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교양강의 - 사마천의 탁월한 통찰을 오늘의 시각으로 읽는다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1
한자오치 지음, 이인호 옮김 / 돌베개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역사서술 방식에 대한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서술 방식으로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과 같이 시간 순서대로 서술된 편년체(編年體), 역사를 인물 위주로 서술한 기전체(紀傳體), 그리고 연대나 인물 기준이 아닌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한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가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기전체의 시초가 된 것으로, 이후 중국 정사는 모두 이 형식을 따랐다고 외웠던 기억이 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외우고 봤으니, 지금 생각하면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기”는 중국 최고의 역사책이다. 황제(黃帝)로부터 한(漢) 무제(武帝)에 이르는 약 2천 년을 기록한 통사로, 제왕을 기록한 12본기(本紀), 연대기에 해당하는 10표(表), 제도를 정리한 8서(書), 제후를 기록한 30세가(世家), 의롭거나 탁월한 인물을 기록한 70열전(列傳), 130편으로 되어 있다. 기전체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술 방식은 아니다. 인물 위주로 되어 있다보니 이야기를 전후, 좌우로 조감을 해보며 봐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거기다가 양까지 방대해서, “사기”라는 책을 집어 들기가 쉽지 않았고, 집어 들어도 전체적으로 조감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 책은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 진시황제, 이사, 항우, 유방, 여후, 한신, 장량, 주아부, 황후 두씨, 황후 왕씨, 무제 등을 주요 인물로 하여 다양한 인간 군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지은이는 사마천이 항우, 주아부에 대한 강한 연민과 동정을 보이는 것처럼 다소 주관적인 측면을 띠기도 하지만, 유방의 원대한 포부와 지략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하는 등으로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고 지적한다. 그와 같은 이유로 “사기”가 높게 평가되는 측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은이는 진시황제의 분서갱유, 초 회왕과 항우의 관계, 한신의 죽음 등 우리가 다소 의아해하게 생각하거나 모호한 부분에 대해 당시의 역사적 상황 등을 추리하며 무엇이 진실인지를 밝히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이는 다른 “사기” 관련 책들이 단순히 “사기”에 언급된 내용들을 전달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 비해, 다양한 역사적 고증과 자신의 생각을 더하여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흥미진진함을 선사하고 있다.

이처럼 “사기”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마치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우리 인간사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이는 사마천의 삶과도 관련되어 있다. 친구 이릉이 흉노를 공격하다가 실패해 투항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사마천은 이릉을 위해 몇 마디 진언했다가 한 무제의 노염움을 사는 바람에 사형을 선고받는 일이 발생한다. 이때 사마천은 당시 법률에 의거해 궁형을 자청했고 ”사기“의 집필을 이어간다. 이러한 점은 자연히 사마천으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만들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고, 때로는 강한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정치적인 면, 경제적인 면, 철학적인 면 등 다양한 주제의의 이야기들이 각자의 색깔과 향내를 내며 책 속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하나의 문학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아름다운 문체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유방이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을 묘사한 장면은 한 편의 아름다운 시와 같다. 사마천은 역사의 형식을 빌려서 다양한 이야기를 발표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통해 처세술을 가르치는 책이 출간되는 것도 그와 같이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의 내용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원래 북경TV에서 지은이가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사기 강의”를 시청자들의 요청에 의해 책으로 출간한 것이라고 한다. 개혁개방과 함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세계 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내적으로 자국민들을 단결시키려는 의도가 보이는 측면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중국인을 통해 들어보는 “사기”에 대한 이야기는 여태 국내에서 이루어진 연구와는 색다른 면이 있었다.

지은이는 인물 위주의 기전체가 가지는 단점을 “사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중국 역대 학자들이 논평한 풍부한 사료를 통해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방대한 역사를 전후, 좌우로 오가며 이야기를 날줄과 씨줄로 풀어 내고 있는 지은이의 이야기는 재미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어떤 식으로 “사기”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비법을 전수받은 느낌이다. 이 책을 계기로 “사기” 뿐만 아니라 다른 중국 고전과도 즐거운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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