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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여행하라 - 공정여행 가이드북
이매진피스.임영신.이혜영 지음 / 소나무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
말만 들어도 설랜다. 일상생활에서 빠져 나와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온다. 여행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생활의 충전을 하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틀에 박힌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고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 여행을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그 기분을 잘 알지 않을까 한다.
요즘은 많은 정보와 여행사들이 있어서 예전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편안하게 여행을 갔다 올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여행을 갔다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어떤 도시를 가봤다, 무슨 유적지를 봤다. 면세점에서 싼 가격에 명품을 샀다.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 전부다.
한 마디로 ‘나 그 곳에 갔다 왔네’라는 식의 눈도장 찍기 여행이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괜찮다. 한때 일본이 섹스관광이니, 기생관광이니 하면서 국제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가 그와 같은 일로 동남아에서 추한 한국인(Ugly Korean)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한심스러운 일이다. 물론 모든 여행객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말이 나올 정도면 우리 여행문화를 되돌아 볼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공정여행(Fair Travel)’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행이라고 하니 공정여행과 관련된 유명 관광지, 맛있는 음식점, 박물관, 교통편 등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 책 어디를 훑어보아도 그런 내용은 없다. 대신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살아가는 지구촌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책은 여행과 관련된 인권, 경제, 환경, 정치, 문화, 배움 등 여섯 가지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각 주제에 따라 공정여행 이야기, 깊이보기, 공정여행 팁, 공정여행 루트, 새로운 여행, 새로운 여행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여행 인터뷰와 각종 사진 등을 담고 있다.
내돈 내고 내가 편하게 지내다 오는데 무슨 상관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드넓은 리조트에서 우리가 편안하게 지낼 때, 그 이면에는 리조트를 뺏긴 토착민들과 얼마되지 않는 임금을 위해 하루 종일 일하는 힘없는 현지인들의 고단한 삶이 녹아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은이는 이제 여행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여행은 ‘떠남’이 아니라 ‘만남’이며,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이며, ‘소비’가 아니라 ‘관계’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삶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여행을 꿈꾸라고 한다. 지은이는 여행을 통해 단순히 휴식을 취하고 오락을 즐기는 차원을 넘어서, 세계를 바라보는 눈과 가슴을 가질 것을 권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우리가 쓰고 버린 것들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우리가 여행지에서 쓴 돈은 남반구의 몇 몇 잘 사는 나라들의 배만 불리고 북반구의 현지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었으며, 관광지 조성이라는 명목하에 수십, 수백 년 동안 살아온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심지어 구경의 대상이 되어버린 원주민들의 힘든 삶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힘든 일상을 탈피하고 모처럼 여행을 통해 재충전한다는 생각에, 우리가 못보고 지나친 것들이 그냥 단순히 그 나라의 문제라고 치부해버릴 문제는 아니다. 국내에서도 이런 광경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게 된다. “백인들이 처음 아프리카에 왔을 때, 그들은 우리를 인간이 아닌 동물로 취급하며, 사냥하듯 우리를 잡아갔죠. 지금 그 일이 그대로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관광업자들은 우리를 살던 집에서 내쫒아놓고 우리를 다시 잡으려고 합니다. 전통문화라는 이름의 쇼를 위해, 동물원 원숭이처럼 구경시키기 위해, 호텔의 일꾼으로 부리기 위해서.”(본서 제103쪽 참조) 라는 말은 그냥 흘려 듣기에는 너무나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이미 오래 전부터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네팔 여성들을 산악 전문 가이드로 훈련시키는 러키, 디키, 니키의 세 자매가 운영하는 쓰리 시스터즈 트레킹 여행사, 생태, 문화, 공동체를 생각하는 네팔의 책임여행사 소셜투어, 지역 농민을 돕고 유기농으로 운영하는 투시다 호텔, 카트만두의 환경운동단체인 KEEP와 KEEP가 운영하는 그린 카페, 세계 10대 에코 게스트하우스로 불리는 트리하우스, 공정무역 커피 농장으로 떠나는 여행, 쿠바 경제봉쇄를 무너뜨리기 위한 여행, 아프칸 여성을 만나는 여행 등 여행을 통해 인권, 환경, 지속가능한 개발, 예술과 문화 등 세계를 바꾸는 일에 앞장서는 글로벌 익스체인지,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필리핀의 딸란디그 사람들과 민다나오의 생태, 평화, 예술을 지키려는 에니그마타 크리에이티브 써클, 사는 법을 가르치는 인도의 맨발대학 등. 책 속에는 내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여행이라고 하면 그냥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고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고 며칠 쉬다가 온다는 것이 전부였는데, 그 이면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점들을 인식하고 새로운 여행, 대안 여행을 꿈꾸며 이를 실천에 옮기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해년마다 해외여행 인구는 폭발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2007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관광객의 지출 규모는 세계 10위라고 한다. 그와 같은 해외여행 붐에 맞추어 서점에는 엄청난 양의 여행서가 진열되어 있다. 사람들도 최신 여행정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오늘도 서점을 기웃거린다. 그런데 모든 여행서적이 대부분 개인적인 추억담을 담은 에세이거나 아니면 유명 관광지, 숙박시설, 교통편, 음식점 등 여행에 대한 가이드 북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천편일률적인 내용들이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전혀 새로운 책이었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그야말로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준 책이었다.
책의 뒷부분에는 여행의 역사, 여행에서 돌아온 이들의 이야기 등 읽을 거리와 함께 ‘공정여행자가 되는 10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여행문화를 되짚어 볼 시간이 된 것 같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고 공존하는 그런 멋진 여행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된 것같다. 여행을 가기 전에 한 번쯤 가슴 속에 새겨두어야 할 내용인 것 같아 여기에 인용해 본다.(본서 제449쪽 내지 제454쪽 참조)
1. 지구를 돌보는 여행-비행기 이용 줄이기, 1회용품 쓰지 않기, 전기와 물을 낭비하지 않기
2. 다른 이의 인권을 존중하는 여행-직원에게 적정한 근로조건을 지키는 숙소․여행사를 선택하기
3. 성매매를 하지 않는 여행-아동 성매매, 섹스관광, 성매매 골프관광 등을 거부하기
4.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 음식점, 가이드, 교통시설 이용하기
5. 윤리적으로 소비하는 여행-과도한 쇼핑 하지 않기, 공정무역 제품 이용하기, 지나치게 깎지 않기
6. 친구가 되는 여행-현지 인사말을 배우고, 노래와 춤 배우기, 작은 선물하기
7.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생활 방식, 종교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기
8. 상대를 존중하고 약속을 지키는 여행-사진을 찍을 땐 허락을 구하고, 약속한 것을 지키는 여행
9. 기부하는 여행-적선이 아니라 나눔을 준비하자. 여행 경비의 1%는 현지의 단체에!
10. 행동하는 여행-세상을 변화시키는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