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92년 4월 24일 데이빗 보위와 패션 모델 이만(Iman)이 스위스에서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이 사실은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데이빗 보위는 영국 팝계에 가장 오래, 가장 크고도 다양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포크에서 글램 그리고 댄스에서 일렉트로니카까지, 패션과 트렌드에 발빠르게 순응하는 카멜레온이었다. 본명이 데이빗 로버트 존스인 데이빗 보위는 10대 시절 콘라즈, 킹 비즈, 데이빗 존스, 버즈 로워, 써드등의 밴드에서 활동했다. 그 중 매니쉬 보이스라는 밴드에는 지미 페이지가 기타리스트로 재적하기도 했는데 67년, 그간의 싱글들을 모아 셀프 타이틀 앨범을 발표하면서 뮤지션으로 데뷔했다. 얼마 후 [Man Of Words/Man Of Music]을 발매하는데 이 앨범은 오랜 친구이던 티 렉스의 마크 볼란이 그의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를 소개시켜주면서 글래머러스한 포크 록을 선보였다. 보위는 이 때부터 믹 론슨과도 교류를 시작했고 71년에는 [Hunky Dory]를 발매하는데 여기에는 미국 음악 특히 뉴욕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그의 관심이 반영되어 있었고 믹 론슨과 더불어 키보디스트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이 녹음에 참여했다. 72년 발매한 글램 록 걸작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에서 그는 자신의 얼터 이고로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가상인물을 만들어 냈으며 믹 론슨과 멤버들은 그 밴드로 설정했다. [Aladdin Sane]을 발매할 즈음 그는 루 리드의 히트곡 'Walk On The Wild Side'가 수록된 앨범 [Transformer]를 프로듀스 해주기도 했으며 모트 더 후플의 글리터를 위한 송가 'All The Young Dudes'를 작곡, 프로듀스 하기도 했다. 지기 밴드를 해체시키고 라이브를 중단한 그는 파리로 가서 60년대 영국 록 넘버들을 리메이크 한 앨범 [Pin Ups]를 발매했다. 74년 'Rebel Rebel'이 수록된 [Diamond Dogs]를 발매하면서 그는 미국 투어를 재개한다. 그러는 중 소울 음악에 심취하게 되는데 75년 [Young Americans]를 발매한 그는 헐렁한 옥스포드 진과 보다 자연스러운 블론드로 스타일을 바꾸고 한때 제임스 브라운의 사이드맨이었던 카를로스 알로마(Carlos Alomar) 등과 함께 투어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존 레논, 카를로스 알로마와 함께 작곡한 'Fame'은 첫번째 미국 싱글 차트 1위가 된다. LA로 활동무대를 옮긴 보위는 니콜라스 뢰그(Nicolas Roeg)의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The Man Who Fell to Earth)>에 주연을 맡으면서 영화배우로서의 커리어도 쌓아간다. 76년에는 소울을 도입한 아방 팝 앨범 [Station To Station]을 발매하는데 이즈음 그의 귀족적인 우아함을 비유해 'thin white duke'라는 별명이 생겨난다. 77년에는 베를린으로 가서 브라이언 이노와 같이 살면서 독일 일렉트로닉 음악에 경도된 실험적 음반 [Low]와 [Heroes]를 발매한다. 한편 이기 팝의 컴백 작품들인 [The Idiot]와 [Lust for Life]를 도와주고 이기 팝의 키보디스트로 투어에도 참여한다. 77년에는 마를레네 디트리히, 킴 노박과 함께 영화 Just A Gigolo에 출연한다. 79년에는 이노와 함께 뉴욕, 스위스 그리고 베를린에서 앨범 [Lodger]를 녹음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Scary Monsters]와 함께 이 앨범의 몇몇 곡은 비디오 클립으로 제작되어 초창기 MTV를 통해 방영되었다. 80년초 그의 스튜디오에서의 활동이라면 퀸과 함께 한 곡 'Under Pressure'의 녹음과 영화 <캣 피플(Cat People)>의 테마 녹음 뿐이었다. 전작을 마지막으로 RCA와의 계약을끝낸 그는 83년 EMI와 계약을 맺고 쉬크(Chic)의 기타리스트인 나일 로저스(Nile Rodgers)를 프로듀서로 기용하고 당시만 해도 무명이던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을 리드 기타리스트로 기용한 [Let's Dance]를 발매한다. 상업적으로 매우 성공한 이 작품에 이어 보위는 비슷한 성향의 앨범 [Tonight]을 이듬해 발매한다. 이 앨범 역시 매우 잘 팔려나갔으며 'Blue Jean'이 싱글로 히트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꾸준히 팔리는 앨범이 되지 못했고 리뷰도 나빴다. 85년에는 믹 재거와 함께 라이브 에이드를 위해 마사 앤 반델라스의 'Dancing in the Street'를 녹음했다. 한편으로 <인투 더 나이트(Into the Night)> (85), <앱솔루트 비기너스(Absolute Beginners)>, (86), <라비린스(Labyrinth)> (86) 등 세 편의 영화에 출연한다. 87년에는 앨범 [Never Let Me Down]을 발매하는데 이것 역시 안 좋은 평을 들었다. 모음집인 [Sound + Vision]은 성공적이었지만 다음 프로젝트인 틴 머신(Tin Machine)은 보위 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지 못했던 활동으로 기록된다. 틴 머쉰은 셀프타이틀 앨범과 두 번째 앨범 [Tin Machine II]을 발매했는데 기타리스트 리브스 가브렐스(Reeves Gabrels)와 같이 한 이 록 콤보는 거의 무시당했다고 해도 좋은 정도의 관심만을 얻었다. 보위는 그 2년 뒤인 93년 섬세하고 소울풀한 팝 앨범 [Black Tie White Noise]로 다시 솔로로 돌아왔다. 여기에는 나일 로저스와 함께 틴 머신 이후 지금까지 그의 협력자가 된 리브스 가브렐스도 참여했다. 95년 그는 이노와 다시 손잡고 인더스트리얼 록이 가미된 컨셉트 앨범 [Outside]를 발매하고 어린 얼터너티브 팬들의 청취를 확보하기 위해 나인 인치 네일즈와 함께 투어를 하기도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96년 그는 재빨리 다시 스튜디오로 들어가 새 앨범 [Earthling]의 작업에 착수한다. 이 앨범은 테크노와 드럼 앤 베이스 등의 음악적 요소들을 도입했는데 비교적 괜찮은 리뷰를 받은 편이었지만 테크노 순수주의자들로부터는 자신들의 서브컬처를 이용해먹은 기회주의자란 비판을 들었다. 이런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보위가 록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가 해왔던 활동들은 펑크와 뉴 웨이브, 고스 록 그리고 뉴 로맨틱스, 일렉트로니카 등 많은 서브장르들의 탄생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2003년 신보 [Reality]를 발표하는 등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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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램 록의 선구자'이자 '록 계의 카멜레온'이란 별명을 얻고 있는 데이빗 보위는 그 창조적이고 신비한 이미지만큼이나 영화에서도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줬다. 그리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가 출연하는 영화는 결코 평범한 작품은 아니었다. 대부분 유명 감독들의 영화이거나 기괴한 판타지 영화, 아니면 논란을 일으켰거나 예술을 다룬 것들이었다. 그가 연기했던 배역 역시 '변신의 대가'답게 다채로운 캐릭터들이었으며, 보위는 결코 전문 배우 못지 않은 폭 넓은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1976년 컬트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로 배우로서 데뷔한 보위는 3년 뒤 마를렌 디트리히의 마지막 출연작 [사랑하는 플레이보이]에서 첫 주연을 따내며 본격적으로 영화에 뛰어든다. 1983년에는 외설논란을 낳았던 [감각의 제국]으로 이름난 일본 감독 오시마 나기사의 국제적 프로젝트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출연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잡혀 있는 셀리어스 소령을 연기했다. 영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배우와 가수 등 다국적 멀티 연예인들이 출연했던 이 영화에서 보위는 주역급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냈으며, 그밖에 괴짜 감독 겸 배우 기타노 다케시, 그리고 유명한 일본 음악인 류이치 사카모토가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류이치 사카모토는 음악까지 담당했다). 조지 루카스가 제작한 판타지 영화 [라비린스](1986)에서는 주인공 소녀 제니퍼 코넬리를 괴롭히는 못된 마왕 역으로 등장했으며, 그는 여기서 신비로운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예수의 인간적인 고뇌를 그려 기독교계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문제작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는 예수(윌렘 데포 분)를 심문하는 이탈리아 관리 빌라도 역을 열연했다. '80년대 미국 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27살로 요절한 흑인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전기 영화 [바스키아](1996)에서는 바스키아를 후원했던 팝 아트의 원조 앤디 워홀로 분하기도 했다. 한편 데이빗 보위는 [라비린스] 이전에도 [스노우맨]이나 프랑스 영화 감독 레오 카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의 영화음악을 맡은 바 있다.
1. 쥬랜더 (Zoolander) 2001년 2. 라이스 아저씨의 비밀 (Mr. Rice's Secret) 2000년 3. 골디 (Goldie: When Saturn Returns) 1998년 4. 유혹 (The Hunger) 1997년 5. 바스키아 (Basquiat) 1996년 6. 트윈 픽스 (Twin Peaks: Fire Walk With Me) 1992년 7. 루시는 마술사 (The Linguini Incident) 1991년 8.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1988년 9. 라비린스 (Labyrinth) 1986년 10. 철부지들의 꿈 (Absolute Beginners) 1986년 11. 밤의 미녀 (Into the Night) 1985년 12. 악마의 키스 (The Hunger) 1983년 13. 전장의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1983년 14. 사랑하는 플레이보이 (Just A Gigolo) 1979년 15.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The Man Who Fell To Earth) 197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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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이 데이빗 존스(David Jones)인 그는 뮤지션으로의 경력을 시작함에 있어 몽키스(The Monkees)의 데이비 존스(Davy Jones)와 필연적으로 겪게 될 혼돈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진작부터 존경해 마지 않던 보위 나이프(Bowie Knife)에게서 이름을 빌려 온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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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극의 시대'를 관통했던 글램 록의 창시자. 1970년대 초엽, 데이빗 보위는 화려하게 음악 무대에 입성했다. 불세출의 명반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Spiders From Mars](1972)를 통해 남녀 일체상의 파격을 부르짖으며 단번에 진보적인 록 뮤지션으로 급부상했다. 이를 위해 그는 동성이자 초월자인 '지기'로 분해 시각적 충격을 강조했으며 이러한 퍼스널리티는 즉각 록의 뉴 스타일로 자리잡았다. 그것은 노래와 연기를 망라하는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글램 록 혹은 글리터 록이 태동한 것이었다. 데이빗 보위는 그러나 곧바로 지기의 옷을 벗어 던졌다. 그가 끊임없이 음악 영토의 이동을 시작한 지점이다. 1974년의 [Diamond Dogs]에서는 세상의 예언자로, 1975년의 [Young Americans]에서는 미국 음악의 추종자로, 1977년의 [Low]에서는 전자 음악 은둔자로, 1983년의 [Let's Dance]에서는 가벼운 댄서로, 1995년의 [Outside]에서는 탐정으로. 자연스레 한편에서 '기회주의자', '카멜레온 뮤지션'이라는 배격이 나올 만도 했다. 그러나 그가 창조해낸 음악이 항상 예측을 불허했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만큼오리지널리티가 살아있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는 이에 관해 1993년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체질적으로 싫다. 그래서 악평이 나오기도 한다...난 스튜디오에 들어가 우선 머릿속에 담은 구체적인 생각들이 자신을 놀라게 하는지를 본다. 밖에서 누군가 그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 테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위해 곡을 쓴다." 그는 이처럼 인기가 주는 헛된 명성을 잘 알고 있다. 자연스레 그것이 주는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실제로 [Let's Dance]의 매머드 히트 이후, 그것을 "풍선 검 포장지가 된 기분이었다."라며 부끄러워한바 있다. 바로 데이빗 보위가 현재까지도 불멸의 아티스트로 대접받는 이유다. 시간이 흘러도 그의 예술적인 자존심은 결코 꺾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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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이자 작곡가, 색소폰과 기타 연주자이자 프로듀서, 그리고 영화배우라는 다양한 경력을 지닌 데이빗 보위는 1947년 1월 8일, 데이빗 로버트 존스(David Robert Jones)라는 본명으로 런던의 브릭스턴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미 여덟 살 때부터 아버지가 듣던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의 싱글을 듣고 영국 최고의 록 스타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열 세 살이 되던 해부터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콘래즈(Kon-Rads)라는 스쿨 밴드를 조직하여 음악 활동을 해나간다. 학창 시절 그는 뜻밖의 사고를 당한다. 한 친구와 싸우던 도중 컴퍼스로 오른쪽 눈을 찔려 실명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서로 다른 양쪽 눈의 색깔은 물론 이후 그가 지니는 독특한 스타일 또한 이 사고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열 일곱 살 되던 해인 1964년, 학교 친구인 조지 언더우드(George Underwood)와 함께 결성한 밴드 킹 비스(King Bees)는 <데카(Decca)>의 산하 레이블인 <보컬리온(Vocalion)>을 통해 싱글 Liza Jane을 발표하여 약간의 관심을 얻게 된다. '65년, 데이빗은 그룹 매니시 보이스(Manish Boys)와 함께 I pity the fool을, 로워 서드(Lower Third)와 You've got a habit of leaving을 <팔로폰(Parlophone)> 레이블을 통해 발표한다. '65년 9월, 마키 클럽에서 로워 서드의 공연 모습을 본 케네스 피트(Kenneth Pitt)는 데이빗의 매니저를 자청했고 그는 이후 데이빗의 경력에 많은 도움을 주게 된다. 1966년 1월, 밴드가 <파이(Pye)> 레코드사와 계약을 이룬 이후 데이빗은 이름을 '보위'로 바꾸는데, 미국의 로큰롤 그룹인 몽키스(Monkees)에 자신과 이름이 같은 데이비 존스(Davy Jones)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워 서드의 새로운 싱글 Can't help thinking about me는 곧 런던의 해적 방송을 통해 가장 많이 방송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으나 밴드는 곧 해체되었고 데이빗은 솔로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66년 4월, 데이빗 보위의 솔로 데뷔 싱글 Do anything you say가, 그리고 8월에는 I dig everything이 발매되었다. 하지만 <파이> 레이블로부터 떠나야 했던 그는 <데카> 산하의 ‘실험음악’ 전문 레이블 <데람(Deram)>과 계약을 이루고 12월에 첫 싱글 Rubber band를 발표했다. 이듬해 4월에 발매된 싱글 The laughing gnome은 그의 재능이 빛나는 독창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었고, 그것은 6월 발매되는 데뷔 앨범 [DAVID BOWIE]로 이어진다.
데뷔 앨범 발매 이후 데이빗은 연극배우인 린제이 켐프(Lindsay Kemp)로부터 마임과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는 그가 이후 연기자로서 활동하는 데, 그리고 연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공연을 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68년 7월,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인 허미온 파딩게일(Hermione Farthingale)과 베이시스트인 존 허친슨(John Hutchinson)과 함께 페더스(Feathers)라는 트리오를 결성했다. 이들은 자주 제작 앨범을 발매하고 런던의 클럽과 대학가를 돌며 공연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지만 6개월만에 해산되고 만다. '69년 6월, <필립스(Philips)> 레이블과 계약을 이룬 데이빗은 브리티시 록계의 명 프로듀서인 거스 더지온(Gus Dudgeon)과 함께 [Space oddity]의 녹음에 들어갔다. 지구로의 귀환 대신 우주 공간을 표류하는 톰 소령(Major Tom)과 지상 관제탑과의 대화로 진행되는 이 서사적인 곡은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발매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곡은 여러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앞다투어 소개되었고 BBC-TV의 천문학 프로그램의 주제곡으로 사용되는 등 인기를 얻으며 영국 차트 5위를 기록한다. 그리고 11월, 그의 두번째 앨범이자 <필립스>에서의 첫 앨범 [Space oddity]가 발매된다.
1970년 2월, 데이빗은 베이스를 연주하는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와 드러머인 존 캠브리지(John Cambridge), 기타리스트 믹 론슨(Mick Ronson)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백 밴드 하이프(Hype)를 결성하여 공연을 시작한다. 3월에는 새로운 싱글 The prettiest star가 발매되었고, 그는 아트스쿨의 학생이었던 안젤라 바넷(Angela Barnett)과 결혼을 했다. 또한 [Space oddity]로 이보 노벨로(Ivor Novello)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이후 닥칠 전성기를 예고하는 듯한 일들 속에서 11월, 데이빗의 세 번째 앨범인 [The Man Who Sold The World]가 영국에 앞서 미국에서 먼저 발매되었다.
1972년은 보위에게 있어 로커인 '지기 스타더스트'로서뿐 아니라 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유능한 프로듀서로서 자리한 해이기도 하다. 그는 루 리드(Lou Reed)의 걸작 앨범 TRANSFORMER와 록 그룹 모트 더 후플(Mott The Hoople)의 ALL THE YOUNG DUDES를 프로듀스하여 각각 싱글 Walk on the wild side와 All the young dudes를 히트시킨다. 이어 이듬해에는 펑크 록의 명반으로 꼽히는 이기 팝의 RAW POWER를 프로듀스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 일본 투어 등 활발한 공연 활동이 이어졌고, 재발매된 싱글 Space oddity가 미국 차트 15위에 오름으로써 그의 첫 미국 내 20위 권 히트곡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첫 번째 미국 투어 중 쓴 노래들로 이루어진 새 앨범 [Aladin Sane]가 발매된다.
혁신적인 무대 매너와 전에 없던 독특한 음악 스타일로 확고한 자신의 위치를 가지게 된 데이빗 보위는 '73년 7월, 런던의 해머스미스 오데온(Hammersmith Odeon)에서 있었던 콘서트를 끝으로 더 이상 라이브 공연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발표를 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공연 후 무대 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공연은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 그건 투어의 끝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게 될 마지막 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꽤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고 이런 언급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 ‘은퇴 선언’은 ‘데이빗 보위’가 아닌 그의 막강한 페르소나였던 ‘지기 스타더스트’의 은퇴에 다름 아니었다. 어쨌든 그의 무대에서의 인기에 힘을 입어 HUNKY DORY에 수록되었던 싱글 Life on Mars?가 다시 영국 차트 3위에 올랐고, 이어 이색적인 새 앨범 [Pinups]가 발매된다.
DIAMOND DOGS의 발매 후 행한 투어 중 '74년 7월에 있었던 필라델피아 타워 극장에서의 실황을 담은 더블 라이브 앨범 DAVID LIVE가 발매되어 평단의 호평과 영국 차트 2위를 기록했다. 이 공연에서는 작곡가로 유명한 마이클 카멘(Michael Kamen)이 키보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재즈 색소폰 주자인 데이빗 샌본(David Sanborn)이 참여하여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듬해인 1975년 2월, 그는 니콜라스 로에그(Nicolas Roeg) 감독의 SF 영화 <지구로 떨어진 사나이(The Man Who Fell To Earth)>에 주연으로 캐스팅 되어 배우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원래 이 배역은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로 유명한 피터 오툴(Peter O'Toole)이 맡을 예정이었는데, 데이빗은 자신의 행성으로 물을 가져가기 위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지구로 온 외계인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냈다. '76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작으로 상영되었으며 데이빗 보위는 미국 SF 판타지와 공포영화 협회로부터 남우주연상을, 니콜라스 로에그는 뉴욕 영화협회로부터 감독상을 수상했다.
보위의 첫 번째 히트곡 모음집인 CHANGESONEBOWIE가 발매되어 영국 차트 2위와 미국 차트 10위를 기록했다. '76년10월, 그는 이기 팝과 함께 코케인 중독의 치유를 목적으로 3년 간 은둔하기 위해 서베를린으로 이주한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그의 음악은 또 한 번의 전기(轉機)를 맞이하는데, 천재 키보드 주자이자 전위음악가인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1978년, 데이빗 보위는 데이빗 헤밍스(David Hemmings) 감독의 영화 <저스트 어 지골로(Just A Gigolo)>에 캐스팅 된다. 이후 유진 오만디(Eugene Ormandy)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프로코피에프의 PETER AND THE WOLF에 참여하여 내레이션을 맡았다. 그리고 그 해 월에 필라델피아의 스펙트럼 극장에서 행했던 공연 실황을 담은 더블 라이브 앨범 STAGE가 발매되어 영국 차트 5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79년, 브라이언 이노와의 세 번째 앨범 [LODGER]가 발매된다.
1980년 2월, 데이빗은 10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감하고 이혼을 했다. 이후 기형아로 태어나 비극적인 삶을 산 존 메릭(John Merrick)의 삶을 다룬 <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의 주연을 맡아 무대에 선다. 그는 이 역할로 큰 갈채를 받았고 결국 브로드웨이 무대에까지 진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모습으로의 변화를 이룬 새로운 앨범 [Scary Monsters(And Super Creeps)]가 발매되었다.
1981년 2월, <데일리 미러(Daily Mirror)> 지가 후원하는 팝 어워드에서 데이빗 보위는 최우수 남자가수에 선정되었다. 7월에는 영화 <캣 피플(Cat People)>의 주제가 녹음에 들어갔고, 그룹 퀸(Queen)과 함께 싱글 Under pressure를 발표하여 차트 1위를 기록한다. 새로운 컴필레이션 앨범 CHANGESTWOBOWIE가 발표되었고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이 이어진다. 그리고 1983년 1월, 그는 뉴욕의 와 1천만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계약금을 받고 5년 기한의 계약을 맺는다. 곧 3년만의 새 앨범 [Let's Dance]가 발매되었다.
데이빗 보위가 ‘지기 스타더스트’로서 행한 해머스미스 오데온에서의 1973년 마지막 공연은, 밥 딜런의 영국 방문 필름인 <뒤돌아보지 마(Don't Look Back)>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디에이 펜베이커(D.A. Pennebaker)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었지만 사운드트랙의 발매와 함께 뒤늦게 공개되었다. 이듬해인 '84년 2월, 그는 제 3회 브릿 어워드(BRIT Awards)에서 영국 최고의 남성 아티스트로 선정된다. 그리고 9월에는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China girl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어 발매된 앨범 TONIGHT은 평단으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었지만 영국 차트 1위와 미국 차트 11위에 오르는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이기 팝과 티나 터너(Tina Turner)가 게스트로 참여한 이 앨범은 신서사이저 사운드가 넘쳐날 정도로 과용되었으며, 싱글 Blue jean을 탄생시켰다. '85년에 들어서는 팻 메스니 밴드(Pat Metheny Band)와 영화 <매와 눈사람(The Falcon And The Snowman)>의 주제가인 This is not America를 발표하였고,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Mick Jagger)와 듀엣으로 마사 앤 더 반델라스(Martha & The Vandellas)의 Dancing in the street를 녹음한다. '85년 7월, 라이브 에이드(Live Aid)에 출연하였고 Dancing in the street는 영국 차트 1위와 미국 차트 7위를 기록한다. 이듬해에도 조지 루카스(George Lucas)가 제작한 <미궁를 비롯한 영화 출연 및 주제가를 부르는 등 활발한 활동이 이어졌고 1987년, 새로운 앨범인 NEVER LET ME DOWN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데이빗 보위의 아이디어와 창작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녹음된 졸작이라는 평가를 얻었으나 영국 차트 6위와판매 면에서는 골드를 기록했다. '88년에는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의 <예수 최후의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Christ)>에 출연하여 빌라도의 역을 연기했다. 그 즈음 그는 음악적으로 새로운 전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페르소나를 필요로 했고 결국 1989년 5월, 틴 머신(Tin Machine)이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밴드의 라인업은 기타리스트인 리브스 가브렐스(Reeves Gabrels), 그리고 이기 팝과 토드 런그렌(Todd Rundgren)과 활동한 바 있는 베이시스트 토니 세일즈(Tony Sales)와 드러머 헌트 세일즈(Hunt Sales) 형제로 구성이 되었다. 존 레논의 Working class hero가 수록된 이들의 셀프 타이틀 데뷔작은 영국 차트 3위와 미국 차트 28위를 기록했다. 강한 리프의 기타 사운드를 특징으로 하는 이들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결국 그의 프로젝트는 상업적 실패를 기록했고 두 번째 앨범 TIN MACHINE II ('91)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92년 말 데이빗 린치(David Lynch)의 <트윈 픽스(Twin Peaks)>에 출연한 데이빗 보위는 '93년, <새비지(Savage)>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7년만의 솔로 앨범인 BLACK TIE WHITE NOISE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나일 로저스의 프로듀스와 옛 동료인 믹 론슨의 기타 연주가 포함된(믹 론슨은 앨범이 발표되고 얼마 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 앨범은 영국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이후 TV 시리즈의 사운드트랙인 BUDDHA OF SUBURBIA ('93)가 발표되었고 1995년, <버진(Virgin)> 레코드와 계약을 한 데이빗 보위는 새 앨범 [Outside]를 발표한다. 16년만에 브라이언 이노와 결합하여 발표한 이 앨범은 기괴한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컨셉트 앨범인데, 데이빗은 앨범에서 일곱 명의 서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 앨범은 영국 차트 8위와 미국 차트 21위를 기록한다. ’97년에 발표된 EARTHLING은 그야말로 지치지 않는 그의 재능과 실험성을 고루 담아낸 역작이었다. 샘플링을 이용한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와 테크노의 요소를 포함한 이 앨범은 '98년의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록 앨범과 최우수 얼터너티브 연주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9년,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발표된 새 앨범 HOURS...는 현대적인 요소와 과거의 록 사운드가 적절히 조화된 빼어난 사운드를 담고 있다. 두드러지는 샘플링과 키보드 사운드는 보다 몽롱하고 풍성한 분위기를 이루어내는데, 다소 둔탁해진 목소리를 제외하면 음악을 통해 뮤지션에게 쌓여 가는 세월의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 채 끊임없는 실험성과 독창적인 시도로 늘 듣는 이들에게 짙은 감동을 전해주는 데이빗 보위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뮤지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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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램 록(Glam Rock)과 글리터 록(Glitter Rock), 그리고 시어트리컬 록(Theatrical Rock)에 이르는 영역에서 데이빗 보위의 역할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이 장르들은 모두 음악적인 면보다는 무대 매너나 복장 등 외형적인 요소에 의해 분류된 것이기 때문에 음악 외적인 면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는 음악적으로도 가장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만들어낸 아티스트였다. '70년대를 관통하는 (각 앨범마다 변형된)그의 페르소나(persona)는 '뮤지션'이라는 범주 내에서만 생각할 때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었으며 오히려 그 근원은 '30년대 무성영화 시절 독일의 표현주의의 영향하에 있다고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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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데이빗 로버트 존스로 어렸을 때는 색스폰을 즐겨 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앨범 The World Of David Bowie를 67년에 발표하며 음악계에 등장한 그는 음악적으로는 영국에서 어느 정도 주목을 받았으나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 앨범을 통해 그는 음악가로서가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그의 입장을 어느 정도 보여 주었다. 그는 음악에만 한정되지 않은 예술적인 편력을 보여 판토마임과 명상등에 심취하기도 한다. 이 때 얻은 예술적인 영감은 그의 음악적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1969년 미국이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 시키고 있을 때, 데이빗은 「Space Oddity」로 화려하게 재등장했다. 영국 차트 5위까지 올라간 이 앨범은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특이한 음색과 전위적 색채의 사운드를 멋지게 조화시켜, '스페이스 사운드'의 효시가 되었다. 마치 광활한 우주를 떠도는 미아와 같이 데이빗의 이미지는 당시까지의 팝계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후 데이빗 보위는 70년에 The Man Who Sold The World을 발표한다. 자신이 여왕으로 분장한 앨범 표지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앨범은 결국 글램 록 이라는 장르를 창조했고 마크 볼란의 T-렉스와 엘리스 쿠퍼가 추종 세력으로 떠오른 글램 록은 이후 펑크 뮤직과 뉴 웨이브 아티스트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후 그는 2장의 앨범을 동시에 진행시킨다. 그 첫번째 앨범은 싱글 Changes가 들어 있었던 Hunky Dory였고 나머지 한 장이 그를 확고 부동한 슈퍼스타로 만들어 준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 The Spiders From Mars이다. 그는 이 앨범에서 자극을 원하는 세대들을 위해 방탕하고 스타덤에 굶주려있으며 여성도 남성도 아닌 양성적인 허구의 인물인 지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는 지기를 자신의 이미지에 이입시키기 위해 외계인 의상을 입었고 오렌지 색으로 머리를 염색을 했으며 입술에 짙은 립스틱을 발랐다. 이러한 그의 모습과 음악은 당시의 음악계에 큰 충격을 가져 다 주었고 당시에 행해졌던 영국 순회 공연을 통해 보위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다. 그리고 당시 그의 이런 활동은 인기뿐 아니라 이 후 영국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의 공연을 보며 과열반응을 보였던 수많은 청소년들은 이 후 쇼킹한 지기의 이미지를 되살린 펑크록을 창조하게 되었다. '지기' 이후 데이빗은 조지 오웰의 소설<1984>에 힌트를 얻어 원시적이며 크로테스크한 재킷이 인상적인 74년 작 Diamond Dogs를 내놓으며 모든 분장을 지운 순수 록 스타로 나타났다. 그리고 75년 작 Young American에서는 필라델피아 소울 사운드를 받아들여 흑인 음악과 라틴 음악, 그리고 디스코를 선보였다. 수록곡 중 'Fame'은 존 레논과 합작한 것으로 최초로 차트 넘버원을 기록했다. 이 시절 데이빗 보위는 많은 뮤지션들과 음악적인 교류를 가지며 뛰어난 앨범들을 제작함으로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한 껏 내뿜는다. 모트 더 후플의 첫 히트 곡 'All The Young Dudes'의 작곡과 앨범의 제작을 맡았으며, 루 리드의 두 번째 솔로 작 Transformer와 이기 팝의 Raw Power도 제작해 주었다. 이 앨범들 모두 록계에서 명반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앨범들이다. 그리고 이 시절 그는 운명적인 만남으로 기록될 록시 뮤직 출신의 전위음악가 브라이언 이노와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밖에 킹 크림슨의 기타리스트 로버트 프립과 Scary Monsters를 레코딩했고. 81년 퀸과의 합작 싱글 'Under Pressure'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팻 메스니가 음악을 담당한 영화 The Falcon & The Snowman의 주제곡 'This Is Not America'를, 믹 재거와 'Dancing In The Street'를 각각 레코딩하여 히트를 기록했다. 81년에는 말콤 맥도웰과나스타샤 킨스키 주연의 영화 Cat People의 사운드트랙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83년 데이빗 보위는 그룹 쉭의 나일 로저스와 손잡고 Let's Dance로 새로운 댄스 록을 선보이며 최대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 앨범을 통해 그는 동명 타이틀 곡과 China Girl, Modern Love등을 히트 시키며 명실 상부한 팝스타로 자리 매김하게 된다. 그의 이름과 음악은 전세계의 팝팬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그는 이러한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후에 그는 이 앨범의 상업적인 면에 상당히 껄끄러운 반응을 보였으나 이 시절의 데이빗 보위를 좋아하는 팬들도 수없이 많이 있다. 같은 성향의 앨범인 Tonight과 Never Let Me를 각각 84년과 87년에 계속해서 발표하던 그는 또 다른 변화를 시도한다. 바로 Tin Machine의 결성이다. 숯한 화제를 뿌리며 2번째 앨범까지 발표한 후 그는 90년대로 들어와 다시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95년과 97년에 발표된 1.Outside와 Earthling은 90년대의 음악적 트렌드를 잘 간파한 앨범으로 어떠한 젊은 아티스트의 음악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음악적 감각을 선보여 다시 한번 그의 역량을 입증해 주었다. 특히 1.Outside 앨범에 수록된 I'm Deranged는 컬트 감독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 Lost Highway에 쓰여 주목 받았다. 그리고 그는 99년 Virgin 레코드와 계약을 하며 다시 한 번 예전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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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은 분장, 괴이한 의상, 색다른 무대 조명과 연출로 스페이스 뮤직 또는 글리터 록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으며, 청소년들의 유니섹스 패션을 유행시키기도 한 데이빗 보위는, 1947년 1월 8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2세 때부터 색소폰을 즐겨 연주했다. '67년부터 발표한 앨범 The world of david bowie, David bowie, The man sold the world, Hunky dory 등을 발표했으나 저조한 판매를 보였다. 그러나 '72년 히피들의 사랑과 평화를 표방하며 발표한 앨범 Later issued as space oddity는 공개되자마자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동명 싱글이 '73년 미국에서 첫 히트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그 후 돌연 은둔 생활을 18개월 동안 했으며 '70년 다시 앨범 The man who sold the world를 발표했다. 그는 자신이 여왕으로 분장한 앨범 표지로 다시 한번 논란을 일으키며 글리터 록이란 어휘를 만들어냈다. '71년 [RCA]에서 발표한 앨범 Hunky dory는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으며 싱글 Changes를 준 히트시켰다. 이후에 발표된 앨범들인 Diamond dog, David live, Ziggy stardust 등이 골드를 획득하면서 그는 최상의 인기를 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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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빗 보위가 자신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건 앨범 David bowie를 세상에 내놓은 것이 '67년도의 일이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97년 벽두에 그는 또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그 지칠줄 모르는 활동이라는 면에서만 보더라도 그는 참 대단한 사나이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의 음악이 주류(主流)의 록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볼 때 더욱 그렇다. 리듬을 창조해 내는 리프와 멜로디, 기타 솔로, 그리고 코러스 등으로 이루어진 정상적인(?) 구조. 그것은 블루스를 바탕으로 하는 록의 본 모습dl다. 그것이 올맨 브러더스 밴드(Allman Brothers Band)이건, 두비 브러더스(Doobie Brothers)이건, 아니면 오아시스(Oasis)이건 간에 대중은 그들의 음악에서 바라던 바의 록이 갖는 즐거움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보위의 음악은 무엇인가? 그에게는, 자신의 표현에 있어서, 어찌보면 음악이 부수적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 때는 그의 음악을 가리켜서 글램 록(Glam Rock)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70년대 초반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이 사조는 중성적인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짙은 화장이나 화려한 의상을 지니고 극적인 시각적 효과를 자아내는 무대를 시도했으며, 이것은 다분히 세기말적인 환각과 퇴폐의 분위기를 제공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다분히 이미지와 관련된 록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마크 볼란(Marc Bolan)이 이끌었던 그룹 티 렉스(T-Rex)와 함께 데이빗 보위는 이 분야의 선두 주자였다. 따라서 보위의 음악은 음악 자체도 참으로 시각적인 분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각종 이펙터의 효과적인 사용과 불협 화음을 교묘히 배치하는 그의 음악 속에는 재즈와 리듬 앤 블루스, 초기 로큰롤, 현대 음악의 단편적인 모습들이 모자이크 되어 있는 모더니즘 그 자체였다. 존재하는 모든 현대적 현상들의 짜깁기. 팝 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Andy Warhol)과의 관련성을 떠올린다면 더욱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식의 실험은 그 충격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오래가기가 힘들다. 언제 어디서나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은 고전적인 방법론이다. 루 리드(Lou Reed)의 벨벳 언더 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나 데이빗 번(David Byrne)의 토킹 헤즈(Talking Heads)같은 팀들이 모두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이제는 그저 후배들의 음악 속에 길게 드리우고 있을 뿐인 것이다. 하지만 보위는 그렇지 않다, 그는 여전히 그 짓(?)을 해대고 있다.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70년대부터 '90년대의 후반을 치닫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는 작품의 생산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