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 폭력과 추방의 시대, 촛불의 민주주의를 다시 묻는다 당비의생각 2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2008년 한 해는 의미심장한 한 해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경기도에 사는 한 고등학생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던 촛불집회(이하 촛불집회는 2008년 봄부터 시작된 그해 촛불집회와 관련한 모든 사건과 집회를 아우르는 의미로 사용합니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광장으로 시민들을 불러내었다. ‘촛불소녀’, ‘유모차부대’, ‘명박산성’ 등 신조어를 쏟아내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에서 시작하여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적이고 총체적인 부실 정책에 대한 항의로까지 이어져, 1987년 이후 새로운 시민운동과 의미심장한 민주주의의 실험 혹은 실천으로 이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촛불은 생각보다 의외로 빨리 꺼지고 말았다.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기나 했던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법치주의를 가장한 국민들에 대한 압박은 날로 거세지고 있고, 우리의 현실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우리가 촛불집회에 대한 너무 많은 낙관과 찬사에 익숙해져 있어서 우리만의 천국안에 갇혀있엇던 것은 아닐까. 냉철한 비판의식과 촛불집회를 되집어보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앞으로만 나아간 결과가 아닐까.

지금 이 시점에서 촛불집회를 되돌아본다는 것이 시간적으로 조금 늦은 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촛불집회에 대한 날카롭고도 면밀한 반성과 사유없이는 촛불집회는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아직도 촛불집회는 현재진행형이다. 촛불이 계속 타올라 계속 진화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회과학적 연구는 의미심장하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1부 ‘운동의 사회학을 넘어 민주주의의 정치학으로’ 에서는 촛불집회를 ‘운동의 정치’로서 분석한다. 이는 촛불집회의 주체가 민주주의의 정치적 주체로서 발전하지 못한 태생적 한계를 가졌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부르조아적 욕망의 구조와 동일시한 시민 주체가 자아낸 욕망의 환등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촛불은 권력을 향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오히려 현존하는 질서를 옹호하는 사태로 전락해가고 말았다. 이러한 견해들은 촛불집회가 가진 낙관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다.

제2부 ‘순수와 공포의 시대, 촛불의 문화정치학’ 에서는 촛불집회가 가진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분석한다. 촛불집회는 도덕적으로 순수성에의 집착이라는 모랄을 내세움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효력을 제한하는 한계성을 보였고, 광우병에 대한 담론은 과학이 괴담과 진실의 프레임 아래 어떻게 사회적 쟁점을 탈색하고 제거하는 일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정치적 주체로 도약하기 위한 계기를 탈근대적 종교 현상으로서 촛불의 시민종교적 특성에서 찾고자 하는 견해도 있었다. 

제3부 ‘새로운 질문들, 촛불을 든 새로운 주체는 누구인가’ 는 어떤 면에서는 1부의 연장선상에 있는 논의로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주체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짚어본다. 촛불집회의 70퍼센트를 차지했다는 여성 주체와 IMF 이후 보수화의 길에 접어 든 중산층, 그리고 배제된 사회적 주체들 속에서 구성된 촛불집회 주체의 보수적인 정체성에 관하여 분석한다.

사회과학적 연구에서의 분석은 구체적인 현장 연구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연구의 대상이 되는 특정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적합한 개념과 이론적인 틀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언급되는 내용들은 기존의 촛불집회에 대한 여타의 책들과는 차별화된 느낌이었다.

다만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 명이다 보니 글의 편차가 느껴지기는 한다. 그 중에서도 은수미의 ‘촛불과 한국 사회 중산층의 자화상’은 단연 돋보이는 글이었다.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내용을 담은 글과 현장을 직접 발로 누빈듯한 이야기들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에 반해 몇몇 글은 너무 감성적이었고 다소 현학적인 느낌을 받아 실망스럽기도 하였다.

솔직히 이 글을 다 읽고 난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무리 속에 섞여 있을때는 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고, 그 무리에서 빠져나와 바깥에서 바라보면 좀 더 객관적으로 문제에 접근해 볼 수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촛불이 밝혀진 언저리는 보이지만 그 그림자 주변은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배제된 사회적 주체들과 관련한 이랜드 노조부위원장의 글과 연대성 상실에 대한 이야기는 폐부를 찌르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는 것은 좀 더 나아가기 위한 반성과 사유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지은이들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촛불집회에 대한 논의는 촛불이 더 많이 더 빨리 그리고 더 밝게 타올라 주기를 바라는 염원인 것이다.

경제 현실은 날이 갈수록 더 힘들어지고 있다. 높은 실업률, 높은 자살률, 불안한 부동산 시장, 실물경제 위축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작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만이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저자인 장하준 교수는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안정되어야 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정치를 반성하고 비판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기회를 가진다면 그보다 더 값진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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