은 그 정도 속도로 연주하는 사람이 많지만 '80년대 당시로서는 거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물론 이전까지 일렉트릭 기타사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지미 헨드릭스, 리치 블랙모어, 토니 아이오미, 에릭 클랩튼, 제프 벡, 밴 헤일런, 등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베이 맘스틴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그가 속주 뿐 아니라 바로크 메탈이라는 장르도 대중화시킨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밴 헤일런 같은 사람은 라이트 핸드 주법을 발명해 기타사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미국적인 팝 메탈을 구사했기에 음악적으로는 그다지 높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바로크 메탈이라는 장르가 유행이 지나 고리타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잉베잉 맘스틴이 유행시킨 바로크 메탈은 멜로딕 스피드, 프로그레시브 메탈, 멜로딕 데스 등에 고르게 침투해 없어서는 안될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아직까지도 자신의 음악성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활동을 펼치는 잉베이 맘스틴이야 말로 '90년대 유럽권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록 음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잉베이 맘스틴은 '6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그 역시 다른 기타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지미 헨드릭스의 열정적인 공연 모습을 보고 기타에 빠지게 되었다. 그가 한창 기타를 칠 때엔 10대 초반 3년이라는 기간 동안 하루에 8시간 이상씩 매일 기타를 쳤다고 하는데 연습을 안하고 이틀을 넘긴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타를 잡고, 또한 자기 전에 기타를 연습하지 않으면 스스로로를 책망할 정도로 광적인 연습벌레였다고 한다. 그는 지미 헨드릭스와 리치 블랙모어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15세가 되기 이전에 이들을 완전히 마스터하고 독자적인 기타 플레이 스타일을 구축해 나갔다.
그가 16살 때에 라이징 포스(Rising Force)를 결성해 4트랙 짜리 데모 테이프를 완성해 슈라프넬의 대표이자 당시 많은 속주 기타리스트를 발굴했던 마이크 바니에게 보냈다. 마이크 바니는 그의 기타 연주에 반해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기타 플레이어'지에 잉베이를 소개했다. 그리고 잉베이를 불러들여 킬(Keel)의 보컬리스트였던 론 킬(Ron Keel)이 이끌었던 스틸러(Steeler)에 소개해 주었다.
잉베이는 스틸러에 가입하여 '83년에 STEELER를 발표하고는 팀을 탈퇴한다. 여기서 그는 리치 블랙모어, 마이클 솅커 등 최고의 기타리스트들과 작업한 그레이엄 보넷을 만나 알카트라즈(Alcatraz)에 가입한다. 여기서 '84년 데뷔작 NO PAROLE FROM ROCK 'N' ROLL과 라이브 앨범 LIVE SENTENCE 등의 앨범으로 그의 탁월한 실력을 세상에 알렸다. 약 1년 정도 알카트라즈에 머물다 탈퇴한 잉베이 맘스틴은 같은 해인 '84년에 자신의 밴드인 라이징 포스를 부활시키고 데뷔 앨범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바로크 메탈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 YNGWIE MALMSTEEN'S RISING FORCE였다. 이 작품은 당시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정도로 파급 효과가 컸으며 많은 추종자군을 만들게 했다. Far beyond the sun, Black star 등의 탁웍할 연주들이 삽입된 이 앨범은 '85년의 2집 앨범 MARCHING OUT과 '86년 3집 TRILOGY, '88년 4집 ODYSSEY 등으로 이어지면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뮤지션으로서의 명성을 드높였다. 그리고 '89년에 발표한 5집이자 라이브 앨범인 TRIAL BY FIRE: LIVE IN LENINGRAD는 그의 그런 명성을 재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메탈이라는 장르가 쇠퇴기를 맞으면서 잉베이의 명성도 잊혀져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잉베이의 창작열을 앗아가지는 못했다. 잉베이는 '90년 6집 앨범인 ECLIPSE를 발표하고, '91년에는 7집이자 베스트 앨범인 THE YNGWIE MALMSTEEN COLLECTION을 발표하고 '92년 8집에는 FIRE AND ICE를 발표했다. 잉베이는 이 앨범이 빌보드지 121위에 오른 것을 끝으로 빌보드지와 결별(?)한다. 하지만 그는 '94년에 포니 캐년과 손잡고 아홉번째 앨범인 THE SEVENTH SIGN을 내놓았다. 거의 매 앨범마다 보컬리스트를 교체했던 그는 이 앨범에서 일본의 헤비 메탈 밴드인 라우드니스가 세계 시장에 도전하면서 영입했던 보컬리스트 마이클 베세라를 가입시켰다.
전형적인 잉베이 스타일인 Never die와 아름다운 발라드 Mean to be 등을 수록한 이 앨범은 그의 마니아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특히 Angel in heat이라는 트랙에서는 최초로 잉베이가 보컬을 담당하기도 했다.
'95년에는 10번째 정규 앨범 MAGNUM OPUS을 발표하는데 여기에서는 잉베이의 화려한 플레이를 만끽할 수 있는 Vengeance와 비장미가 흐르는 연주곡 Amberdawn 등이 사랑을 받았다.'96년에 잉베이는 그가 자라면서 영향을 받았던 곡들을 모은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한다. INSPRIATION이라 명명된 이 앨범에서 그는 마이크 볼즈, 조 린 터너, 제프 스코트 소토 같은 그와 함께 했던 보컬리스트를 초빙하여 완성했다. 이 앨범은 그의 음악적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명확하게 알려준 앨범인데, 딥 퍼플의 곡이 Pictures of home, Mistreated, Demon's eye, Child in time 등 무려 네 곡이나 수록되어 있고, 그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레인보우의 Gates of babylon을 수록했다. 또한 그가 기타를 연주하게끔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지미 헨드릭스의 Spanish castle magic과 Manic depression을 실었고, 그외 캔사스, UK, 스콜피온스, 러시 등의 곡을 선곡했다.
'97년에는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와 그는 FACING THE ANIMAL을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에서는 전설적인 드러머인 코지 파웰이 참여했고, 보컬에 매츠 레빈이라는 신예가 참여했고, 프로듀서로는 크리스 탕가리스가 참여했다(크리스 탕가리스는 얼마 전 신해철의 솔로 앨범에 참여하고 내한하여 공연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적 성과로 볼 때 이 음반은 Like an angel-for April 등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다지 만족할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지난해에 잉베이는 2종의 앨범을 내는데 하나는 TRIAL BY FIRE : LIVE IN LENINGRAD 이후 10년만의 라이브 앨범 LIVE!!이고, 다른 하나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앨범인 CONCERTO SUITE FOR ELECTRIC GUITAR AND ORCHESTRA IN E FLAT MINOR OP.1이었다. 전작은 13년에 걸친 잉베이의 솔로 프로젝트를 정리하는 음반으로 2CD에 걸쳐 초기 곡과 최근 곡이 잘 선곡되어 실려있었다. 그리고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체코의 유일한 국립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인 후자는 잉베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프로젝트의 실현이었다. 조곡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앨범에서 잉베이는 순수 클래식 앨범이라 봐도 무방할 멋진 앨범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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