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 서양과 조선의 만남
박천홍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나간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다양한 기록매체가 없었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그 시대를 어렴풋하게나마 읽을 수 있는 것은 당시 선조들이 남긴 기록물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아 있는 사료들도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고 당시의 시대상에 따라 기술된 측면이 많다. 대부분의 역사서들이 빈약한 내용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와 같은 사료상의 한계가 크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반도가 외국에 알려졌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고 조선에게는 중국과 일본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앞선 기계문명을 바탕으로 통상 내지는 탐험을 목적으로 조선을 찾아왔던 서양인들에 의해 조선이라는 나라가 차츰 외국에 알려지고, 그와 관련한 문헌이나 그림 등의 각종 사료도 서구에 많이 소개되면서 사태는 달라지게 된다.

이 책은 16세기부터 1860년대 초까지 조선 해안에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서양인들과 조선 측의 기록을 통해 당시의 조선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물론 당시 조선 해안에 들이닥친 서양인들에 대한 조선의 생각도 볼 수 있다.

처음 이 책을 받아 들고서는 방대한 페이지에 지레 겁을 먹었다. 하지만 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기면서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방대한 문헌과 고증이 곁들여져지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해 타자인 조선과 서양인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문헌을 아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이를 읽다보면 마치 내 눈앞에서 그와 같은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언어와 생활, 생각이 다른 두 세계의 사람들이 만나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웃음을 머금게 하는 장면도 있고, 따스한 정이 느껴지는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한 이유로 인해 살인과 절도 등 범죄행위도 일어나는 불상사가 있었다. 이는 조선의 정권을 유지하려는 지배계층의 경직된 모습에서 아주 강하게 나타났다.

“홀과 매클라우드가 증언했듯이 조선인들 사이에는 낯선 이방인과 이국의 문물에 대한 열광적인 호기심과 극도의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특히 조선 관리의 극단적인 행동은 영국인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들은 이미 브로턴의 조선 여행기를 읽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 자신들에게 친절하면서도 한사코 상륙은 거부하는 비사교성에 혀를 내둘렀다(본서 제194쪽 참조).”

중국과 일본이 서양에 의해 개국을 하게 되고, 조선은 세도정치와 전염병, 천주교의 전파 등으로 정국이 어수선하자, 지배층은 더욱 문을 걸어 잠그게 된다. 오히려 해안에서 어렵게 살고 있던 가난한 민중들이 낯선 이방인들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해주며 그들의 문물에 대해 신기해 하며 자연스럽게 다가가기도 했다.

“근대로 향하는 길목에는 여러 갈림길들이 놓여 있었다. 그 갈림길 가운데 하나는 바로 민중 세계였다. 권위적인 왕궁과 관청에 틀어박힌 지배층이나 관념의 세계에 매혹된 서재의 양반 지식층 그리고 피안의 세계를 갈망하던 천주교 신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바다를 생존의 터전으로 삼고 일상의 노동에 충실했던 민중들의 세계에서 새로운 근대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육지의 끝에서 거친 자연 조선의 순응하며 궁핍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권력에 대한 욕망, 부정한 축재에 대한 탐욕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만을 꿈꾸었다(본서 제740,741쪽 참조).”

요즘 조선시대에 대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대체로 인물중심 내지는 왕조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들이 많아서 중복되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서로 비슷비슷한 내용들이어서 참신성도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그와 같은 역사서들과는 확연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한 사람의 일대기를 훑어서 마치 위인전과 같은 느낌을 전해주는 많은 책들에 비해, 서양인들에 들이닥친 조선시대 후기의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책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 서로 대화를 나누었던 조선인과 서양인들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느낌과 감정을 같이 비교하면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인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