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트 태권V, 마징가 Z

1위 로보트 태권V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 V~” 태권V는 어릴 적 부르던 주제가에 어린 향수 이상을 의미하는 로봇이다. 70년대 인기리에 방영되던 <마징가 Z> 등이 일본 작품인 것을 알고 실망하던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준 영웅이자 많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줬던 친구다. 또한 침체기의 늪에 빠져 있던 한국 애니메이션의 숨통을 틔워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1976년 처음 선보인 <로보트 태권V(이하 '태권V')>는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기록한 영화였으며, 한국 최초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을 발매한 작품이기도 했다. 이후 <태권V>는 <로보트 태권V 제2탄 우주작전> <로보트 태권V 제3탄 수중특공대> <로버트 태권V와 황금날개의 대결> 시리즈와 태권V 외전 격인 <우주전함 거북선>,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투 메카 자붕글이라는 캐릭터를 모방한 <슈퍼태권브이>(1982), <로보트 태권V>(1984)(일명 <84 태권 브이>), 그리고 실사 합성판인 <로보트 태권V 90>(1990) 등으로 그 시리즈를 계속 이어갔다. 이 태권V 시리즈는 한국 애니메이션 흥망 성쇄의 산 증인인 김청기 감독을 비롯해 아쟁, 징 등으로 한국적인 효과음을 만든 김벌래 선생, 그 유명한 메인 테마곡을 작곡한 최창권 선생, 지금도 영화와 TV 드라마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상학 선생 등 당대 최고의 스탭들이 함께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로봇으로서 태권V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고유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대변하는 태권도를 구사하는 로봇 태권V는 한국인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캐릭터였다. 세계 로봇 애니메이션 작품들 사이에서 로켓이나 미사일이 아니라 무술을 구사했던 최초의 작품이 바로 <태권V>였다. 아마 당시 어린이었던 독자들은 태권도를 국내외로 널리 알린 작품이 <태권V>와 그의 화끈한 발차기 솜씨였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뒷골목에서 뛰놀던 소년들에게 <태권V>를 모른다는 것은 태권도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만큼이나 특이한 일이었다.

<태권V>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전설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매력적이다. <태권V>는 단순히 선악이 구분되어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각각의 사건들은 나름의 개연성이 있었으며 캐릭터들은 그런 사건을 통해 악당으로 변화하기도 하고 선한 인물로 환골탈태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권선징악 스토리의 틀에 익숙했던 어린이들에게 선은 승리하고 악은 패배한다는 단순한 진실 이외에도 용서와 화해라는 개념을 일깨웠다. 태권V의 전체적인 인상이 정의를 지키고 악을 응징하는 전사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들의 친구에 가까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태권V와 더불어 인기를 얻은 주인공 훈이와 김청기 감독이 직접 그림을 그릴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표현한 깡통 로봇 등도 모두 동네 친구와 같은 친근한 존재였다.

<태권V>를 말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로봇이 바로 마징가 Z다. 두 로봇은 종종 라이벌 관계로 표현되지만 지금까지도 태권V의 디자인이 마징가 Z를 모방했다는 소문이 들리는 실정이다. 실제 태권V가 마징가 Z의 영향을 받았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태권V의 캐릭터는 마징가 Z의 그것보다 훨씬 독창적이다. 마징가 Z의 두상은 왕관을 쓴 악마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반면 태권V는 고려 무사의 투구와 장군의 얼굴에서 기본적인 모양을 따 왔다. 또 마징가 Z의 가슴에 새겨진 V자는 왕관을 의미하지만 태권V의 V자는 승리를 나타낸다. 일본에 태권V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마니아가 많은 이유도 바로 이런 태권V만의 독창적인 컨셉 때문이다. 마징가 Z의 힘의 원천은 바로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파워이지만 태권V의 힘은 바로 정신력에서 나온다. 아마 태권V를 가장 사랑하는 로봇으로 기억하고 다시 보고 싶어하는 것도 로봇답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안타까운 소식 한가지. 최근 DVD로 발매된 1976년도 태권V 작품은 완벽한 상태가 아니다. 현재는 완벽한 필름 자료는 물론 무삭제 영상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1976년 상영했던 <태권V>를 두 번 다시 못 볼 확률이 크단 얘기다. 더구나 이후 시리즈는 저작권 분쟁 등에 얽혀 빛을 볼 날이 언제일지 요원하기만하다. 영화 제작에 착수했던 극장판 신 태권V 역시 아직은 구체적인 제작 일정이 발표되지 않고 있다. 안타까움의 연속이지만, 다시금 70~80년대를 호령하였던 <태권V>가 부활해서 우리 앞에 나타날 그날까지 <태권V> 팬들은 묵묵히 응원해주리라 믿는다. 태권V가 V자를 그리며 하늘을 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김영훈)

2위 마징가 Z

요즘 고전이다 복간이다 하면서 과거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재출간되거나 DVD로 출시되는 일이 붐을 이루고 있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이라는 주제가로 너무나도 유명한 이 <마징가 Z>도 2001년 만화책이 재출간됐다. 전 92화에 이르는 장편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마징가 Z> 애니메이션 DVD도 언젠가는 볼 날이 있을 것이다.

<마징가 Z>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세상에 등장한 것이 1972년. 이미 30년도 더 지난 이 작품에, 그것도 <마징가 Z>가 태어난 일본이 아닌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서까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실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마징가 Z>가 사랑 받는 이유에 별다를 것은 없다고 본다.

<마징가 Z>는 거대 로봇에 대한 근원적인 동경을 우리에게 처음 제시했던 작품이었다. 1970년대 당시 <마징가 Z>가 보여주었던 파격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단순히 무적의 로봇인 것만 아니라, '초합금 Z'란 특수 금속을 통한 강력한 장갑이라든지 '광자력'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움직인다는 설정 등은 그때까지의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힘든 치밀한 내용이었다. 또한 그때까지의 로봇들이 단순히 그저 주먹이나 발로 적과 치고 받으며 싸우거나 뭔가 알 수 없는 괴광선(怪光線)을 쏘는 정도였는데, 마징가 Z는 로켓 펀치, 광자력 빔, 브레스트 파이어, 루스트 허리케인 등 멋진 이름에 걸맞는 다양한 능력을 선보여 당시 어린이 시청자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적 메카닉들에 있어서도 '고대 미케네 제국인들의 유물'을 파내어 만들었다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세련된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또한 <마징가 Z>가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인간이 탑승하여 직접 조종하는 최초의 로봇'이라는 점이다. 이전의 <철완 아톰>은 인형(人形) 사이보그인 데다가 어린이를 모델로 하여 보통 성인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게다가 그는 스스로 사고하고 움직이는 로봇이었다. 최초의 거대 로봇인 <철인 28호>는 일단 인간의 조종을 받기는 하지만 외부에서 컨트롤러로 움직이는 방식으로서 '직접적인 조종'과는 거리가 있다.

이런 1960년대 로봇들과는 달리 원작자 나가이 고가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마징가 Z>의 '인간이 직접 안에 탑승하여 로봇을 조종한다'는 설정은 매우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로봇에 있어서 인간이 안에 탑승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는 매우 근본적이다. 그 전까지 소년들이 동경하던 '슈퍼 히어로'가 선천적으로 이미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거나 특별한 상황 하에 초능력을 얻게 되는 것과는 달리, 기술을 배우면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평범한 소년도 로봇의 조종사가 되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최소한 '크립톤 행성에서 온 초능력자'라거나 'M-78 성운에서 날아온 우주인'보다는 훈련을 해서 마징가 Z의 파일럿이 된다는 설정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마징가 Z>의 이런 컨셉은 또 다른 만화 장르인 마법 소녀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초기의 <요술공주 세리>부터 <요술공주 밍키>까지 주로 '선천적으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을 그리던 마법 소녀물이 <천사소녀 새롬이>와 <샛별공주>에서 보듯 '평범한 사람이 우연히 변신 능력을 얻게 되는' 작품으로 발전된 것도 <마징가 Z>로 대표되는 로봇물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1990년대에 이르러 마법 소녀물이 <달의 요정 세일러문>(원제는 <미소녀전사 세일러문>)으로 대표되는 '전투 미소녀물'로 진화했듯이 로봇물도 1980년대 '리얼 로봇'의 조류를 거쳐 1990년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기동전사 건담>으로 대표되는 1980년대 로봇물과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 로봇물, 양쪽 모두 그 원류는 결국 <마징가 Z>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그만큼 <마징가 Z>는 1970년대를 살아온 우리들에게 충격적일 정도로 세련된 감성과 사실적인 비주얼을 보여주었다. 바로 그 점이 <마징가 Z>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인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선정우)

출처;필름 2.0 2003.06.07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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