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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R2D2
어쩌면 <스타워즈> 시리즈의 진정한 영웅은 바로 이 로봇이 아닐까? 미래의 제다이에게 레아 공주의 홀로그램 메시지를 전달하고 우주선의 시스템에 침입해 잠겨진 문을 열고 전투기를 조종해 제국군을 무찌르고 말 많고 허둥대는 3PO의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R2D2는 나부 행성에서 온 아스트로메크 드로이드(astromech droid) 타입의 로봇으로 아미달라 여왕의 손으로 <스타워즈>의 세계에 들어와 어느 주인공보다 오랫동안 활약하고 있다. 컴퓨터 인터페이스로 모든 기계를 조작하고, 몸에 지니고 있는 각종의 유용한 도구로 가제트와 맥가이버 못지 않은 서바이벌 능력을 보여준다. 약점이라면 현대어를 구사 못하고 겁쟁이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인데, 둘 다 3PO가 해결해준다. R2D2는 서구 SF에서는 보기 어려운 우호적인 로봇으로 잡지 ‘더 페이스’에서 실시한 유명인 인지도 조사에서 영국인의 89%가 그를 안다고 대답, 당당 1위를 차지했다. (이명석)
12위 태양의 사자 철인 28호
80년대 중반 비디오가게 박스 오피스가 있었다면, 애니메이션 비디오 부문 1위는 틀림없이 <태양의 사자 철인 28호>가 차지했을 것이다. 비디오 플레이어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그 시절, 56화(51화?) 전편이 국내에 모두 출시됐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지금도 청계천 중고 비디오 도매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영화 타이틀 중 하나는 <태양의 사자 철인 28호>다. <태양의 사자 철인 28호>는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1962년 작 <철인 28호>를 80년대 초반에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의 원점인 <철인 28호>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이 제작진의 목표였다. 철인의 동력은 태양 에너지로 바뀌었고, 주인공 가네다 쇼타로의 직업도 사립 탐정에서 인터폴(국제 경찰)로 바뀌었다. 나중에 등장한 <기동경찰 패트레이버>가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고 실토할 정도로 세련된 작품으로 완성됐다. 성우 최수민(주인공 현우 역)씨와 황원(이경장 역)씨가 콤비를 이뤄 부른 “악~마가 지구를 노리고 있다~”는 주제가는 지금도 기억이 새롭다. (이종원)
13위 철인 28호
<철인 28호>는 두말할 것 없이 일본 최초의 거대 로봇이다. 이 작품은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1959년 작 원작 만화가 발표된 이래 1962년 최초의 로봇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기념비적 존재다. 리모컨으로 조종되는 땅딸막하고 둥근 거체는 지금 보아도 친근감이 느껴진다. 이처럼 친근한 추억에도 불구하고 '철인'의 탄생에는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원작에 따르면 '철인'은 원래 2차 세계대전 중 전쟁 병기로 만들어진 병기다. 당시 구 일본군은 '철인 보병 계획'을 수립하고 철인 1호부터 27호까지 완성시켰다. 철인 28호는 완성 직후 미군의 폭격을 맞아 역사 속에 묻혔으나, 전쟁 후 주인공 가네다 쇼타로에 발견되어 정의의 사도가 된다는 것이 원작의 줄거리다. 전후의 애니메이션이라고 이해하려 해도 어쩐지 씁쓸한 맛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종원)
14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로봇은 어차피 기계다. 말하자면 약간 복잡한 중장비일 뿐이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의 패트레이버는 아마도 이 순위 리스트 중 가장 덜 인격화된, 가장 기계다운 로봇 캐릭터로 보인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는 1988년 유우키 마사미의 만화와 오시이 마모루 연출의 OVA로 먼저 선을 보이고 이후 TV와 극장판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둘은 스토리 라인과 극의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 편이다. 그러나 그 골간을 이루는 로봇 패트레이버의 성격에는 어느 정도 일관성이 존재한다. 시대는 근 미래(그래봤자 1998년 직후), 레이버(Labor)라는 중장비 로봇이 산업과 군사용으로 보급되어 나가고 있을 때다. 패트레이버(Patlabor)는 문자 그대로 경찰용(Patrol)의 레이버로, 특차 소대원들의 조종으로 범죄자를 퇴치한다. 직립 보행하는 로봇을 운전하는 어려움, 범죄자의 로봇 탈취와 같은 로봇을 둘러싼 많은 현실적인 설정이 인격 없는 로봇 패트레이버의 개성을 만들어낸 듯하다. 패트레이버는 한편으로는 <기동전사 건담> 이후 전개된 리얼 타입 로봇의 새로운 전통, 다른 한편으로는 폴 버호벤의 <로보캅>이 보여준 로봇 경찰의 활력을 이어받고 있다. (이명석)
15위 마크로스
<기동전사 건담>이 리얼 로봇의 포문을 열었다면,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는 이를 활짝 개화시켰다. 설문에는 그냥 "마크로스"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작품 <마크로스>에서 메카닉인 "마크로스"가 차지하는 위치는 다소 미묘하다. 시청자들을 열광시키며 후세의 여러 로봇에 영향을 미친 것은 "마크로스"라기 보다는 "발키리"라는 가변 전투기이기 때문이다. 내부에 도시 하나가 건설될 정도로 거대한 마크로스는 거함·거포주의에 입각해 있으며, 직접 육탄 공격을 감행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전략 요새라는 느낌이 강하다. 반면 현용 병기인 전투기에서 가워크 형태를 거쳐 인간형 배틀로이드로 변형하는 발키리. 이는 완전 양산형 군수품으로 일정한 파일럿 교육과 훈련을 거쳐 탑승하게 된다. 병기이긴 하지만 여전히 주역 로봇은 당대 최강의 유일무이한 존재이던 과도기적 설정의 초기 리얼 로봇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덕분에 지상전용 데스트로이드 같은 메카닉은 후속 시리즈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발키리만큼은 계속 진화한 모습으로 재등장하게 된다.
1999년 남아타리아섬에 추락한 이계 문명의 유산 마크로스 역시 시리즈의 상징물로 명맥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병기로서의 활약은 줄어들었다. 전쟁, 사랑, 음악이라는 철의 3각 구도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아이돌 가수 린 민메이의 폭발적인 인기와 더불어, 무수한 미사일이 우주 공간을 날아가는 궤적 묘사로 화려한 전투씬의 영상 미학을 창조했다. 국내에서는 AFKN에서 방영된 미국식 편집 버전 <로보텍>으로 시청자들과 만났다. 비디오, 소설, 문방구에서 파는 백과류 책자를 통해 입소문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SBS에서조차 로보텍 버전으로 방영되고, 이로인해 후반부에 대한 한국어 더빙이 없어 DVD마저 완결편까지 나오지 못한 질긴 악연으로 꼬인 작품이기도 하다. 심지어 <기갑창세기 모스피다>가 <마크로스>라는 이름으로 방송되는 웃지 못할 일까지도 겪었다. 이런 불운에도 불구하고 마크로스는 84년작 극장판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를 통해 불멸의 명작 반열에 올랐다. 그 압도적인 퀄리티는 지금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송로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