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저 2만리 ㅣ 아셰트클래식 1
쥘 베른 지음, 쥘베르 모렐 그림,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평점 :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해저 2만리를 처음 읽었던 건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인가로 기억한다. 당시는 요즘처럼 환타지 소설이 유행하든 때도 아니고, 공상과학(Science Fiction, SF)소설과 만화가 유일하게 나의 상상을 자극하는 책이었다. 웰스가 쓴 우주전쟁과 타임머신, 쥘 베른이 쓴 해저 2만리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지금은 이런 내용들이 영화화되어 마치 현실처럼 보여지지만, 당시로서는 오직 머릿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성인이 되어 다시 해저2만리를 읽는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든다. 어릴적 내 머릿 속에 남아 있던 이야기가 지금은 어떤 식으로 읽힐 건지 궁금하다. 물론 성인이 된 지금 이 책을 보면 실망스러운 건 아닌지 하는 다소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책장을 넘겼다.
일단 그때 읽었던 책에 비해 분량이 엄청나게 불어있다. 그리고 삽화도 그때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책을 출간한 아셰트 출판사는 원작에 수록된 삽화 이외에 이번 판을 위해 특별 제작한 삽화를 수록하였다고 한다. 노틸러스호의 구조, 해저 탐사에 쓰이는 각종 용구,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갖가지 해양 동물의 모습 등을 새롭게 수록하였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어릴적 흑백 삽화에서 받았던 느낌이 더 강렬했던 것 같다. 거대 오징어와의 혈투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컬러로 된 삽화는 왠지 모르게 흑백 삽화보다 강렬함이 덜한 느낌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쥘 베른이 이 글을 쓴 당시에는 그저 상상의 세계로만 여겨졌던 해저탐험과 같은 이야기들이 현실화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 등장하는 잠수함 ‘노틸러스호’는 실제의 잠수함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제작한 원자력 잠수함의 이름이 ‘노틸러스’호로 명명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쥘 베른은 자신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을 무작정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당시까지 밝혀진 과학적 지식에 자신의 과학적 상상력을 더하여 아주 치밀하고 정교하게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내용은 허무맹랑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사실적이고 생동감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내용들은 성인이 된 지금 읽어도 흥미롭기만 하다. 어릴적 읽었을 때보다 더 풍부해진 내용과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들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때도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은 잘 안나는데, 지금 읽어보니 이 책이 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아직까지도 읽혀지고 중요한 책으로 여겨지는지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는 내 부하들에게 신선한 고기를 먹일 필요가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단지 죽이기 위한 사냥이 될 거요. 그게 우리 인류의 특권이라는 건 알지만, 심심풀이로 생명을 죽이는 따위의 잔인한 짓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참고래 같은 남극 고래는 인간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온순한 고래입니다. 그런 고래를 죽이는 것은 저주받을 짓이예요. 당신들은 이미 배핀 만의 고래를 몰살했고, 결국에는 유용한 동물인 수염고래를 멸종시킬 거요. 그러니 불운한 고래들을 그냥 내버려두세요. 남극 고래는 당신이 끼어들지 않아도 천적인 향유고래와 황새치와 톱가오리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으니까(본서 제414쪽 참조).”
이 책이 처음 출간된 때가 1870년이다. 지금으로부터 14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벌써 그 당시 생태계 파괴 등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지은이의 과학적 상상력에 감탄을 하고 또 한 번 지은이의 혜안에 감탄하는 부분이다. 당시 벌써 과학적 발전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환경 파괴 등을 언급할 정도였으니, 지금 현재 우리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굳이 여러 설명을 들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이 책이 고전으로 남아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상상력은 창조력의 근원이다” 라는 말은 이제 너무 보편화되어 진부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실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진부한 말이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즐겨 사용되는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쥘 베른의 상상력은 이 지구상에 새로운 과학적 발명의 문을 열어주었고, 우리에게 무한한 공상의 세계로 안내한 사람으로 오랜 동안 기억될 것이다.
어릴 적 읽었던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당시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읽는 재미는 최근 출간된 베스트셀러를 읽는 것보다 더 흥미진진했다.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어간 기분 좋은 추억 여행이었다. 틈나는 대로 어릴 적 읽었던 책들을 꺼내어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책 읽기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